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옴

한문

土談 2012. 5. 11. 14:17

   옛날 현직에 있을 때 어떤 부하 직원 한 사람이 불쑥 집무실로 찾아왔다. 필자에게 결재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평소 한문을 좀 안다고 소문이 나서인지 한문 공부를 어떻게 하는가 그 방법을 물으러 왔던 것이다. 정말 난감했다. 그 당시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의 한문 공부 방법을 나름대로 설명해 준 것같다. 우선 한문으로 된 흥미있는 책을 선택해서 그 책을 처음부터 원어로 사전을 찾아가면서 정독을 해라. 그리고 시간이 있으면 중국 무협영화를 자주 보거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시일내에 어떤 성과를 기대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을 해보라고 한 것 같다. 그러면서 당시 내가 애독하던 원어로 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텔레비전에서 복사한 삼국지 비디오테이프 수십 개를 주면서 《삼국지(三國志)》는 복사해서 잘 읽어 보고 삼국지 비디오는 여러 번 들어서 중국어를 학습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필자의 지론은 원어로 된 《삼국지(三國志)》·《수호지(水滸志)》·《금병매(金甁梅)》 등의 원전을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고 그런 다음에 중국의 무협영화를 자주 보는 것이 한문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금도 시간이 있을 때 중국의 영화를 다운받아 보통 한 편에 40회 정도로 엮어진 연속극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듣고 거기에서 나오는 생경한 단어에 대해서는 메모를 해 가면서 학습하고 있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사극을 보면 고대의 전장제도 등을 알 수 있으며 시대극이나 통속극을 보면 기층민들이 쓰는 은어나 속어 등을 많이 알 수 있다. 필자는 티브이를 통해 우리말 자막으로 나오는 것을 여러번 보고 다시 티브에서 나오는 연속극을 다운받아 원어로 듣고 자막을 통해서 단어를 익히다 보니 어휘력도 늘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긴 문장이라도 한번 보면 대충 그 뜻이 어떤 것인지 머리에 떠오를 정도가 되었다.

 

   한문은 외국어인 중국어의 문어체 문장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 쉽게 배울 수 있는 왕도는 없다. 제일 좋은 방법이 있다가 그 나라에 가서 몇 개월만 그들과 함께 부대끼고 딩굴면서 배운다면 그들이 쓰는 말은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문은 워낙 글자 수도 많고 더구나 사성(四聲)이란 음운체계가 있어서 더욱 익히기 힘들다.

 

   지금부터 소개할 자료는 왕력(王力)이 쓴 《고대한어 학습을 말한다(談談學習古代漢語)》책 가운데서 《고대한어를 어떻게 학습하는가(怎样学习古代汉语)》라는 제목으로 된 편장 하나를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내용은 상당히 방대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우리가 한문은 어떻게 배워야 하는 것인지를 자세히 가르켜 주고 있다. 그 방법은 소위 감성적 방법이라 할 수 있는 무조건 암기를 강조하고 있다. 옛날에는 한문을 배우려면 여태껏 배운 것을 암기하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같은 문장을 수백 번 수천 번 읽어서 암기를 했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듯이 사전을 보고 단어를 찾는 다거나 주어는 어떻게 동사는 어떻고, 문장의 5형식은 어떻고 하는 등 문법을 따져 가면서 배우는 그런 방법은 이성적 방법이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이 효과적인가는 통째로 암기한 것이 훨씬 낫다고 본다. 암기한 것은 언제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우리가 외국인과 대화를 할 때는 일단계는 머리속에 그나라 말로 번역을 한 다음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일단 암기해서 내 것이 되면 번역이라는 과정이 따로 없다. 그냥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것이다. 필자가 말한 것들을 왕력(王力) 선생은 아주 쉽게 설명할 것이다.

 

   관심있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원문을 파일로 만들어 올렸다.

 

 

                                     고대한어(古代漢語)는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이제부터 저는 고대한어(古代漢語)를 어떻게 학습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하는데 이러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역사관점의 수립이요, 두번째는 감성인식과 이성인식의 상호결합이요, 세번째는 단어 학습의 중요성이요, 네번째는 어법의 학습이요, 다섯째는 학습의 구체적 조치라 하겠습니다.

 

                            一. 역사관점(歷史觀點)의 수립

 

   우리들은 모두 언어(言語)라는 것은 발전(發展)하는 것이요, 그것은 역사의 변천(變遷)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언어의 변화(變化)라는 것도 그렇게 클 수는 없고, 따라서 그것은 한편에서는 발전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또 안정성(穩固性)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은 계승(繼承)이 있기 때문에 수천년 전의 한어(漢語)와 현대한어(現代漢語)는 허다한 공통점이 있게 되는데, 이는 계승(繼承)이란 일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또 발전(發展)이라는 일면을 가지게 되는 것이며, 그래서 고대한어(古代漢語)와 현대한어(現代漢語)는 어느 정도 다른 점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가 한어(漢語)를 학습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먼저 꼭 수립해야 할 관점은 이들에게는 서로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고, 계승(繼承)도 있지만 발전(發展)도 있음을 알아야 하며, 이것이 우리가 한어를 학습하는 데 있어 가지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이제 바로 어휘면(語彙面)에서 말을 하자면, 어휘면에서도 계승(繼承)이 있고 발전(發展)도 있다. 그러면 우리들이 언어의 발전에 대해서 주의해햐 할 문제점은 무엇인가? 만약 별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또 그들 사이에 다른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옛날에 없었던 사물이 오늘날에 있다면 언어의 표현은 바로 다른 것이다. 현대의 비행기 · 트랙터 및 각종 과학과 공구와 같은 것은 것은 모두가 옛날에는 없었던 것이므로 당연히 그들은 다른 것이다. 또 어떤 것은 옛날에는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없는 것이 있고, 따라서 옛날에 있었던 허다한 풍습 · 습관과 공구가 오늘날에는 없기 때문에, 현대한어 중에서 종전의 오래된 어휘로부터 찾아보기가 불가능한데, 이러한 것은 별로 다르지 않는 부분으로, 여러분들은 모두 쉽게 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전혀 별로 다르지 않으면서 대동소이(大同小異)해서, 고대의 것과 현대의 것이 보기에는 마치 똑 같지만 정말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도리어 전혀 같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현대한어는 고대한어에서 발전되어 온 것이므로 양자가 아주 크게 달라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방금 말한 아주 크게 다르다는 말은 약간만 다르고 거의 모두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을 말한다. 옛날로부터 계승(繼承)이라는 일면을 간직하고 있지만, 시대가 다름에 따라 이들 사이에는 발전(發展)이라는 일면이 있게 되며, 그래서 우리가 고대한어를 학습함에 있어서는 어떤 사물이 같으면서도 다른 점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부분이 있음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제 예를 들어서 말하겠다. "잘 수(睡)"자는 오늘날에도 있지만 옛날에도 있었는데 고서상에서 "睡"자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한 번 들여다 보면 결코 똑 같은 것이 아니다. 한대 이전의 "睡"자는 앉아서 존다는 뜻이 있어서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뜻과는 달랐다. 《전국책(戰國策)·진책(秦策)》 중에 소진(蘇秦)은 "讀書欲睡,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足。"라는 구절이 있다. 그가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뜻은 소진이 공부를 하다가 졸음이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바로 그는 송곳을 사용하여 자기의 허벅지를 찔러 바로 졸음에서 깼다는 말이다. 여기의 "睡"는 바로 졸다는 뜻이다. 책을 읽는 것은 앉아서 하기 때문에 결코 누워서 잠을 잔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내었고, 단지 몸이 피곤해서 조름이 온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송곳으로 그의 허벅지를 찔렀던 것이다. 만약 그가 책을 읽을 때 잠잘 생각을 했다면 그는 왜 자기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썩 좋아한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았겠는가?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기로 하겠다. 《사기(史記) · 상군열전(商君列傳)》에 "衛鞅語事良久, 孝公時時睡, 弗聽。"이란 말이 있다. 이 구절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위앙(衛鞅)이 진효공(秦孝公)과 이갸를 하는데 효공이 그가 하는 말을 듣기 싫으니 효공에게 말할 때 가끔 졸았다는 말이다. 여기의 "睡"자는 잠을 잤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군신관계에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진효공(秦孝公)이라 하더라도 결코 이와 같이 예의도 없이 바로 침상에 누워서 잠을 잘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단어의 의미에는 모두 그것의 시대성(時代性)을 지니고 있고,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꿔지는 것이며, 이러한 것은 매우 중요해서, 시대가 바꿔진 뒤에는 우리는 바로 원래의 의미로써 그것을 바로 볼 수는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당나라 때 두보(杜甫)의 《팽아행(彭衙行)》 중에 "衆雛瀾漫睡, 喚起沾盤餐。"이란 구절이 있다. 여기서는 어린애들이 어른들을 따라 피난길에 나섰다가 어떤 지방에 도착한 뒤 아이들이 너무 피곤해서 잠자리에 드러눕자마자 골아떨어져 단잠을 자는 것을 말하고 있다. 만약 한나라 이전의 의미로써 말한다면 아이들이 졸았다는 말이 되고 그렇게 되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어린애들이 졸았다고 해서는 단잠을 잘 수 없기 때문이다. 

