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상 이야기

울지않는 바이올린

土談 2013. 8. 14. 20:21

 

 

 

 


울지않는 바이올린 

 

 


 

남편의 친구가 어느 날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는 얼굴도 잘 생겼으며 건강해 보였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남편과 같이 있는 동안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시를 옲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매혹된 나는

"악기도 다롤줄 아세요?"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악기요..?" 하더니 한참

무언가를 망설이던 그는 입을 열었다.

 

 

 

 

실은 바이올린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 되었지요"

나는 왜 그만 두셨냐구 물었다.

 

 

 

 

"실은 결혼 당시 제 아내한테 바이올린을

켜주었을 때,제 바이올린 솜씨가 형편없다고

 

 

 

 

하지는 않았지만,자기는 바이올린을 정말 잘하는사람을

몇 안다고 말하더군요. 무슨 뜻이었는지 알수 없었죠."

 

 

 

 

그 후로 그는 20년동안

단 한 번도 바이올린을 잡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자기 아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20년 동안이나

 

 

 

바이올린을 잡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참 상처받기 쉬운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내 남편도 얼마나 많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숨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 사람은 노래를 아주 잘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집에서는 편한 마음으로

노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도 싫어하고...

아내는 너무 시끄럽다고 한다고...

나는 진정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듯 정감있고 사랑이 넘치는 노래를 어째서

그 사람의 아내와 아이는 들어주지 않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설사 자기 남편이 노래를 음정이 틀리게

부른다 해도 가슴에 사랑이 있다면 기꺼이

들어주고 만족해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

 

언젠가 남편이 쉬는 날 집에서

조그만 의자를 만들었다

 

 

값 비싸고 고급스런 의자와는 달랐지만

나는 그것이 나름대로 큰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마음을 전해주는 방법은 그저 아무 말없이

그 의자에 앉아서 기뻐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남편이 직장에서 있었던 있을 자랑삼아 얘기할 때,

그것이 다소 지루할지라도 조금은 감탄하며 들어주는

것 역시 그에 대한 작은 사랑이자 배려라고 생각해 왔다.

 

 

 

 

이렇듯 가정이란 별 것 아닌 작은 이야기도 자랑삼아

나눌 수 있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다정하고

관대한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불품없고 조잡한 의자는

당신이나 앉으라"는 말로

남편을 외롭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미없는 말들은

남편의 가슴에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하나 더 보태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돌아간 후...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울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계속되는 한, 내 마음 속에도

역시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란 없을 것이다.

 

 

 

 

내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울게해 주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계속되는 한, 내 마음 속에도 역시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란 없을 것이다.

 

 

 

 

- 三浦綾子 - 

노벨평화상을 탄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쳐와 알베르 꺄뮤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쳐는 박사학위를 4, 5개나 가진 실력가이지만 아프리카의 적도 람바네라에 가서 과거에 백인들이 흑인들을 학대한 것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그 토인들을 치료해 주고 문둥병을 싸매 주는 일을 하다가 노벨상을 탄 사람입니다. 그는 거액의 상금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짓고 약을 사다가 치료해 주는 일에 썼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그를 20세기의 태양이라고 극착하고 있습니다. 한편 무신론적 실존주의자 알베르 까뮤는 노벨상 탄 돈으로 교외에 고급 별장을 짓고 자신의 쾌락만 좇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별장으로 신나게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 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일본에 유명한 그리스도인 작가 '빙점'의 저자 삼포능자 여사가 있습니다. 그는 구멍가게를 했는데 장사가 너무 너무 잘 되서 물건을 매일 트럭으로 떼와야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퇴근해 들어와서 '여보, 우리 가게가 너무 잘되어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으면 어떻게 하겠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어긋나는 생활이오'라고 말하는데 자극을 받고 그 다음부터 일부러 상품을 다 갖추지 않고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내주곤 했답니다. 인간으로서 좀처럼 하기 힘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 나는대로 틈틈히 소설 '빙점'을 써서 현상공모에 당선이 되어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전 10:24에 "누구든지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1923년에 시카고에 있는 에드거워터 비치 호텔에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하는 부호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그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강철회사 사장, 공익회사 사장, 가스회사 사장, 곡물업자 사장, 뉴욕 증권거래소 소장, 국무위원, 월가의 거물, 전매회사 사장, 국제 안전 은행의 행장, 이상 9명입니다.

 그런데 25년후에 한 기관에서 그들의 행방을 알아보니까 강철회사 사장은 망해서 빚더미 위에 있고, 공익회사 사장은 외국망명 생활을 하다가 무일푼으로 객사했고, 가스회사 사장은 미쳐 버렸고, 곡물업자 사장은 외국에서 고독하게 죽었고, 뉴욕 중권거래소 소장은 형무소에 있었고, 국무위원은 형무소에서 출감후 곧 사망했고, 월가의 거물은 자살했고, 전매회사 사장도 자살했고, 국제 안전 은행장도 마찬가지로 자살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한 목표가 아니면 이와 같이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고 맙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쓴 것을 어떤 것이든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죽을 때는 아무것도 못가겨 가지만 미리 하늘 나라에 우리의 선한 것은 보내 둘 수 있습니다.

 

당신도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울게 만들어 주며 살고 계시지요"?

역시 하늘여울 회원님다운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늘 이룻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며

메일을 보내 드리거든요

내 남편의 내 자녀들의 바이올린이 울지 않는지

지금 바로 확인 해주실래요?-이룻-

'문학 > 세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생전에 봐야할 한국의 백경  (0) 2014.03.03
[스크랩]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0) 2014.02.24
갈매기  (0) 2013.08.05
[스크랩] 비서들의 실수담  (0) 2013.07.02
그리움  (0) 2013.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