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미로 많은것을 판단하는데
올해 예측한 복잡 다난한 해가 될것이라는 모습중에 하나가
종북관련 문제을 우려하지 않을 수없다.
八曰四方。何謂四方?
曰: 君人者, 國小, 則事大國; 兵弱, 則畏强兵。大國之所索, 小國必聽
强兵之所加, 弱兵必服。爲人臣者, 重賦斂, 盡府庫, 虛其國以事大國, 而用其威求誘其君
甚者擧兵以聚邊境而制斂於內, 薄者數內大使以震其君, 使之恐懼, 此之謂四方
이 내용은 한비자의 八姦에 나오는데
권력을 무력화시키는 8가지 방법중에 마지막 四方이다.
이것은 외세을 이용하여 국력을 소모시키는 방법이다.
즉 대선주자들의 과거 방북 발언 내용을 미끼로
이것을 북한의 자의적이든 국내 세력과 모종의 관계든 우리 국민들은 생각해 보아야 할점이다.
결국은 남한의 분열을 조장하는데 일조을 할것이다.
이것을 이용하는 세력은 좋게 쓰든간에 위험한 발상임을 간과 해서는 않된다.
우리 국민은 이제 이런 술수에 흔들리지 않는 국민 이란것을
올해 슬러건인 국가 흥망 필부유처에서 보듯이 분명히 각인 해야 할것이다.
설령 북한이 폭로한다면 시원하게 발하고
우리는 접대성 멘트로 흘러 볼 수도 있는것을
그들은 죽을 죄을 지은것처럼 과대포장해서 겁 주는것이
웃기는 일을 벌리는것은 아닌지?
북한이 속은 검지만 순박해서 얼굴만 불거도 연애 한것처럼 생각 하는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치가들의 중립(中立)이라는 허구성(虛構性)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유추(類椎)해 보면, "중립(中立)적 처세(處世)"란 국가적 난관 시에도 자기안일에만 너무 치우쳐 처신하는 경우를 일컫는 일종의 실천행동 처세술이다. 남이 의롭게 죽고 사는 것은 ‘강 건너 불구경하기’ 식인 얌체들로 인정받기 쉬운 처신이라 하겠다. 알짜만 쏙 빼 먹으면 그만인 것이 그런 부류들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후세까지 비춰진 예가 허다하다.
고대 중국에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시대가 있었다. 중국 주(周)나라의 후반기(기원전 8~5세기)인 300여년과 명분뿐인 주(周)나라가 중앙집권이 쇠하는 시기까지 BC 770~476년을 춘추시대라 불리는데, 공자가 편찬한 노(魯)나라의 편년체 사서 춘추(春秋)의 이름을 따서 춘추시대라 하고, BC 475~221년은 대국들이 패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으므로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한다. 전국시대는 열국 중 강력한 제후국인 진(晉)나라가 다시 한-위-조로 나뉠 때부터 즉, 기원전 430년부터 진(秦)이 중국 통일을 달성한 기원전 221년까지 182여년의 기간을 전국시대라 한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221)는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아울러 부르는 말로, 기원전 770년 주(周)왕조의 천도 후부터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秦始皇帝)의 통일까지를 말한다. 상업이 많이 발달하였으므로 이때부터 철기가 사용되었다. 춘추전국시대는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기원전 221년의 진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 이전의 시기를 뜻한다. 이 시대는 중국사상의 개화결실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 부른다.
춘추전국시대란 동주시대(東周時代)의 다른 이름이다. BC 770~476년은 공자가 편찬한 노(魯)나라의 편년체 사서 "춘추 (春秋)"의 이름을 따서 춘추시대라 하고, BC 475~221년은 대국들이 패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으므로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한다.
전국책(戰國策)이란 책(冊)내용은 중국 전국시대의 유세가의 언설(言說), 국책(國策), 헌책(獻策), 그 외의 일화를 각 나라별로 편집하여, 정리한 서적인데 원래는 국책(國策), 국사(國事), 사어(事語), 단장(短長), 장서(長書), 수서(修書)라는 서적이 있었지만, 이것을 전한의 유향(劉向)이 33편을 모아서 정리해 놓은 책이다. 전국시대라는 시대 명칭도 유향이 정리해 놓은 전국책(戰國策)의 내용이 종합해 담긴 이 책(冊)에서 유래한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란 소설에 "가도멸괵지계" 방략을 거론한 대목이 있다. 바로 전국시대 때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순식(筍息)이란 신하의 책략을 택해 주변국 우(虞)나라를 평정한 책략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바로 진나라 때의 또 다른 이런 이야기가 있다.
진나라 헌공 때에 순식(筍息)이라는 신하는 인생전반기에서는 국가적으로 볼 때 그 역할로 인해 충신이라 불리워 졌다.그런 그가 말년에는 진헌공의 총애를 받는 려희(驪姬)의 술수에 휘말려 순식간의 판단 잘못으로 평생 쌓은 공을 엉뚱한 데로 쏟아 부어 결국 인생패망의 길로 접어들어 어찌할 수 없는 처신으로 국가에 중심 없이 처신하는 위해 되는 인물로 행세한 결과가 되어 역적이란 명칭으로 끝장을 보았다.
