신고전주의의 대표자이다. 일찍부터 석공 밑에서 일하다가 재능이 인정되어
베네치아의 조각가 토레티의 공방에 입문하였으며, 이때 고대조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779년 22세에 로마로 갔는데, 당시에는 바로크와 로코코에 대한 반발로
고전주의적 풍조가 일기 시작, 폼페이와 엘코라노의 고대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빙켈만과 레싱의 저술을 참작하여 박차를 가하고 있던 때여서, 로마는 신고전주의운동의
세계적 중심지가 되었다. 그런 환경에서 그는 고대조각을 열심히 연구하고 모방하였다.
우선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를 제작하였고, 교황 클레멘스 14세의 묘비(1787),
산티아포스토리성당),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묘비 (1792, 산피에트로대성당) 등이 있으며,
루브르미술관에 있는 아모르와 프시케의 군상도 이 무렵의 작품이다.
바티칸미술관에 있는 페르세우스 두 명의 권투자(拳鬪者) 등을 제작한 후, 1802년에는
나폴레옹의 초청을 받아 파리로 갔으나, 그해 로마로 돌아와서 명사·귀족의 묘비와
초상을 비롯하여 나폴레옹의 거대한 나상(裸像:1810, 밀라노 브레라미술관)과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이 긴 의자에 기댄 반나상(로마 보르게세미술관)을
고대양식으로 제작하였다. 그후 파리와 런던을 여행하였으며, 만년에도 쉬지 않고
일을 계속하여, 과로로 휴양하려고 베네치아로 귀향, 그곳에서 사망했다. 글 자료,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