 

   지당(池塘)이란 말의 "塘"자는 당나라 이전의 일반적인 뜻도 오늘날의 그것과는 아주 똑 같지 않았다. 원래의 "塘"자는 강가의 홍수를 막는 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 최호(崔灝)의 《장간행(長干行)》중에 "君家何處住, 妾住在橫塘。"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 중의 "橫塘"은 지명으로 틀림없이 둑 부근에 있얼을 것이며, 첩은 결코 지당 안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예로 사영운(謝靈運)의 《등지상루(登池上樓)》 중에 "池塘生春草, 園柳變鳴禽。"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의 "塘"은 바로 둑이란 뜻이다. 봄에 풀들이 둑에서 자랄 수 있으니 결코 그 풀들이 못 속에서 자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塘"자는 당나라 때 의미와 오늘날의 의미가 같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恨"자는 한나라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원한을 맺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유감스럽다는 뜻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옛날에 "恨"과 "憾"은 동의어였다. 제갈량(諸葛亮)은 《출사표(出師表)》중에서 "先帝在時, 每與臣論此事, 未嘗不嘆息痛限於桓靈也。"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유비(劉備)가 살아 있을 때 항상 한환제(漢桓帝) · 영제(靈帝) 때 환관들을 총애하고 신임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비통하고 유감스럽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의 "痛恨"은 오늘날의 "痛恨"으로 해석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환제 · 영제는 모두 한나라의 황제들인지라 제갈량이 어찌 황제들을 몹시 원망한다거나 황제들을 욕할 수 있었으랴.

 

   서신(書信: 편지)이라는 "信"자의 예이다. 한나라 이전에는 편지를 쓴다고 할 때 "寫信"이라고 말하지 않고 "作書" 혹은 "修書"라고 하였다. 그당시 "信"은 바로 "書"를 말하고, 서신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信"이라고 하였는데, 또 서신을 가지고 가는 사신(使臣)을 "信使"라고 불렀다는 것은 옛날에는 "信"와 "書"의 뜻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세설신화(世說新話)·아량(雅量)》 중에 "謝公與人圍碁, 俄而謝玄淮上信至, 看書竟, 默然無言。"  여기서는 사안(謝安)은 마침 다른 사람과 바둑을 두고 있을 때, 그의 조카 사현(謝玄)이 회상(淮上)에서 사람을 보냈으므로 사안이 편지를 본 뒤에 묵묵히 말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 속에는 "書"도 있고 "信"도 있는데 "信至"의 "信"과 "看書"의 "書"의 의미는 똑 같지 않다.

 

   "僅"자는 당나라 때와 오늘의 의미가 똑같지 않을 뿐더러 상반된다. 오늘날 "僅僅"은 어떤 것이 아주 적은 것(기껏해야, at most)을 말하는데 당나라 때에는 아주 많은 것을 말하는 것(적어도, at least)으로 거의 도달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보(杜甫)의 《박악양성하(泊岳陽城下)》 중에 "江國逾千里, 山城僅百層。"라는 구절이 있다. 그가 당시에 대충 1백 층에 달한다고 말한 것은 매우 높다는 뜻인데, 오늘날의 견해로서는 기껏해야 1백 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 이처럼 곧장 통하지 않게 된다.

 

   한유의 《장중승전(張中丞傳)》 중에 "初守雎陽時, 士卒僅萬人。"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바로 장중승(張中丞)이 안록산의 반란으로 조양(雎陽)을 지킬 때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1만여 명이나 달한다고 하여, 그는 벌써 그 군사들의 이름을 다 부를 수는 없지만 그 수효가 아주 굉장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만약 오늘날 기준으로 해석한다면 겨우 1만 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말의 의미의 변화로부터 역사관점(歷史觀點)의 중요성을 간파할 수 있다. 우리는 고금의 이러한 말의 이동(異同: 서로 다른 점과 같은 점)에 대해서 어떤 것이 똑 같고, 어떤 것이 서로 다른 지를 연구해야 한다. 당연히 그 차이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고서를 보면서 아주 어려운 글자라 하더라도 두렵지 않는 것은 우리가 자전을 찾아 보아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靑+氣"자와 같이, 그 글자가 매우 어렵지만, 우리는 《강희자전(康熙字典)》으로부터 이 글자는 바로 도가(道家)의 "天"임을 찾을 수 있으며, 이런 부분도 어렵지 않다. 다른 예로 "墬"자와 같이 이 글자도 어렵지만 우리는 《사해(辭海)》를 한 번 찾아보고 그것은 바로 "地"자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알기 어려운 글자(難字)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쉬운 글짜가 우리를 미혹케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방금 여러 글자를 예로 든 것이 많은데 모두 아주 쉬운 글자라서 각기 사람마다 그 글자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익히 알기 때문이며, 그래서 고금의 서로 다른 것들을 소홀히 한다거나 지나쳐 버리기 일쑤인데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고서를 읽으면서 반쯤은 이해하고 반쯤은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실제로는 바로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니 이는 우리가 일문(日文)으로 된 문장을 읽으면서도 글자는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어느 정도 같다 할 것이다. 물론 고대한어를 읽는 것이 것이 일문(日文)을 읽는 것과 서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서로 같은 점이 있으며,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글자를 잘 안다고 해서 바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역사관점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二. 감성인식(感性認識)과 이성인식(理性認識)의 상호결합

 

