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절조예술(衣)

나무 가지에

土談 2019. 8. 27. 10:52


과수원을 하는 농부가 자기가 키우는 과일 나무에 가서 고백을 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과수을 돌보고 해서 너희들 덕에 먹고 살아 고맙고 한편으론 편취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우리을 지상에 영구히 보존하는 것은 농부의 노력 때문이라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농부는 이것도 할 수없는 입장이라고  속내를 꺼냈습니다.

나무는 당황해 하며 무슨 일인지 물어 왔습니다.

농부는 아직 배필이 없어 힘들어 농사를 짓기 어렵다고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나무는 이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청과 시장 상인들의 딸들을 수배하여 적임자을 자신의 나무 가지에 걸어 두었습니다.

농부는 얼마나 간절 했으면 달빛이 여인의 형상으로 보였습니다.

사실은 나무가 농부의 아내을 만들어 보냈습니다.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인 열매를

농부도 할 수 있게 달덩이을 점지한것입니다.

농부는 그후로 최고의 과일을 생산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물론 어렵고 힘들때는 나무와의 대화는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위한 감동의 드라마 같으나

이타공감의 신적인 영역에 가까운 것이 아니더라도 이기와 이타의 간극이 좁아진 이상을 향한 열정으로

유토피아 경지에 이른듯 합니다.

사실은 둘다 속내는 달랐습니다.


농부는 나이들어 장가 못가서 자신이 중성화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닌가?

그래서 눈만 뜨면 과일나무에 옮겨 열매를 맺지 못할까 고민 했습니다.


과수는 지구 역사에서 중성화의 유전자 정보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사람들이 빨리 진화하고 퇴화하는 현상을 염려해

농부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아 오든터라  자신의 미래가 걱정이 되어

 장가을 보내려고 극적인 연출을 했던 것 입니다.

벌 나비도 줄어드는 요즘 사람까지 적어지면 자신의 열매 맺는 특기가 퇴화 되는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자신의 중매 역활을 하는 이들을 위해 먼저 중간을 잊는 다리를 놓아

이들의 삶이 곧 저신의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반합의 연속 즉 밤낮속에 살아가는 만물이 음양의 변화로 극적인 반전에 반전을 더해서

많은 번뇌를 만들어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느니

차라리 모든것이 중성화 되면 걱정 번뇌 건강 영생의 욕망들을 기억 속에 묻을 수 있을까?


나무,농부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곧 타인를 사랑하는 것이다.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자기자신을 위한 탐구정신이 곧 세상을 위함이다.


이분법에 매여 편가르기하여 죽일놈 살릴놈 할 필요가  있겠는가.

편에 안들면 불안해하고 편에 든이는 안드면 이상하게보고

이런 것이 당연 한 것인가?

현실은 필수조건 인것 같다.



'취미 > 절조예술(衣)'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씽크 뱅크  (0) 2019.08.28
추억  (0) 2019.08.27
훈육  (0) 2019.08.27
혁명  (0) 2019.08.26
수반석  (0) 2019.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