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의 군대가 대패한 다음에야 원소는 비로소 조조가 예상 밖으로 강대하다는 것을 알고 허도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200년에 원소는 10만 정예군을 조직하여, 저수(沮授)를 감군(監軍)으로 삼아 업성(鄴城, 하북성 임장현 서남)에서 출발하여 여양(黎陽, 하남성 준현)으로 진군했다. 그에 앞서서 원소는 대장 안량(顔良)을 파견해 황하를 건너 백마(白馬, 하남성 활현)로 진격하게 했다. 조조는 모사 순유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력부대가 황하를 건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 군사를 연진(延津) 일대로 보냈다. 원소의 주력을 그쪽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는 경기병을 보내어 안량이 있는 백마를 기습 공격했다. 과연 원소는 조조의 군대가 황하를 건너려 한다는 정보를 받고 이를 막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달려갔다. 그런데 조조가 직접 경기병을 거느리고 백마를 기습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백마를 포위하고 있던 안량은 기습을 받고 싸움 같은 싸움은 해보지도 못하고 대패했다. 안량은 전사했으며 부하들은 모두 달아났다.
조조가 백마의 포위를 풀고 안량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원소는 노기 충천하여 발을 굴렀다. 그는 급히 대장 문추(文醜)에게 기마병 5∼6천 명을 주어 조조를 추격하게 했다. 문추의 기마병이 남쪽 언덕에 이르러 보니 조조 군대의 무기와 투구, 갑옷이 온 들판에 널려 있었다. 조조의 군대가 이미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한 문추는 땅에 널려 있는 무기들을 거두게 했다. 그러자 이때 매복해 있던 조조의 군사 6백 명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오더니 원소의 군대를 공격했다. 문추는 멍하니 있는 사이에 어떻게 달아났는지도 모르게 목이 달아났다. 연거푸 싸움에서 대패하고 안량과 문추 같은 명장까지 잃은 원소는 화가 나서 10만 대군을 휘몰아 조조를 맹추격했다. 그는 곧장 관도(官渡)까지 추격하고서야 영채를 세웠다. 조조의 군대도 관도에다 진을 쳤다.
관도대전 유적지
이때 모사 허유가 원소에게, 조조 군대가 군량이 모자라니 소부대를 보내어 관도를 에돌아 허도를 기습하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소는 허유의 건의를 냉담하게 거절했다. 원소 밑에서는 자기 뜻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한 허유는 야밤에 몰래 조조를 찾아갔다. 허유와 조조는 오랜 친구사이였다. 조조가 잠자리에 들려는데 허유가 찾아왔다는 전갈이 전해졌다. 조조는 기쁜 나머지 맨발로 뛰어나가 허유를 맞이했다. 그는 허유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잘 왔네, 잘 왔어.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네.”
그러자 허유가 말했다. “자네 상황이 위급하다는 걸 알고 일부러 소식을 알리러 온 걸세. 원소는 1만여 수레의 식량과 무기를 오소(烏巢)에 두고 있네. 거기를 지키는 장수는 순우경(淳于琼)인데 방비를 허술하게 하고 있네. 만약 자네가 경기병을 보내 기습을 하여 불태운다면 사흘 안에 원소의 군대는 달아날 것이네.”
대단히 중요한 정보였다. 조조는 관도 진영의 방비를 단단히 한 다음에 직접 기마병 5천을 거느리고 한밤중에 오소로 달려갔다. 도중에 원소군의 초소들을 지나쳤지만, 원소군의 깃발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증원군인 줄로 알고 막지 않았다. 순조롭게 오소에 당도한 조조의 기마병들은 순우경을 죽이고 1만여 수레의 양식들을 불태워버렸다.
군량기지 오소에 있던 양식들이 모두 불타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관도의 원소군 장병들은 대경실색하여 어쩔 줄 몰라했다. 원소의 수하에 있던 대장 장합(張郃)과 고람(高覽)은 군대를 거느리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조조의 군대는 승세를 타고 원소의 군대를 맹렬히 공격했다. 원소의 군대는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원소와 아들 원담(袁譚)은 북쪽을 향해 황급히 도망쳤는데 기마병 8백 명만이 그들을 따를 뿐이었다. 관도대전 이후에 원소의 주력은 전멸되다시피 했다. 원소는 2년 후에 병들어 죽었고, 조조는 7년 동안 원소의 잔여세력을 소멸하고 중국의 북방을 통일했다.