   고대한어를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가? 이에는 이런저런 서로 다른 방법이 있으며, 그 결과도 똑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감성인식(感性認識)을 중시하는 것으로, 옛사람들은 바로 이런 방법을 취했다. 옛사람들은 하나의 문장을 학습함에 있어 그 문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숙독을 하고 외우는 것을 강조했다. 옛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하면서 문장을 몇 백번이고 외웠으니 감성인식을 중시한 것이다. 학교가 생긴 뒤에 특히 5.4운동이후, 차츰차츰 도리를 중시하는 것을 좋아하더니 해방 이후에는 규율(規律)을 중시하는 것이 한층 요구되었다. 도리를 중시한다거나 규율을 중시하는 것 어느 것을 막론하고, 모두가 이성인식(理性認識)을 중시한다. 이 두 방법 중에서 도대체 어느 것이 좋은가? 나는 두 가지 방법은 다 좋으나 양자는 그 어느 하나를 중시하여 다른 하나를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단순히 하나의 방법만을 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재 여러분들은 고대한어를 학습함에 있어, 너무 조급한 나머지 어떻게 하면 빨리 배울 수 있을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성인식에 편중되기 쉽고, 도리를 많이 중시한다거나 규율을 많이 중시하게 된다. 나는 단순히 규율을 중시한다거나 단순히 이성인식(理性認識)을 중시하다 보면 감성인식(感性認識)이 없게 되고 이런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동안 한어학습의 경험을 통해서 암송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런 독서방법은 마치 아주 어리석은 것같지만 사실은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었다. 현재 어떤 젊은이들은 고대한어를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마치 외국어에 비교해서 한층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 말에는 일부 지나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째서 고대한어가 외국어에 비하여 이해하기 어려울 리가 없다는 것인가와는 관계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설명하는 문제의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인데, 우리들은 외국어를 학습하는 방법으로 고대한어를 학습해야 한다고 한다. 외국어를 배운 경험이란 무엇 보다도 단어의 기억을 강조하면서 또 암기할 것을 요구하며, 외국어를 소리내어 잘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 글자 한 자, 단어 하나, 혹은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곧장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높은 정도에 이르게 되면 책을 보면서 자전(字典)을 찾을 필요도 없이, 필기구를 들기만 하면 문장을 쓸 수 있게 되고, 외국어를 말할 때 머릿속에서 중국어로 번역을 하지 않고 입에서 저절로 술술 나오게 된다고 한다. 과거에 보통 외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외국어를 말할 때 먼저 중국어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런 다음에 다시 외국어로 번역을 했으나, 외국어를 구사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은 먼저 머릿속에서 중국어로 번역할 필요없이 직접 외국어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대한어를 학습했던 경험과 외국어의 경험은 대강 같다. 우리가 글자를 보기만 하면 바로 이 글자가 고대에는 어떤 것을 말하는지를 알 수만 있다면, 이 글자가 혹은 이 귀절이 오늘날에는 어떤 것을 말하며, 옛날에는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마치 벌써 옛사람의 친구로 변하여, 하루종일 옛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처럼 되는데 이런 효과가 아주 좋은 것이다.

 

   옛사람들이 학습한 고문은 읽은 것이 문어문(文語文)이었을 뿐만 아니라 쓰여진 것도 모두 문어문이었다. 그들이 집안 사람들에 대해 하는 말은 같은 것이지만, 서당에서 관련된 말은 또 다르게 되어, 그들이 옛사람들에 대해서 옛사람들의 말로써 말한 것이라든가, 심지어 친구에 대하여 옛사람들의 말로 말하는 것이 차츰차츰 훈련이 되어 두 가지의 말을 쓰는 사람으로 되는데 이는 바로 언어학(言語學)에서 말하는 이언인(二言人)이다. 이런 사람은 두 가지 말에 정통해서 어느 하나의 말로 하는 것은 모두 필요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사천(四川) 사람으로, 그 집은 북경(北京)에 있어, 집에서는 사천말을 하고, 학교에서는 북경말을 하는 등 두 가지 말을 모두 능수능란하게 잘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퍽 많다. 우리가 고대한어를 학습하는 것도 이러한 사람들을 배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현대한어와 고대한어 두 가지에 정통해서 고서를 손에 잡으면 마치 옛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되어, 현대인과 같지 않지만, 《인민일보(人民日報)》를 손에 들게 될 때는 또 현대인으로 변하여 이와같이 바로 배우기가 쉽게 된다. 그래서 현재 중등학교에서까지도 모두 점점 책을 암송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을 암기하는 것은 바로 감성인식(感性認識)을 중시하는 것으로, 효과적인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원래 여러분들에게 책을 암송하라는 말을 꺼낼 때는 모두가 다 환영을 표시했으면서도 나중에는 암기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느니, 암기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곧장 또 말하기를, "고서를 암기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왜냐하면 옛사람들의 사상(思想)은 옳지 않거니와 독소(毒素: 해로운 말이나 글)가 있어서, 잘 읽고 외워두었다가는 그들의 영향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런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가 현재 골라서 읽는 고문은 대체로 사상(思想)이 건전(健全)한 것이기 때문에, 설사 일부 독소(毒素)가 있다손치더라도 두려워할 만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아직도 봉건사상(封建思想)의 독소를 무서워한단 말인가? 무서울 게 뭐가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고서의 공부에는 아직도 외우는 것이 필요하며, 감성인식(感性認識)을 강조하는 소이이다. 우리는 충분한 감성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이성인식(理性認識)을 제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고대한어를 학습하면서 찾아낸 경험의 하나는 바로 세 가지 것을 결합하여 학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고대한어 문선(文選)이요, 둘째는 상용어(常用語)요, 셋째는 고한어통론(古漢語通論)이다. 우리는 수시로 만나는 말을 잘 기억하기 마련으로, 고대한어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똑같이 모르는 글자(生字)는 암기를 해야 한다. 고대한어는 대개 1천에서 1천 2백까지의 글자가 상용어(常用語)가 있으니, 그것들을 마치 외국말을 배우듯이 모르는 글자를 확실히 기억대 두어야 좋은 점이 많다. 몇몇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글자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 종전에 고대한어를 가르키거나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 길을 잘못 들어서 오로지 이러한 흔히 쓰지 않은 글자(生僻字)를 기억하는 데만 애를 썼다. 만일 이와 같은 때 어떤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자를 찾는 것을 좋아해서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보러 가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고서 중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일부 글자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 한다. 일부 자주 눈에 띄지 않은 글자에 대해서 그대들이 연구해서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이와 동시에 상용자 중에서 우리는 또 그 사용하고 있는 의미를 기억해야 하지만, 일부 흔히 잘 쓰지 않는 의미에 대해서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예를 들어 어떤 글자에 5개의 늘 쓰는 의미와 5개의 흔히 잘 쓰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치자. 우리는 그 5개의 가장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를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상용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지 일부 특수적이며 기괴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상용어(常用語)를 기억하는 것이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상용어에는 일반적으로 여기서도 이런 의미가 있지만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장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약간이란 뜻의 "稍"자를 예로 들자면, 이 글자의 현대와 고대의 의미는 똑같지 않다. "稍"자는 고대에 "점점(漸漸)"에 해당하는 말로 쓰였다. 《한서(漢書)》에 "吏稍侵凌之"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어떤 사람이 벼슬아치로서 매우 성실하였는데 관청의 말단관리까지 모두 점점 그의 성실함을 업신여겼다는 말이다. 여기서 "稍"자는 바로 점점이란 뜻과 득촌진척(得寸進尺: 말타면 경마잡히고 싶다는 뜻)이란 뜻을 갖게 된다. 만약 "약간"이라고 해석을 한다면, 바로 옳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약간 그 사람을 업신여겼다고 해서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송나라에 이르기까지 죽 "稍"자는 여전히 이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소식(蘇軾)의 시 중에 "娟娟雲月稍侵軒"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가 어느 지방으로부터 자기 집으로 돌아오면서 달님이 차츰차츰 떠 오르더니, 점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시적 정취가 넘쳤으나 그래서 달님이 창문을 약간 침입하였다고 말하였을 때는 완전히 시적 정취를 잃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稍"자 이것의 상용자의 사의를 파악한 뒤에야 곳곳에서 점점이란 말로 능히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할 것은 "再"자는 고대한어 중에서 두 번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再來"는 바로 두 번 왔다는 말이요, "再會"가 바로 두 번 만났다는 말이었다. 모든 "再"자는 모두 이렇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고대한어 중의 "五年再會"라는 말은, 만약 현대한어로써 말한다면, 5년 뒤에 다시 만났다는 말이다. 고대한어에서는 5년 안에 두 번을 만났다는 말로 해석된다. 양자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 그래서 만약 상용어의 어의를 잘 파악하게 된다면 당장 곳곳에서 쓸모가 많게 된다.