진헌공(晉獻公)은 정부인의 몸에서 난 태자 신생(申生)을 매우 신임했다. 태자 신생의 지-용-덕을 겸비한 지도력과 걸출한 인품은 가히 전 국민들이 존경을 드리는 지경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진헌공은 총희(寵姬) 려(驪)의 두 아들 태자 신생과 이복(異腹)인 해제(奚齊)와 탁자(卓子)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경위는 다음과 같다.
진나라가 헌공이 대신인 순식의 책략을 받아들여 일거에 우(虞)와 괵(虢) 두 나라를 평탄한 사실에 대해 신하들은 모두 진 헌공에게 축하를 하였다. 그러나 이 승리는 려희(驪姬)에겐 아무런 도움도 되지를 않았다. 적국과 전투를 하는 과정에서 장군인 태자 신생이 전사할 것을 염두에 둔 책략으로 려희가 꾸민 일인데 장군 이극이 신생을 보호키 위해 대신해 갔고 또 대승하였기 때문이다.
여희는 간신(姦臣)이며 배우(徘優)인 그의 최 측근 우시(优施)을 불러 태자 신생을 제거 할 일을 또 모의(謨議) 하였다. "신생의 일당인 이극(里克)은 급이 높을 뿐만 아니라 공로도 크다. 그를 어떻게 당적할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우시가 대답한다. "순식은 구슬 하나와 말 한필을 가지고 우와 괵을 소멸했습니다. 순식의 지혜는 이극보다 높을 뿐 아니라 공로로 보아서라도 이극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순식이 해제와 탁자의 스승만 된다면 이극쯤은 얼마든지 당적할 수 있습니다." 우시의 계략으로 순식은 헌공의 권유로 해제 탁자 두 왕자의 스승이 되었다. 이후 순식을 려희의 수족으로 만들었으나 신생의 스승 이극이 떠억 버티고 있는 마당에 도모하려는 일이 순조롭지가 못하였다. 려희는 우시를 불러 신생을 제거할 계략을 또 물었다.
우시가 답한다. "이극은 겉으로 강의(鋼義)한 것 같으나 기실은 담소하고 우려가 많은 사람입니다. 이해관계를 따져 튕겨 놓으면 그는 당분간은 중간적인 입장을 취할 것입니다. 그때에 다시 바짝 끌어당기면 우리 편으로 아주 넘어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극은 술을 즐깁니다. 부인께서 양 한 마리를 잡아 안주를 차려 주시면 제가 가지고 가서 이극을 시탐해 보겠습니다. 그가 우리 편에 넘어오면 그건 부인의 복입니다. 넘어오지 않는 경우이면 제가 그저 취중농담한 것처럼 얼버무리면 그만입니다."
우시가 려희가 마련해준 술상을 들고 이극을 찾아가 가예(暇豫)라는 곡을 불러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든 다음 간교한 비유의 말로 태자를 없앨 계획과 려희의 소생 해제를 세자로 책봉할 계획을 넌지시 다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극에게 이해관계를 은근슬쩍 건네며 권유하였다. 그리고 묵시적으로 이극의 위치가 불리할 것이라고 옥죄는 듯 위협도 하였다.
깜짝 놀라 술기가 싹 가신 이극은 탐탁지 않았으나 우시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자기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처신으로 중립(中立)하는 행동을 취할 것이라 대답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주공 편에 서서 세자를 죽인다는 것은 나는 차마 못할 일이다. 또한 세자를 도와 주공께 반항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감당 못할 일이다. 그러니 어느 편에도 들지 말고 중립을 취하면 가히 화를 면할 수가 있지 않겠나?" 우시가 다시 옥죄어 말한다. "대부께서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취하면 별고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극은 충직한 사람이었다. 꺼림직한 마음으로 우시와 헤어진 이튿날 곧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소집하여 비밀리에 의논하였다. 대부(大夫) 벼슬의 비정부(丕鄭父)가 물었다. "그래 대부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셨소?" 이극이 대답한다. "나는 중립을 취하겠다고 하였소이다."
비정부가 펄쩍 뛰며 말한다. "아하~! 이거 큰일났구료. 대부의 대답은 타오르는 불속에 가랑잎을 넣은 격이오. 아직도 일이 어떻게 결정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가 중립을 취하면 그들은 더욱 호기라 기세를 드높일 것이고 태자 신생은 더욱 고립될 것이오. 당장 재화(災禍)를 만나게 되었단 말이오!"
비정부의 격앙된 말에 이극은 뜨끔 하였다. 그는 이튿날 조회에 출근하다가 일부러 짐짓 말에서 떨어져 다리 아래로 굴러 실족하여 귀가 후 두문불출 하는 처신을 취하였다.
이런 사실을 빗대어 사신(史臣)은 시로서 탄식했다.
"배우가 염소 요리와 술을 가지고 춤을 추며
한곡조 노래를 지어 불렀도다.
우습구나! 소위 대신이란 것이 전혀 지각이 없어
도리어 중립을 취했기 때문에 사태를 악화시켰도다."
