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철학

中庸(朝雨)

土談 2012. 8. 28. 18:29

 

 

 

과거에는 이런것이 나와는 별게의 세상으로 생각하여 왔다.

미흡하나마 노력하여 지금 살펴보니

이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한평생을 염원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나의 기억으로는 조부 서병익 선생께서

농사 꾼으로 ,아주 인자하신분으로,마을 뒷쪽 산믿에 흙벽돌집에 도방,도통을 하기위하여

 소수서원 인근 새내마을에서 전라도에 출입한것 외에는 공부하는 모습은 특별히 남아 있는것이 없다.

그러나 아래의 책을 보고 중용의 책 깔피에서 본 한시는

신선한 충격이였다. 네가 알고 있는 할배의 이미지을 확실히 바꾸고도 남았다.

내가 많은 한시을 접하였지만

절대 어떤 선현의 글보다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현재의 작가의 글을 아우르고 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하여 다른시각으로 관찰하는 프랑스의 베르베르,조안 스파르의 중심 상상도

여기서 살펴 볼 수있다.

 

 

제목:中庸

내가 이것을 처음 보았을때 제목이 없었다.

중용 책 갈피에 있었고

내용을 보니 새로운 세계을 염원하는것이 곧 중용의 세계가 아닌가 생각하여

붙여 보았다.혹 보시는 분이 좋은 의견이 있으면 받아들일 뜻이 있으니

논리적인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修己]관점

 

朝雨濛之萬樹春

 이른 아침 가랑비가 만물을 적시니 봄기운이 완연 하고

 

淸歌一曲灑心神

청아한 노래 한 곡조가(봄비 소리가) 신묘하게 마음을 정화한다.

 

露華先墜虫聲濕

앞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누에가 나무잎을 먹는 소리 같구나.

 

日影微斜客意新

아침 해가 밝아 오는것으로 새로운 기운을 받아

 

佛道雖尊難濟世

도을 수행하는것이 비록 존귀하나 세상을 다스리기 어렵고

 

英雄卒倒未圖身

수행자가 아직 자신이 원하는 구도을 이루지 못하여

 

獨專其利人何去

전지전능 하신 분은 어디로 떠났는가?

 

朱貴如金不救貧

귀함을 밝혀주는것은 물질로 가난함을 구하는것 같은것은 아닐것이다.

주귀처럼 금품을 탈취하여 원하는것을 구할 수없는것과 같다.

 

 

이 시에서 전반부에 자신의 수행의 기쁨에 가득함을 느끼고

                중반부에 자신을 완성하기 어려운 인고의 시간을 볼 수있고

                후반부에 자신이 원하는 중용의 도가 현실적으로 물질을 탐하는것이 아니니

                               남들이 뭐라해도 중화를 찾는 의지가있다.

 

 

중후반부에 자신이 수행하는것으로 현실에 적용하여 쓰기에는 괴리감이 들어

자신이 뜻하는것을 펼질 수없는것을 다른 매개체을 통하여 펼쳐보려는 의지을 볼 수있다.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자연과 인간이 같은 시각의 감성과 수호지의 주귀을 인용하여

시와 소설이 접목되어 스토리가 시대의 역사을 대변하는 한시는 보기 드문 예이다.

환타지에서 해성같이 나타나 악을 물리치고 불합리한 모순을 없에는것같은 꿈을 꾸는것일 수도 있다.

베르베르는 사람이 개미을 간찰하듯 제4의 세계가 인간을 노리게 처럼 다루는 시각으로 보고,

조안 스파르는 약자 선자가 부족함을 손오공 여의봉같은 나무인간을 의인화하고,콜럼이라는 흙으로  만든 거인을 수족처럼 쓴다든지 하는것이

이 작자가 추구하는 것과도 일맥 상통  할 수 있다.

 

露華로화-이슬이 뭉쳐서 형상化된것

聲濕-여기서 습이 누에꼬치을 풀려면 습하게 적셔야하니 누에 먹는것으로 봄

日影微斜客意新-미사- 해가 서서히 밝아오는 상태표현,객은 수행자,여행자,자연을 맞이하는 만물등

 

 

 사육신 성삼문 절개로 형장에서 읇은 시로 기개을 알 수있다.

여기서는 斜는 일몰하는 모습을 표현 

擊鼓催人命

西風日落斜
黃泉無客店
今夜宿誰家
요란한 북소리 나의 목숨 재촉하는데
해는 기울어지고 서풍이 부는구나
저승에는 여인숙도 없다는데
오늘밤은 뉘 집에서 묵어 가리오
등 요순의 수행 방법인 일일신 을 세긴 세수물을 생각하면

 

佛道雖尊難濟世에서

佛道-부처을 예기하는것이아니라 도을 딱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수행으로 보는것이 타당

難-여러 의미로 어렵다.비난하다,논변하다.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과 사회의 외면에서 주객의 입장에서 관찰하면 의미는 상통한다.