 

   고한어통론(古漢語通論)은 바로 이론을 중시하고, 또 도리를 중시하며, 더욱더 규율을 중시한다. 옛날의 어법(語法) · 어음(語音) · 어휘(語彙) 및 문자학(文字學)의 몇몇 도리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우리들이 고대한어를 깊이 들어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3가지 가운데 문선(文選)은 감성지식(感性知識) 부분이요, 고한어통론(古漢語通論)은 이성지식(理性知識) 부분이요, 상용어(常用語)는 감성(感性)이면서 이성(理性)이다. 그것이 감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모르는 글자(生字)에 해당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이성이라고 하는 말하는 것은 바로 어의를 잘 파악한 뒤에야 곳곳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할 것이니, 그것을 잘 파악하였다는 것은 규율(規律)이라도 말할 수 있다. 고대한어를 문선(文選) · 상용어(常用語) ·고한어통론(古漢語通論)을 3부분으로 나눈다는 것은 이성지식(理性知識)과 감성지식(感性知識)을 잘 결합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또 스스로 머리를 쓴다든가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요구는 무언가 고차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고대한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많은 문장을 한 데 모아서, 이들을 분석하고, 개괄하고, 깨달으면서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再"가 두 번에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은, 한 편마다 "再"자가 들어 있는 문장 중에서 그 의미가 같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보고, 그대들이 모든 "再"자의 문장은 모두 두 번에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대는 바로 문득 크게 깨닫게 되어, 저 "再"자는 두 번에 해당하는 말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바로 이런 것은 깨닫고 귀납 · 개괄해 낸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들은 허다한 문장의 연구 · 분석 · 개괄을 통해서 그 의미가 바로 찾아지는 것이니 자전을 찾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왜냐하면 자전 그 자체에는 결함이 많아 《사원(辭源)》·《사해(辭海)》·《설문해자(說文解字)》 등과 같은 것은 모두 문언문(文言文)을 가지고 문언문(文言文)을 해석하였기 때문에 읽어보고 나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보았음에도 아무런 보람이 없는 것이나 매한지이다.

 

   이밖에 자전(字典) 중에 해석한 것이 결코 모든 것이 아주 완벽할 수 없으며, 더우기 우리들이 수정하고 보충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 "再"자와 같이 두 번에 해당한다는 말하는 것은 《설문(說文)》에서는 이렇게 말하였으나 보통 자전에는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없으며,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깨닫고, 연구하야 비로소 이러한 도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예로 들면, 외국어를 잘 배우려고 한다면, 단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잘 듣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제 스스로 머리를 써서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 사람들이 유럽주의 문장을 배울 때는 그것과 우리 중국 문장은 아주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은 우리가 특히 주의를 기울려야 하는 곳도 있고, 어떤 것은 책에서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깨달아서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있다. 한어(漢語)를 배우는 것도 이와 같아, 우리는 한어를 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도리를 깨달아 하며, 바로 이것이 창조(創造)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배워서 이해를 하면서, 또 연구작업을 해야 하며, 그래서 감성인식(感性認識)과 이성인식(理性認識)의 상호결합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三. 어휘학습의 중요성

 

   언어의 학습은 다음과 같은 4분야가 있다. 첫째는 어음(語音)으로, 이는 어떤 글자를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이다. 두째는 어법으로, 이는 문장의 결구(結構)이다. 예를 들어 "나는 밥을 먹는다(我吃饭)"는 말을, 어떤 나라와 민족은 바로 이와 같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일본 사람들과 같은 경우에는  "我饭吃"이라고 말한다. 또 "白馬"와 같은 예를 들면, 우리의 허다한 소수민족들은 "馬白"이라고 하여, 우리들이 "白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요컨대, 문자의 결구(結構)에는 모두 하나의 법칙이 있는데, 이를 어법(語法)이라고 부른다. 셋째는 어휘인데, 어휘는 일체의 사물 · 행위와 성질에 대한 칭호이다. 예를 들어 "天"자는 영어로는 sky로, 러시아말로 Heбo로 읽는 등 다 다르다. 넷째는 문자(文字)인데, 언어의 부호이다. 가령 문자는 말에 들어 있기는 하지만 포함시키지 않으며 우리가 언어를 학습함에 있어서는 단지 3개 요소인 어음 · 어법과 어휘만 있다.

 

