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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석전 황욱10곡병 해석

土談 2015. 7. 29. 23:52

석전 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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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욱(黃旭1898.1.12∼1993.3.22) 서예가. 전북 고창 출생. 호 석전 (石田). 만석꾼의 집안에서 태어나 한학(漢學)과 예(禮)ㆍ 악(樂)ㆍ 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 등 선비가 닦아야 할 육예를 고루 갖추었다. 한때 망국의 한을 달래며 금강산에 들어가 서예를 익힌 그는 손바닥으로 붓을 움켜잡아

    쓰는‘악필(握筆)’을 개척했던 대가. 해서, 행서, 초서 등을 즐겨 썼다.

    1953년 이후 전주에 은거하여 필력을 연마하였고, 모든 서체에 능하였지만,

    특히 행서(行書)ㆍ 초서(草書)에서 이름을 날렸다. 서예가로서 명성을 더욱 드높인 것은 그만의 독특한 필법인 악필법(握筆法)이다. 이 악필법은 1963년 초 심한 수전증(手顫症)을 극복하기 위하여 손바닥 전체로 붓을 잡는

    필법으로 1975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85세 때 오른쪽 손 사용에 곤란을 느끼게 되자 왼손 악필을 시도해

    다시금 경지에 이르렀을 정도로 평생을 예술혼으로 살았다. 서예가. 호는 석전(石田)ㆍ남고산인(南固山人)ㆍ칠봉거사(七峰居士)ㆍ백련산인(白蓮山人).

    전라 북도 고창 출신. 가학으로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1920년 금강산 돈도암(頓道庵)에 들어가 서예에 정진하였는데, 왕희지(王羲之)와

    조맹부(趙孟頫)의 법필을 중심으로 서예공부를 하였다. 1930년 32세 때 고향인 고창으로 돌아와 15년간 신위(申緯)를 사숙하며 서예에 정진하는 한편, 육예(六藝: 중국 교육의 여섯 가지 부문. 예ㆍ악ㆍ사ㆍ어ㆍ서ㆍ수)를 익혀 거문고와

    글씨에 마음을 의지하는 은둔생활로 일관하였다. 이때 그는 행서(行書)에 탁월한 경지를 이루어 친교가 있던 정인 보(鄭寅普)ㆍ김성수(金性洙) 등의 격찬을 받았다. 황욱이 서예가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3년 75세 때 전주에서 지방 유지들의

    초대로 회혼 기념서 예전을 열면서부터였다. 1960년경부터 오른손 수전증으로 붓을 잡기 어렵게 되자, 왼손바닥으로 붓을 잡고 엄지로 붓꼭지를 눌러 운필하는 악필법(握筆法)을 개발하였다.

    이에 따라 중풍으로 오른손에 마 비가 와서 좌수서예가로 유명했던 유희강(柳熙綱)과

    쌍벽을 이룬다는 평을 들었다.

    1974년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열린 서울 작품전(문예진흥원미술관)을 필두로

    1991년 역시 동아일보 사 주최의 회고전 때까지 해마다 전시회를 갖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서울 서예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의 악필 행초서(行草書)는 역대서법이나 기교를 초월한

    기세(氣勢)의 웅강(雄强)과 순박, 그리고 초탈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악필로 인하여 미세한 점획의 처리가 어렵게 되자 그는 행간의 운율과 운필의 단순화에 의하여

    격을 유지하는 독특한 경지를 체득하였다. 법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자칫 특징을 찾기 어려운

    많은 서예가들 가운데 그의 글씨가 유독 돋보이는 것은 이 같은 무기교(無技巧)와 육예에 의한

    탈속의 초연한 인품에서 유래된 것이란 평도 있다.

    대표적인 금석문으로 독립기념관 장건상선생어록비(張建相先生語錄碑)

    구례 화엄사 일주문, 불국사 종각, 금산사 대적광전(大寂光殿) 등 1,5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1993년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大賞) 수상자 방연(邦衍)은 그의 손자이다.

     

     

      

    <전주국립박물관 소장>

 

석전 황욱10곡병 해석

 

1 당 가도(賈島,779~843)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무르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스승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습니다.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다만 이 산속에 계시나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구름이 깊어 어느 곳에 계신지 알지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네
 

2 이백시

五老峰爲筆(오로봉위필)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三湘作硯池(삼상작연지) 삼상으로 먹을 갈아
靑天一張紙(청천일장지) 푸른 하늘 한 장 종이에
寫我腹中詩(사아복중시) 마음속의 를 쓰노라.

 

3 韋應物

懷君屬秋夜(회군촉추야) 그대를 생각하는 가을밤에
散步咏凉天(산보영량천) 홀로 거닐며 흥얼거리네
山空松子落(산공송자락) 고요한 밤 솔방울 떨어지는데
幽人應未眠(유인응미면) 그대도 잠 못 이루고 있으리


4제갈공명의 시

大夢誰先覺(대몽수선각) 좋은일 누가 먼저 깨달았나

平生我自知(평생아자지) 한평생 나 스스로 아노라

草堂春睡足(초당춘수족) 초가집 봄날의 낮잠에 만족하니

窓外日遲遲(창외일지지) 창밖의 해가 더디고 더디도다

 

 

5도연명시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 봄물은 사방 연못마다 가득 차고

夏雲多奇峯(하운다기봉)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를 이룬 것이 많구나.

秋月揚明輝(추월양명휘) 가을달은 밝은 달빛을 발하고

冬嶺秀孤松(동령수고송) 겨울 고개엔 외로운 소나무가 빼어나도다.

 

 

 

 

6

朝吟東渚風(조음동저풍) 아침에동쪽물가의풍경을읊조리고,

夕弄西嶼月(석농서서월) 저녁에는서쪽섬(水中에있는작은산혹은섬)의달을희롱하는구나!

人境非遙(인경양비요) 사람들이사는세상은생각컨데(아마도) 아득하지(멀지) 아니한데,

湖山自幽絶(호산자유절) 호수와산은절로그윽하고뛰어나도다!(절묘하구나)  

 

 7

松栢入冬靑(송백입동청) 소나무와측백나무는겨울이되여야 푸르르고
方能見歲寒(방능견세한) 바야흐로 능히 한겨울이 되여야 볼 수 있다
聲須風裏靑(성수풍리청) 소리는 꼭바람 속에서 만이 들리고
色更雪中看(색갱설중간) 빛갈은 눈속엣서 더욱 더 잘 보인다

 

遠去名利窟(원거명리굴) 명리굴을 멀리하고

自稱安樂窩(자칭안락와) 자칭 안락집이라

雲歸白石洞(운귀백석동) 구름은 백석동을 돌아가고

鶴立碧松柯(학립벽송가) 학은 푸른소나무 가지에 있구나

 

 

9孟浩然

遊人五陵去(유인오릉거) 떠도는 나그네 오릉으로 가는데

寶劍置千金(보검치천금) 천금의 가치가 있는 보검을

分手脫相贈(분수탈상증) 헤어질때 그대에게 드리니

平生一片心(평생일편심) 평생 편치 않을 마음이라네

 

 

10 朱子詩

晨窓林影開(신창임영개) 새벽 창가에 숲 그림자 열리고

夜枕山泉響(야침산천향) 밤 베갯머리엔 산 샘물소리 울려오네

隱居復何求(은거부하구) 속세를 떠났으니 다시 무엇을 구하리

無言道心長(무언도심장) 말없는 가운데 도심(道心)은 자라나는데

출처 : 金春剛 書畵
글쓴이 : 春剛(金永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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