이러한 뒤 태자 신생은 더욱 고립되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려희가 또 우시를 불러 계교를 꾸민다. "태자 신생은 원래 착하고 효성이 지극하고 또 여러번 싸움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 그렇더라도 나의 소생 해제를 반드시 세자로 세워 놓아야 겠다. 무슨 좋은 수가 있겠는가?"
우시가 대답한다. "주공의 나이든 세 공자는 지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한놈씩 차례로 죽이면 됩니다. 그 순서는 태자인 신생부터 없애 놓아야 합니다. 신생은 원래 성품이 인자하고 정결(精潔)한 사람입니다. 대개 성격이 정결한 사람은 조금만 창피를 당해도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또 인자한 사람일수록 남에게 해(害)를 끼치지 않습니다. 창피 당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야 한번 분개하면 참지를 못하며, 남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래라야 곧잘 자기 자신을 망치는 법입니다. 남에게 칭찬만 받는 신생에게도 이런 결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공은 원래부터 신생의 좋은 점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인께서 섣불리 모략을 걸어 댔자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인은 밤에 주무시다가 울면서 주공께 호소하십시오. 세자의 좋은 면을 칭찬하면서 일변 가지가지 모략을 쓰면 주공도 거의 믿게 될 것입니다."
그 이후로 려희는 갖은 계교로 진헌공을 베개송사하여 결국 진헌공을 홀가닥 넘어트렸다. 진헌공은 자신이 신임했던 태자를 간신들의 무고한 참소를 헤아리지 못하고 드디어 세자를 죽이라고 영을 내렸다. 백성이 현군의 자질이 있다고 하며 따랐지만 세자 신생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 거짓혐의를 벗으려 하지 않고 분노한 마음으로 자결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혼군이 된 진헌공이 죽자 곧 려희의 아들, 열한살 난 해제가 군위에 오르고 또 한편 고약한 누명을 쓴 태자가 날 벼락 맞는 모습을 보고 아우인 두공자 이오(夷吾)와 중이(重耳)는 타국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다.
훗날 19년간 망명생활을 하던 중이(重耳)가 귀국하여 군위에 올랐다. 바로 그가 유명한 진문공(晉文公)이다. 진문공은 국가를 큰틀로 통치했는데 신생을 모함한 일당들까지 뒤 늦게 처형하여 진나라 기강을 올곧게 바로 잡았다. 진문공은 춘추오패중 한사람으로 제환공(齊桓公)과 더불어 후대까지 명군으로 이름나 있다.
태자 신생이 죽은 뒤 중립을 지키던 이극은 후일 우시와 해제 죽이는 데 주역이었고, 뒤 군위에 오른 여덟살 난 탁자까지 죽였지만 태자 스승인 이극의 중립 처신으로 태자 신생을 목숨 잃게 한 애매모호한 중립(中立) 처신의 이극의 책임은 평생 면할 수 없는 후대의 조롱거리 역사적 사실로 기록 되고 말았다.
그리고 순식 또한 려희의 욕심 채우는 데 어찌할 수 없이 결과적으로 조력자가 되었고, 특히 "배우(俳優)" 우시의 말재주에 놀아나는 꼬임에 빠져 해제와 탁자의 스승이 되어 잠시 뭇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인간적 의리 때문에 해제와 탁자를 목숨을 걸고 보호하다가 결국 착찹한 모양새로 사나운 군사들에게 지저분하게 피흘리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인간적 의리가 소중타 하겠으나 가히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소아배적인 단견으로 초래된 현명치 못한 처세관의 결과라 할 것이다.
위의 고사를 통하여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종북좌파들로부터 우롱당하며 혹세무민의 지경을 경험한 일들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을 서서히 표출하고 있음은 건국정신 자유민주주의 이념국인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천만 다행이라 할 것이다. "전교조"의 좌파지향의 교육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이념 정체성 해침도 인식했고 더 나아가서 지금까지 오로지 무엇이 나라 구하는 정의인지 살피지도 않고 오로지 제 한목숨 출세길만 달렸던 여야 정치인 들의 거개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노무현, 이명박의 좌파적 술수에 놀아났다는 사실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사불범정(邪不犯正)"이라 하였다. 하물며 빨갱이들이 이적행위하며 자유민주주의 이념국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밀어내려 하는 현시국에서 드디어 우리국민들이 속았다는 분노의 응징 횃불이 도처에서 서서히 일고 있다. 거짓스러움이 참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정의로움이다.
종북좌파들이나 이익만 추구하며 국가장래는 의중에도 없이 방향감각도 상실해가며 나대는 타락할 대로 타락한 정상모리배 정치인들을 지금 민주사회에서 엄히 응징하는 풍토가 급격히 일고 있다.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라 하였다. 진리(眞理)는 요새 설치는 정상모리배들인 정치가 악인들(종북좌파들)에게 결코 모욕이나 조롱당하지 않기 마련이다./2011. 10. 2.(일). 화곡 김찬수
일찌기 나라을 걱정하는 기자분이 있었네요.
진나라 려희의예는 한비자의 비간편에 왕을 무력화 시키는 예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