   어음(語音)의 문제는 그다지 크지 않은데 그 이유는 우리가 고서를 공부하면서 옛사람들이 독음(讀音)을 꼭 배워야 할 필요는 없으나, 단지 우리는 고금의 독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 된다. 예를 들어 "人"자는 북경의 발음으로는 "르언, ren"으로 읽으나, 상해의 발음에서 백화(白話)로는 "닌, nin"으로 읽고, 문언으로는 "쩐, zen"으로 읽는다. 우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옛사람들의 "人"자의 독음과 상해에서 백화의 "nin"는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고대한어를 학습하는 데 있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요, 옛사람들의 독음은 전문가들의 연구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예전처럼 북경음 대로 읽으면 되고, 상해 사람들은 상해음 대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어법(語法)은 비교적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며 우리는 과거 고대한어를 가르치면서 항상 오해를 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어법을 법칙이라고 설명하면서, 고대한어법 연구를 하기만 하면 마치 규율(規律)을 잘 파악하는 것과 같다든가 고대한어학습의 임무를 완성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어법이라는 것은 매우 온고성(穩固性: 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그것의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다. 예를 들어 "我吃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특히 비교할 만한 문장으로 말하면, "抗震救災"와 같은 것은, 옛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두 똑 같은 뜻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휘를 방치하고 연구를 하지 않았던 것이며 어법 혹은 미해결문제의 연구에 전념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선배들이 고문을 배우면서 어법으로부터 손을 댄 것도 아니었고, 그들은 모두 잘 알 수 있도록 읽어서 달달 외울 수 있었으며, 그때쯤 되면 어법이라고 하는 것이 두렵다거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오늘날의 일반인보다도 더 잘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어휘 분야에서 중점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외국어 어법을 배우는 것처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외국어의 어법과 우리의 그것은 차이가 아주 커서 익히지 않은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대한어와 고대한어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으므로 우리의 학습 중점은 마땅히 어휘 분야에 두어야 하며, 사의(詞義: 말의 뜻)의 고금 이동(異同)에 주의를 해야 한다. 무엇 보다도 먼저 우리가 어휘라는 관문을 돌파하려면 특히 자자 사용하는 말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옛사람들 하면, 어휘가 빈약하고, 쓰는 데도 부족하며, 오늘날의 우리처럼 풍부하지 않았나 하는 이런 견해를 가져 왔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옛사람들의 허다한 개념이 아주 세분되어 있었던 것인데도, 우리가 이해를 잘 하지 못해서 그것을 혼동하면서부터 어휘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 사실은 몇 군데에서는 오늘날보다도 한층 세분되었다. 예를 들어, 옛사람들은 청(靑) · 적(赤) · 황(黃) · 백(白) · 흑(黑) 다섯 가지 색깔(色)을 정색(正色)이라고 하였다. 이외에 다른 색깔이 있으니 청색에 황색이 더해져서 녹색(綠色)으로 되고, 백색에 청색이 더해져서 청록색(靑綠色)으로 되고, 적색에 백색이 더해져서 홍색(紅色)으로 되고, 흑색에 적색이 되어 자주색이 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색깔로써 보면 보다 분명하다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다시 홍색으로 말하면, 홍색에는 분홍색(粉紅) · 진홍색(大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옛사람들은 오히려 홍색만 있었던 것은, 분홍색이 없었기 때문에 어휘가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을 그렇지 않으니, 옛사람들은 진홍색을 적색(赤) 또는 주홍색(朱)라 하였고, 분홍색은 바로 다홍색(紅)이라고 하였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홍자(紅紫: 적자색)으로는 평상복을 만들지 않는다(紅紫不可爲褻服。)"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적자색은 정색(正色)이 아니라, 적색(赤)이 바로 정색이었기 때문이었다. "紅旗"는 현대한어로 말한 것이요, 일본의 《赤旗報》의 "赤旗"라는 두 글자는 우리 고대한어의 글자를 바꿔 쓴 것이다. 그러나 사의로써 말하면, 우리는 시대성에 주의해야 한다. 다홍색(黃)은 옛날에 분홍색을 말하는 데 쓰였으나, 당나라 때에 이르러서 도리어 진홍색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백거이의 시사 중에 "日出紅花紅勝火, 春來江水綠如藍"이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홍은 바로 진홍색으로 오늘날 의미와 똑 같다. 다시 쪽색(藍)으로 말하면, 옛사람들이 청색이라고 한 것이다. 청초(靑草) 할 때의 "靑", 청천(靑天) 할 때의 청(靑)이 바로 쪽색이란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옛사람들에게는 쪽색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므로 단지 그것을 "靑"자로 표시하였을 뿐이다. 옛날의 "藍"은 남색에 해당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靑出於藍而勝於藍"이라는 성어 중의 "藍"은 물감(염료)로서, 사직 · 마직물을 물들일 때 사용하는데, 그 색깔이 남빛이다. 그 의미는 청색은 물감 중에서 나왔으나 그 색깔은 도리어 물감 그 자체 보다 더한다는 말이다. 만약 이 부분을 해석을 하여 청색은 남색에서 나왔으나 도리어 남색보다 더하다고 해서는 죽도밥도 안된다. 아까 말한 백거의(白居易) 시사 중에 "春來江水綠如藍。"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가운데 "藍"은 청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물의 색깔의 푸른 것이 염료와 같다는 것이지 결코 녹색이 남색보다 더 푸르다는 말이 아니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말도 되지 않는다. 이로써 옛사람들의 개념은 아주 세분화 되어 있었는데 우리들이 주의를 하지 않아서 충분히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이요, 그래서 옛사람들의 어휘는 많았으나 사용하는 의미는 도리어 똑 같거나 어휘가 확실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정말로 깊이 들어가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옛사람들의 개념은 아주 세분화 되어서 어떤 것은 현재 우리들보다 더 세분화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다음과 같은 "枕" · "眠" · "臥" · "睡" · "寐" · "假寐" 몇 개의 글자에 대하여 말하겠다. 이들 몇 개의 글자는 비록 다 같이 잠을 자는 것과 관련이 있는 개념이라 하더라도 아주 세분화한 것이다. "寢"은 침상에 드러누워 잠을 자는 것이요, "臥"는 낮은 탁자에 개대서 잠을 자는 것이요, "眠"은 눈을 감았으되 잠이 든 것이 아니요, "寐"는 눈을 감고 감각이 없는 것, 다시 말하면 잠이 들었다는 뜻이다. 옛사람들이 "眠而不寐"이라 말하는 것은 바로 눈을 감았으나 잠이 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睡"는 앉아서 잔다는 뜻으로 이는 어떤 곳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이니 이는 "寢"과는 다른데, 그 이유는 "寢"은 침상에서 드러누워 자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假寐"는 의관을 입은 채 어떤 곳에서 조는 것을 말한다. 단지 상술한 잠과 관련이 있는 개념으로 말한 것이다. 이미 6개의 부류로 나눴는데 이로써 옛사람들의 개념 또한 세분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다시 "項" · "頸" · "領" 3글자를 예로 들어 보기로 하자. 이 3글자의 개념은 고대한어 중에서도 세분화되어 있었다. "領"은 목 전체를 가리킨다. "引領而望"과 같은 것은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린다는 말이요, "首領"은 머리와 목의 총칭이요, "項"은 목의 뒷덜미를 가리킨다. 옛사람들의 성어에 "項背相望"이란 말이 이런 것을 말하는데, 한 사람을 따라서 다른 사람이 간다고 할 때, 뒤에 있는 사람은 앞에 있는 사람의 뒷덜미(項背)를 보고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만약 "頸背相望"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이 되는데, 그 이유는 등 뒤에 있는 사람은 앞에 있는 사람의 목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領背相望"이라도 해도 좋지 않은데, 그 이유는 뒤에 있는 사람이 앞 사람의 "項"을 본 것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頸"은 보통 목의 앞 부분을 가리킨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刎頸"이란 자살한다는 뜻으로, 예를 들어 초패왕 항우(項羽)가 목을 찔러 자살한 것을 "刎項"이라 말할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項"은 뒤 쪽에 있는 것이니 그곳을 찔러 자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의 말에 대한 개념은 일부 부분에서 세분화되었기 때문에 그 말들이 빈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그 반대로 일부 개념에서는 도리어 아주 명확하게 분화되어 있다.