즉 자신의 오류을 수정하려는 의미

 도로서 사회의 그릇됨을 나무라는 의미 이런측면에서는 다양한 의미가 통한다.

英雄,利人,朱貴,매개체을 통하여 펼쳐보려는 의지,도의 완성(중용의 도)

 

露華先墜虫聲濕소백산 자락의 가장 큰 소득원인 누에을 먹여 연사을 생산하는것을

                     생활에서 기쁨을 도의 신묘한 기운이 충만한것으로 받아 들이는것도 가능하다.

英雄卒倒未圖身 (유태인의 아직 메시아가 도래하지않았는 것)이런 측면으로 이해하는것도 가능하다.

                      서양의 메시아가 아직 오지 않는것이나 동양의 3대 성현이 이시대에 있을 것인데

                       은둔 한것인지,알게 모르게 변화을 주도하는지,필요할때 없는것은 같은 것이고

                       변화을 열망하는 자들은 대리 만족을 시키는 정화작용의 대상을 내세워 라도

                       변화을 주도하는것이 요즘 베스트셀러가 되는 환타지 소설류라고 볼 수있다.

                       인간이 신화을 만들어 낸것을 생각해보면

                       이해 되지않는 자연현상과 두려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성 설화 영웅 신화을 만들어낸다.

                       이런 측면에서 신화나 환타지류나 이 시에서 간절히 원하는것이 같다.

獨專其利人何去개인적이나 대중을 위해서 간절히 필요함을 호소하기위한 강조로 본다.

朱貴如金不救貧그당시의 물질만능(일본의 침략)으로 인간의 본질을 잃어가는것을

                        개탄하는 것으로 볼 수있다.

 (旱地忽律    朱貴-수호지에 나오는 인물)
   이규와 동향인 기주 기수현 사람. 이규와 친분이 두터웠다.. 초기 왕륜이 있던 양산박에서 연락을 담당하던 두령이었다. 주막을 열어 각종 정보를 수집하여 산채의 눈과 귀과 된다. 지나가는 사람중 가진것이 많은 사람은 산채에 연락에 재물을 뺏고, 몽환약으로 마취를 먹여 살코기는 소금에 절이고, 기름은 등불 밝히는 데에 쓴다. 때문에 무척 끔찍한 짓을 한다고 하여 한지홀률(마른 땅을 기어다니는 악어)라고 불리운다. 후에 양산박의 주인이 바뀐 후에도 같은 일을 한다. 주부의 형이다. 지수성을 상징한다.
 (笑面虎 朱富)
   주귀의 동생. 형과 함께 기주 기수현 사람이나 서문에서 술집을 하며 무척 성실한다. 이운에게 무예를 배웠다. 얼굴 상이 우습게 생겼는지 호는 소면호(웃는 얼굴의 호랑이)라고 불린다. 지장성의 빛을 받았다. 이운을 꾀에 빠뜨려 이규를 구하고 형인 주부를 따라 양산박에 들어가서 주점을 맡았다.

양산박의 제3대파벌은 원래 양산박의 조개(晁蓋) 계통,조개가 죽은 후에는 임충(林沖),주귀(朱貴),등  이 파벌은 양산박의 가장 원로들이고, 양산박에 대한 공헌이 가장 큰 파벌이다.


 

작자의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살펴보고 의역을 하여 다른시각으로 번역해보자.

 

저가 전해 들은것 중심으로

병마) 모친도 일찍 돌아가시고,자기 부인 김예곡은 마을에 역병이 돌아 시집 형제 식구을 돌보느라 남들이 하지않는 일을 스스로 하여 병에 걸린분은 회생하고 자신은 일찍이 희생되었다.

일제)이복 동생들이 전쟁으로인하여 일본 본토에 보국대에 끌러가기 하루전날 밤 그 당시 상을 당하면 가지않는  풍습이 있었는지 작은 어머니마저 아들을 위해 희생했다.

문중이 중국으로 보내는 독립군 자금 연루 고초. 

육이오 사변)낙동강 전투에 패배한 북한군은 물러가고,그동안 북한군이 저지레한 마을을 수습하는라

남한군이 북한군 복장으로 가장하여 선동하여 이을 따르는 분들을 골짜기에 몰아넣고 집단 사살로 애꾸은 주변인들의 희생을 보았다.

 

[治人]관점

 

朝雨濛之萬樹春

 새벽 가랑비가 봄기운으로  만물을 적신다.

=>새벽,봄,비,새로운 희망을 추구 

淸歌一曲灑心神

청아한 봄비가 마음을 신묘하게 정화한다.

=>사회의 어려운 환경을 덜어내는 의지

 

 露華先墜虫聲濕

앞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말도 않되는 공포 같다.

=>전체적인 소리는 아름다운 하모니을 이루나 이상과 희망

   현실적으로 바로 앞에 떨어지는 음습한 빗방울은

   일본의 내정으로 한국을 일본화하려는 정책은 말도않되는 소리다.

   6,25포탄소리도 같은소리 

   태풍이 불어도 먼산은 고요한데 옆에 있는 나무들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치면서 몸부림친다.

