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엣세이

비수대전

土談 2012. 7. 4. 17:09



비수대전.


5호 16국시대 383년 11월에 일어난 전진과 동진의 대규모 전투이다.


당시 전진의 3대 황제였던 부견이 동진의 비수를 공격함으로써 일어난 전투인데, 병력차이가 어마어마 하였다.

전진의 병사는 선봉군 25만, 후군 60만, 기병 27만, 서역원정군 10만, 기타 수비군 포함 100만이 넘는 숫자.


이에비해 동진은 8만이라는 군대로 전진을 맞이한다.

분쟁은 크게 두번정도 일어났는데 두 경우 모두 '도하'에 승부처가 갈리게된다.


첫번쨰의 도하는 부견군과 사석군(동진)의 대치사항이었을때 부견이 사석군에게 파발을 통한 항복권고, 하지만 항복을 권고한 역할의 '주서'가 동진의 편으로 돌아서면서 부견군의 약점을 말하면서 조언을 해준다. 그 조언을 받고 도하를 저지하는 입장이었던 동진군의 선공, 부견군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주며, 전투의 흐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비수대전의 흥망을 결정하는 전투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데,사석이 부견에게 서신을 보내 부견의 군 배치에 관하여 트집을 잡는데 그내용이 "공격한 측이 강가에 진을 치니 이는 곧 지구전의 계책이고, 빨리 싸우자는 것이 아니군요. 만약 진을 옮겨 조금 물러나면 사석군이 건널 수 있게되니 이 역시 좋지않겠습니까?"라는 의견을 보낸다. 이와같은 서신을 받은 부견과 다른 장수들과의 의견차이가 있었지만 부견의 강경책으로 전투가 진행된다. 부견의 작전목표는, 사석군이 절반쯤 도하했을떄 공격한다는 것이 주목표였다. 하지만 여기서 부견은 자신의 군사들에게 작전을 설명하지 않은 큰 잘못을 저지른다.


그렇게 부견의 진 물리기가 진행되고 동진의 도하가 시작되면서, 일이 계획되로 진행되어가는듯 하였으나, 부견군에 들어있던 주서(양양자사로 잡혀가 있던 사람)가 병사들 사이에서 "진나가 군에게 패했다"라는 유언비어를 뿌리고다니자 후퇴하고 있던 부견군이 퇴각을 하기시작한 것이다. 부견은 동진의 도하를 보고 공격을 명령하였으나 이미 부견의 명령이 하달되기전에 동진군의 계략이 실행되고있었으므로 병사들은 지휘계통의 혼란과 동진군의 공격으로 도망치다가 패하고 만다.


 지휘계통의 중요성,주서 내부인력관리의 중요성

전진은 비수대전의 패배로 국가 통제력을 잃고

귀환의 성공한 부대는 모용수가 이끄는 3만명 뿐이었으며 전진은 망하고 384년 후연을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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