 

   다시 예를 들어 말하겠는데, 수염에 관한 문제로, 옛사람들은 "鬚" · "髭" · "髥" 3가지 개념으로 나눴다. 입 아래에 난 수염을 "턱수염(鬚)"라하고, 입술 위에 난 수염을 "콧수염(髭)"라 하고, 양 볼에 난 수염을 "구렛나루(髥)"이라고 하였다. 관운장의 턱수염이 매우 길었으므로 미염공(美염공)으로 일컬어졌다. 총체적인 명칭은 "鬚"자로 쓰여졌다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이러한 풍부한 개념이 없어 입술 위 · 턱 아래 · 양 볼에 관계없이 모두 수염이라고 부른다. 개념의 다소, 세분화나 미분화는 시대 풍속과 연관되어 있다. "鬚" "髭" "髥"의 구분이 있었던 것은, 옛날에는 남자들이 수염을 기르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구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수염을 기르는 사람이 많지 않고 이렇게 자세히 구분할 필요도 없으므로 수염으로 통칭해도 무방하다. 또 같은 예가 있는데, 우리는 고서상에서 "猪" · "馬" · "羊" · "牛"의 명칭과 종류가 무척 많은데, 이는 목축시대에는 갖 태어난 돼지 · 한 살 돼지 · 두 살 돼지에 대한 명칭도 모두 구별해야 비로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어느 시대와 어느 시대가 다르고, 어느 민족과 어느 민족이 다른 것이니, 그런 이유로 해서도 바로 간단하게 옛사람들의 어휘가 빈곤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어휘를 중시하는 첫째 문제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옛사람들의 어휘는 빈약한 것이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들은 옛사람들도 다 갖추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들이 바로 개념이라고 한다면, 옛사람들도 모두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이 사용한 것과 우리들이 현재 사용하는 것들과는 완전히 똑 같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紅"이라는 개념은 옛사람도 가지고 있었으나 "赤"자를 써서 의사표시를 한 것에 불과하다. 현재의 "睡"자는 옛사람은 "寐"자로 썼다. "잠에서 깨었다(睡醒了)"라는 말이 있는데, 옛사람들도 "잠에서 깨다(醒)"는 개념이 있었는데 "깨닫는다(覺悟)"라고 할 때의 "覺" 혹은 "寤"자로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의 "醒"은 나중에 생긴 글자로 상고시대에는 없는 글자였다. 우리가 오늘날 "자다(睡覺)"라고 하는 말이, 옛날에는 단지 "잠에서 깨다(睡醒)"라는 뜻이었다. 상고시대에는 오늘날의 "눈물 루(泪)"자가 없었으니, 옛사람들은 눈물이라는 개념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 당연하나, 상고시대에는 "눈물 체(涕)자로써 표시하였다. 《시경(詩經)》에 涕零如雨。"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눈에서 흘러 떨어지는 눈물이 비오듯 했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콧물의 뜻으로 되어 콧물이 비오듯 했다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바로 틀린 말이 된다. 그러면 옛사람들은 콧물을 어떻게 표시했을까? 그런 글자가 "콧물 사(泗)"자이다. 《시경(詩經)》에 "涕泗滂沱"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눈물과 콧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는 말이다. 또 상고시대에는 "눈동자 정(睛)"자가 없었으며, 이 "睛"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바로 안주(眼珠: 안구)이다. 옛사람들은 안구라는 개념이 있었으니, "眼"자를 써서 표현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자서(伍子胥)가 죽었을 때, 그가 일찍이 말하기를, 자기의 눈알을 파내서 성문 위에 걸어 놓았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때 파냈다고 말했던 "눈(眼)"은 바로 안구를 파내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옛사람들은 어떤 글자로 "眼睛"이라는 개념을 표시했을까? 이는 여러분들도 다 알고 있는 "눈 목(目)"자이다. 이 "目"자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다시 "高低"라고 할 때의 "低"자는 상고시대에도 없었다. 그 때에는 "아래 하(下)"자를 사용해서 "低"라는 개념을 표시했다. 고서 중에는 항상 "高下"라는 표현법이 있다. 맹자님께서는 일찍이 "如水之就下"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바로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근거로 우리들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늘날의 일반개념은 옛사람들도 모두 가지고 있었고, 어떤 말을 가지고 표시했느냐에 대해서는 오늘날과 똑 같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고대의 어휘에 관해서, 오늘날 우리들은 마치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으나 한편에서는 반드시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의해햐 할 것은, 어떤 어휘에 대하여, 생각을 해서 통하기만 맞는 것으로 하자고 해서는 안된다. 통한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때는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도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으며, 마침 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까 말한 소동파(蘇東坡)의 싯귀 "涓涓雲月稍侵軒"가 있는데, 그 가운데 "稍"는 점점이란 뜻을 말한다고 하였어도 능히 통할 수 있느나 이러한 견해는 옳지 않다. 이밖에 "時不再來"라는 이 구절은 《사기(史記)·회양후열전(淮陽侯列傳)》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는 시기라는 것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時不再來"라는 이 네 글자는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현대말로 해석하면 바로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이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時"는 시간이란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時機: 기회)라는 의미이다. "再"는 두 번이란 뜻이니, "再來"는 두 번 온다는 말이다. 전체적인 구절의 뜻은 "기회라는 것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통한다고 말한 것이 꼭 옳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하나의 예를 들면, 《사시(史記)·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에 "對案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은바, "案"은 탁자니, "對案不食"이란 바로 탁자를 마주하였으나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는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당시 만석꾼의 아들이 일을 그릇쳤는데, 만석꾼이 너무 상심하여 밥도 먹지 못하게 되자 그의 아들이 이로 인해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고사 중에서 바로 대안불식이란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나라 때에는 탁가자 없었으며, 옛사람들은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案"은 탁자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할 수 없으며, 이는 일종의 다리가 네 개 달린 쟁반으로 밥과 반찬을 놓은 데 쓰였다. 옛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는 바로 밥과 반찬을 쟁반에 차렸으므로 그것은 다리가 네 개였으며 지면에 편편하게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對案不食", 여기서 말하려 하는 것은 밥과 반찬을 놓은 쟁반을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도, 밥을 먹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다. 만약 여기의 "案"을 탁자라고 한다면, 의미는 통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면에서는 무슨 말인지 통하지 않는다. 언어라는 것은 사회성(社會性)이 있어서, 어떤 말이 여기서는 이렇게 말해도 능히 통할 수 있으나, 다른 구절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면 이는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예를 들어 "擧案齊眉" 이러한 성어에서 "案"을 탁자라고 말한다면 바로 통하지 통하지 않게 된다. "擧案齊眉"라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 아내와 첩이 있었는데, 남편은 양홍(梁鴻)이라 하였고, 아내는 맹광(孟光)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은 그들은 서로 존경하고 서로 아껴주었다. 맹광이 남편에게 밥상을 올릴 때는 밥과 반찬을 차린 쟁반을 눈높이까지 올렸다는 고사이다. (이 말은 아내가 남편을 깍듯이 존경한다는 말이다.) "案"은 쟁반으로만 해석되는데, 만약 탁자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맹광(孟光)은 아마 들어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요컨대, 옛사람들이 쓰는 말은 요컨대 민감한 것이 있어, 자세한 분석을 해야 하며, 수많은 재료 중에서 개괄을 해보고, 비교도 해보면서, 자기의 사고를 통해서 그 뜻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자전을 찾아보는 것 가지고는 충분하다 할 수 없다.    

 

         四. 어법의 학습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어법은 그렇게 중요한 말이 아니었던는 것은, 고금의 어법의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말은 고금에 어법의 변화가 없었다는 말 다름 아니요, 우리는 고대한어 어법을 꼭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 다름 아니다.

 

   고대한어 어법에 관하여 우리는 몇 가지 책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통속적인 것으로는 양백준(楊伯峻)의 《문언어법(文言語法)》이 있다. 나는 자세하게 강의하려 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꺽해야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할 뿐이다.