  벌레가 느끼는 비 소리 즉 약한 자가 외세에 느끼는 두려움

日影微斜客意新

비오는 가운데도 해는 서서히 밝아 희망의 뜻을 세긴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라도 밤이가면 해가오는 법

佛道雖尊難濟世

도을 수행하는것이 비록 존귀하나 험하고 어려운 세상을 구제하기 어렵다.

 =>나라가 많이 노력하고 애을 써보아도 식자들은 부가항력을 느껴,

아무리 극한 사항이더라도 기본생활하고 할 수있는 환경이 선대부터 해오든  수행뿐

 이것으로 현실을 극복하는것이 마음의 갈등으로 인한 고통이였을것이다.

중국에 의화단 사건을보고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무모한 죽음 보단 글이라도 호소하고 싶었을것이다.

英雄卒倒未圖身

영웅이 갑가기 이르길 바라는데 나타나지않고

=>이 시대의 혼란함을 해결해줄 영웅이 출현 하길 간절히 바람

 獨專其利人何去

유일하게 해결해 주실분은 어디로 갔는가?

=>필요할때 슈퍼맨은 어디 있단 말인가?

   불세출 같은 항우와유방을 꿈꿀까?

 朱貴如金不救貧

고귀함을 밝혀주는것은 물질로 가난함을 구하는것 같은것은 아닐것이다

주귀(일본,북한)처럼 금품을 탈취하여 원하는것(합방,무력통일)을 구할 수없는것과 같다.

=>병마가 돈으로 해결되는것이 아닐것이다.

   한일 합병하는것이 조선이 잘먹고 잘살게 해주려는것이 아닐것이다.

   북한의 인민해방이 남한을 잘먹고 잘살게 해주려는것이 아닐것이다.

   도는 물질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에서는

1,자연과 인간의 환경을 통해서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고 있다.

2,글 속의 작가의 내면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 할 수있다.

3,역경을 이겨내어 자신의 삶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통해 호연지기을 볼 수있다.

4,스토리가 있다.

5,자신의 무거운 감정의 덩어리을 내려 놓을 수있는

  내외적인 성찰로 인간적인 감정의 순화을 도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한문은 한글자가 음양의 변화처럼 상반대는 뜻을 함께 품고 있다.

싯구 천체적인 의미에서도 음양의 변화처럼 수기 치인 관점이 성현과 선학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면모을 관찰 할 수있다. 칠언절구의 음률도 정확하다.

이 한시는 작자의 마음속에는 가장 어려운 시대에 모진 세상의 풍파를 힘겨운 경험으로 인한여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고 자신의 도의 수행에 대한 갈망,사회의 변화을 추구하여 중용의 도인允執厥中,중화,사랑이 만들어낸 산물이 아닌가 추론 해봅니다.

이 한편의 시의 마음을 무엇으로 말할 수있단 인가?

 

더 좋은 생각이있으면 받아들이겠습니다.조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서건석 土談體로  할배을 그리며 내용을 음미하며 일획을 펼쳐보았습니다.

 

 

菜根譚題詞 

 

逐客孤踪,屛居蓬舍,樂與方以內人游,不樂與方以外人游也。妄與千古聖賢置辯於五經同異之間,不妄二三小子浪跡于雲山變幻之麓也。日與漁父田夫朗吟唱和於五湖之濱·綠野之坳,不日與競刀錐,榮升斗者交臂抒情於冷熱之場,腥羶之窟也。間有習濂洛之說者牧之,習竺乾之業者闢之,爲談天雕龍之辯者遠之,此足以畢予山中之伎倆矣。

 

適有友人洪自誠者,持菜根譚示予,且丐豈予序。予始訑訑然視之耳。旣而撤几上陳篇,屛胸中雜慮手讀之,則覺其談性命直入玄微,道人情曲盡巖險。俯仰天地,見胸次之夷猶;塵芥功名,知識趣之高遠。筆底陶鑄,無非綠樹靑山;口吻化工,盡是鳶飛魚躍。此其自得何如? 固未能深信。而據所擒詞,悉砭世醒人之喫緊;非入耳出口之浮華也。

 

譚以菜根名,固自淸苦歷練中來,亦自栽培灌漑裏得,其顚頓風波,備嘗險阻可想矣。洪子曰「天勞我以形,吾逸吾心以補之;天阨我以遇,吾高吾道以通之。」其所自警自力者又可思矣。由是以數語弁之,俾公諸人人,知菜根中有眞味也。

 

三峰主人于孔兼題

 

홍자성은 채근담을 세상에 내놓기전에 우공겸을 찾아가 서문을 써달라고 청하면서 말하기을

'하늘이 내 육체를 괴롭힌다면 나는 내 정신을 즐겁게 하여 보완하리라.

하늘이 내 삶을 가로 막는다면 나는 내 도를 높게 하여 뚫고 나가리라.

 

이 채근담이 모두 중용의 일부이지만

조부의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이 말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채근담 서문은 한문편에 번역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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