 

   누군가 항상 제기해 오던 것으로, 부정구(否定句)에는 말의 순서가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부정구(否定句)라고 하는 것은  "不" · "莫"을 가지고 있는 한 부류의 글귀이다. 예를 들어, 나를 "모른다(不知道我)"라는 말을 옛사람들이 말할 때는 말의 순서를 전도시켜 "不我知"라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부정구에서는 빈어(賓語: 목적어)를 동사 앞에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 "你"자가 있는데 옛날에는 "너(汝)"를 말하는 것이었다. "他"자는 "그(之)"를 말하고, "自己"는 "자기(己)"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부류는 죄다 대사(代詞: 대명사)로서 부정구 중에서는 일률적으로 동사 앞에서 목적어로 쓰여, "不我知" · "不汝知" · "不之知" · "不己知"라고 말하였다. 이런 것은 하나의 규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 사용하는 데 아주 보편적이었다.

 

   의문구(疑問句) 중의 빈어도 앞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떠한 제한이 있어서 빈어는 반드시 대명사일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何"자는 대명사의 하나인데, 그것이 "네가 무엇을 아느냐(尔何知)?"라는 구절에서는 빈어로서 사용되어, 동사의 앞에 나와야 한다. 만약 앞으로 나오지 않고, "尔知何"라고 말한다면, 이는 어법에 맞지 않게 된다. "何去何從"이라는 성어가 있는데, 그 뜻은 어떤 곳을 떠나서 어떤 곳을 따라간다는 말이다. 여기의 "何"자도 동사의 앞에 나와 있다. 《맹자(孟子)》에 "先生將何之"라는 구절이 있는데, "之"는 간다는 뜻의 "往"이니, "가다(去)"는 뜻이다. 여기의 하는 동사 지의 빈어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상고시대에 "往"자는 직접 목적어를 가져 오는 것이 아니므로 이 구절에서 "先生將何往"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인가(何以見得)?"라는 말이 있는데, 《맹자(孟子)》의 다른 구절에서 비교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맹자(孟子)》에 "天下之父歸之, 其子焉往(천하의 아버지가 그에게 돌아갔거늘 그 자제들이 어디로 갈것인가?)"라고 말한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焉"자는 "어느 곳(어디)"라는 말이요, "于"는 개사(介詞)이므로, "焉"은 "往"의 간접목적어에 해당 될 수 있다. 

 

   고대한어 어법을 학습하려면, 자세하게 분석을 해야 한다. 빈어는 앞으로 나와야 하는 것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반드시 부정구(否定句) · 의문구(疑問句)가 있다는 정황 아래에서이다. 그밖에도 빈어(賓語)는 반드시 대사(代詞)를 필요로 하며, 만약 보통명사(普通名詞)라고 한다면 그런 때는 앞으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不騎馬"라고 말해야 하고, "不馬騎"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知我"는 "我知라고 말해서는 안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은 부정구(否定句)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학습할 때 이런 조건을 망각하게 되면 바로 잘못을 저지르기 십상이다. 《논어(論語)》에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뜻은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은 것을 두려워 말고, 단지 자기가 남의 모르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구절에서 "不知己" 가운데 "己"자는 동사의 앞으로 나왔는데, "不知人" 가운데 "人"은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점에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법 분야에는 연구할 만한 것이 많아, 어떤 것은 더 자세히 연구해야 하는 것도 있다. 괜찮다면 예를 더 들어 보겠다. "之"와 "往"은 구분이 있으니, "之"는 원래 "往"이란 뜻이 있으나 어법상으로 보면, "之"와 "往"과 같지 않으며 그 중에도 차이가 있다. "之"의 뒤에는 직접목적어를 가져올 수 있으나 "往"은 그럴 수 없다. 예를 들어, 송(宋)나라로 간다고 말할 때는 "之宋"으로 쓸 수 있고, 제(齊)나라로 간다고 할 때는 "之齊"로 쓸 수 있으나, "往宋" · "往齊"라고는 말할 수 없다. 요컨대, 고대한어 어법에 관해서는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앞에서 강의한 것으로, 단지 한 가지 문제점만을 설명할 생각이었는데, 바로 이런 것들도 우리가 어법을 학습하는 데 있어 주의해야 할 점이다.

 

     五. 학습의 구체적인 대책    

 

   구체적인 대책을 언급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시간을 내서 천천히 배워야 한다. 응당 차례차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듯이 학습을 점차적으로 심화시키기되, 조급해서는 안되고, 단박에 잘 배우겠다고 기도해서도 안된다. 이렇게 되면 소위 "欲速則不達"이라, 일을 너무 서두르다 보면 도리어 이루지 못하게 되고 만다. 외국어를 배우면서 "俄語一月通"라는 것은 한 달 안에 러시아말을 배워서 능통했다는 말인데 이렇게 배운 것은 확고하게 배웠다고 할 수 없다. 고한어를 학습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니, 한 달 내에 잘 배우겠다고 기도해서는 안된다. 우리 생각으로 고한어 학습에는 한 해, 두 해 배우는 것은 기간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고 본다. 북경대학교 학생들이 매주 4시간씩 2년 동안을 배우는데, 그것도 기껏해야 일반적인 것만 배울 수 있을 뿐, 좀더 깊이 파고 들어가 배운다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학습은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되도록 빨리 잘 배우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규율(規律)을 잘 파악하기를 바라며, 규율을 잘 아는 것이 잘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규율은 중시해야 필요는 있지만, 규율을 너무 간단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말과 글을 학습하는 것은 반복적인 과정으로, 서둘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서의 단구(斷句) 아주 간단한 것이 아니며, 항상 단구가 잘못 될 수 있는 정황을 가지고 있다. 단구가 잘못 된 것(點錯的)이라든가 혹은 단구를 했으나 단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點不斷句的)이라면, 이는 틀림없이 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인 만큼, 이렇게 단구한 것이 맞는 것인지, 또는 그가 바로 틀림없이 이해한 것이라도 말할 수 없다. 제자분들이 항상 단구를 했는데도 제대로 단구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로서 어떻게 단구해야 제대로 된 단구냐고 물어 오는 것이다. 단구가 제대로 안 된 원인은 여러 방면에 있는데, 어휘방면의 원인이 있고, 어법방면의 원인이 있으며 또 옛날의 풍속습관을 이해하지 못한 원인 등등이 있다. 이로써 규율은 매우 복잡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규율만을 중시한다면, 감정지식 방면으로부터 손을 쓰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양자는 응당 결합되어야 한다. 아까 어떤 분이 이런 문제를 꺼냈는데 나의 대답은 항상 하나인데, 그것은 바로 많이 배워야 비로소 점차 쌓이기 시작하고, 쌓이다 보면 문제는 바로 해결이 된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하나의 문제의 해결은 자질구레하고 번거롭기만 하고, 더욱이 자기의 원망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 좋은 문장을 많이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문관지(古文觀止)》를 한 번 읽어 보는 것이 좋은데, 이 책은 길거리에서 파는 것이 있으며, 그 중에는 도합 2백여 편의 문장이 있지만 다 읽을 것까지는 없고, 좀 줄여서 읽어도 좋으니 3~50편도 좋다. 책을 읽으려면, 바로 사상성이 비교적 건전한 것을 읽어야 하고 혹은 자기가 읽기 좋은 문장은 할 수 있으면 외워 버리는 것이 것이 가장 좋으며, 적어도 숙독을 해야 한다. 그밖에도 또 읽어야 할 여러 시가 있는데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를 한 번 읽어 보라. 3백 편은 너무 많은 것 같으니 딱 자르는 것도 무방하며, 사상성(思想性)이 건전하고 애독하는 시를 골라서 한 번 읽어 보기로 하는데, 1~2백 편이라도 좋다. 책을 익숙할 수 있도록 읽어야 하며, 익숙해지만 교묘한 기능이 생기는 것(熟能生巧)이다. 그래서 고한어를 학습하는 가장 기본적 요구는 바로 3~50편의 고문과 1~2백 수의 당시(唐詩)를 읽는 것이다. 약간 숫자가 적어도 되지만 그럴 경우에는 보다 꼼꼽하게 배워야 한다.

 

   이밖에, 일부 상용어를 익혀야 하는데 이것도 아주 중요하다. 상용어에 관해서는 성실하게 익히기만 되며, 이는 파악하기가 쉽다. 너무 깊이 들어간 말은 익힐 필요가 없다. 만약 정도를 높이려고 한다면 비교적 정도가 깊은 책으로 《시경(詩經)》·《논어(論語)》·《맹자(孟子)》와 같은 것을 읽어도 된다. 먼저 《맹자(孟子)》를 읽도록 하고, 다시 《논어(論語)》를 읽는데, 이 두 책은 비교적 평이한 책이다. 《시경(詩經)》은 약간 어려우니, 가장 나중에 배우는 것이 좋다. 앞서의 《맹자(孟子)》·《논어(論語)》 두 책은 전체를 읽어야 하지만, 맨 나중의 《시경(詩經)》은 선본(選本)을 읽어도 된다. 《논어(論語)》는 양백준(楊伯峻)의 《논어역주(論語譯注)》를 선택하여 활용하면 좋고, 《맹자(孟子)》는 난주대학(蘭州大學) 중문학과에서 편찬한 《맹자집주(孟子集注)》를 읽는 것이 좋으며, 《시경(詩經)》은 여관영(余冠英)의 《시경선(詩經選)》을 채용하면 좋다. 이외에도 학습 분야에서는 더 한층 높은 요구가 있는데 여기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여러분은 기관의 간부로서 각자의 정확은 똑 같지 않다. 여러분은 아마 고대한어를 배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고, 그렇가면 조금만 배워도 괞찬다. 여러분들이 고문을 공부하다 보면 아마 곤란한 점도 있어, 바로 주해를 본다고 해서 반드시 완전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천천히 배우도록 하라. 어떤 통신교육학교(函授學校)에서 여러분들에게 일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음은 왕사원(王泗原) 선생이 또 여러분들에게 고문강의를 해 주실 것이다. 강의로써 많은 것을 말할 수 없는 만큼, 하나의 본보기로서 작용만 할 뿐이며, 주요한 것은 또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해보려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숙독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하며, 설사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시험을 삼아서, 초등학생들이 고문을 공부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그들이 배웠어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이와는 상관이 없으며, 그저 숙독(熟讀)을 하면서 점진적으로 접근해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아까 말한 자세히 읽어야 한다는 것과 모순되는 것같지만 사실은 모순이 없으며, 아까 말한 것은 모두가 비교적 높은 수준의 요구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두려운 심리(心理)를 가질 필요도 없으니, 그 이유는 고한어 중에는 반드시 쉽게 이해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야 흥미가 생기는 것이다. 흥미가 있어야 천천히 고문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 북경대학교 학생은 학교에서 2년 동안 배워야 하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3년 아니 그 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여도 무방하다. 나는 여러분들이 틀림없이 잘 배우리라고 확신한다. 이것도 나의 여러분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다.<끝> 

 

   필자는 김용옥 선생을 좋아하여 그분이 쓴 책은 거의 읽어 보았다. 그 중에서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은 한문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거기서 이런 말을 하였다.

 

   "한문은 분명히 한나라의 문장이며, 요샛말로 치자면 고전중국어이다. 공자(孔子)는 짱꼴라(짱꼴라는 쫑꿔르언의 동북계열 발음의 한국식 속화에서 생겨난 말임)이며, 맹자(孟子) 또한 짱골라이다. 한국 사람이 제아무리 오랫동안 한문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한문이 한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도사람들이 제아무리 영어를 사용해도 영어는 영어인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한문이라는 언어매개를 통해서 표현된 모든 우리 문화가 중국문화라는 말은 아니다. 너무 편협한 한글 개념에 집착한 나머지 국문학을 잘못 규정했던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고자 하는 뜻은 아니다. 언어매체수단이 국문학이라는 개념규정의 제일의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거론할 필요가 없다. 우리 일상 언어의 용법에서 한문(漢文)과 한자(漢字)는 구분되고 있다. 원래의 문(文)과 자(字)의 의미는 현대적 의미와는 매우 다른 것이지만, 지금 우리말에서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주부와 술부를 다 갗춘 센텐스 내지 센텐스의 집합을 의미하고 한자(漢字)는 그 센텐스의 단위가 되는 문자 내지는 그 문자로 구성된 단어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러한 구분에서 말한다면, 한문은 한국사람이 한국식 냄새가 물씬나는 식으로 썼든 어쨌든 그것은 절대적으로 외국어이며 고전중국어이며 문언(文言)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말과 혼동될 수 없다. 한국 사람이 영어로 자기 생각을 썼다고 그 영어가 한국어가 될 수 없으며 또 그 영어는 영국사람이나 미국사람이 쓴 영어와 맛이 다를 수 있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기본적으로 중국말로 읽는 것이 원칙이다. 이 원칙이 편의상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원칙은 반드시 원칙으로서 고수되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한문을 배우고자 하는 새 세대는 예외없이 현대 중국어를 먼저 배우고 그 바탕 위에서 고전중국어로서의 한문을 익혀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모화사상에서 이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요, 바로 우리 문명의 독자성을 찾으려는 노력의 첫걸음으로서 한문을 철저히 외국어화시키고 한문에 담긴 모든 중국문명의 누적을 철저히 외국문명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김용옥, 《동양학 어떻게 할것인가》, 통나무, 331~333)

 

 

 

 

이 작성자의 게시글 | 더보기
ckchang1님의 블로그
고대사에 관심이 아주 많답니다

덧글 2개 | | 조회수 48
| 인쇄 | 신고
  • 2010/03/02 13:40

    《고문관지(古文觀止)》란 책이름이다. 청나라 강희 연간에 오초재(吳楚才) · 오조후(吳調侯)가 편선(編選: 선택편집)하였다. "觀止"는 "탄관지의(嘆觀止矣: 감탄해 마지 않다는 뜻)라는 말에서 따온 말이다. 12권으로 되어 있으며, 위로는 선진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래로는 명나라 때까지 252편의 글을 골라서 엮었다. 산문(散文)을 위주로 하였고, 간간히 병문(騈文)이 있다. 시대의 선후에 따라 배열하였다. 수록된 것은 명편이 다수를 차지할 뿐더러 번잡한 것과 간략한 정도가 알맞으며, 매편마다 간단하면서도 요령있게 평주(評注: 비평과 주석)를 하였으므로 비교적 광범하게 유전되었다. 옛날에 독본으로 보급되었다.(《사해(辭海)》)

'퍼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조선시대 한글편지 서체자전 보도자료  (0) 2013.04.24
북두칠성  (0) 2013.03.31
[스크랩] 문화예술백배즐기기(서예)  (0) 2012.03.30
용신  (0) 2012.02.25
사주역사와 용신  (0) 2012.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