관도대전 약도
채씨 신인 차마경(蔡氏神人車馬鏡) [후한시대]
갈유 오련 항아리 [후한시대]
독각수(獨角獸) [후한시대]
옥으로 만든 띠고리 [후한시대]
북방을 통일한 조조는 208년 가을에 30만 대군(대외적으로는 80만이라고 했다)을 거느리고 형주를 치려고 남으로 내려왔다. 그때 형주를 지키던 유표는 이미 죽고 아들 유종(劉琮)이 아버지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었는데 그는 조조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했다. 유비와 손권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연합하여 조조에게 대항하기로 했다. 손권은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정예군 3만을 거느리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하구(夏口)에서 유비의 군대와 회합했다. 그런 다음에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서쪽으로 더 올라가 적벽(赤壁)에 이르러 장강 남쪽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장강 북쪽엔 조조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호북성 포기(蒲圻)에 있는 적벽대전 유적지
북방에서 내려온 조조의 군사들은 남방의 습한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는 데다가 배 멀미가 심해서 많은 이들이 병에 걸렸다. 사정이 그렇게 되자 조조는 모사들을 불러 해결책을 모의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연환계(連環計)’를 내놓았다. 수군의 크고 작은 배들을 십여 척씩 쇠사슬로 한데 묶은 다음 배 위에 넓은 판자를 깔아놓으면 사람들도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 있고 심지어는 말들도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곧바로 명령을 내려, 쇠사슬로 배를 묶는 데 필요한 큰못을 밤새 만들어 배들을 한데 묶게 했다. 그러고 나서 시험해 보니, 사람들이 아무리 뛰어다녀도 배가 흔들리지 않아 마치 평지를 달리는 듯했다. 조조는 참으로 묘한 착상이라며 흡족해했다.
후한시대의 전투함 복원도
조조가 연환계로 배들을 한데 얽어매는 것을 본 장강 남쪽의 연합군은 화공(火攻), 즉 불로 공격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배에 어떻게 불을 붙이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의논해도 기발한 방법이 나오지 않자, 주유 수하의 대장 황개(黃盖)가 조조에게 투항하러 가는 척하면서 배를 몰고 가서 불을 놓겠다고 자청했다. 주유와 황개는 화공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비밀리에 의논했다. 그 다음에 황개는 투항하러 가겠다는 편지를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는 편지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수십만 대군이 쳐내려오는 상황에서 지각 있는 놈이면 투항해오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주유는 강동의 군사들을 조밀하게 배치해 놓고 화공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은 다음에 동남풍이 일기만을 기다렸다.
208년 동짓날, 밤이 되자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거세졌다. 황개는 또다시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어, 야밤의 어둠을 틈타 군량을 실은 배 수십 척을 몰고 투항하겠다고 알렸다. 그날 밤 황개는 기름을 바른 마른 갈대와 볏짚을 가득 싣고 그 위에 유포(油布, 기름 천)를 덮은 이십여 척을 몰고 조조의 수군이 있는 강북을 향해 갔다. 각각의 배마다 뒤에 작고 빠른 배들을 세 척씩 달고 그 위에다 궁노수들을 매복시켰다. 돛을 올리자 배들은 바람을 타고 쏜살같이 강북으로 달렸다. 조조의 장병들은 동오(東吳) 손권의 대장이 투항해 온다는 말을 듣고 모두 배 위에 나와 구경을 했다. 배들이 조조의 수군영에서 2리쯤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 황개는 쥐고 있던 큰 칼을 들어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이십여 척의 배에서 일제히 불길이 치솟았다. 화염에 휩싸인 이십여 척의 배들은 세차게 부는 동남풍을 타고 나는 듯이 조조의 수군영으로 육박해 들어갔다. 갈수록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조조의 수군영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수군영의 둘레는 모두 쇠못과 쇠사슬, 판자들로 연결해 놓은 연환선(連環船)들이어서 떼어놓을 수도, 달아날 수도 없었다.
그 많은 배들이 활활 타서 재가 되는 걸 그저 눈 뻔히 뜨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미 작은 배에 뛰어오른 황개의 군사들이 배를 몰고 와 조조의 군영에다 불붙은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슭에 있는 조조의 육군영도 불바다가 되었다. 일순간 장강 수면과 강북 기슭은 하늘로 치솟는 불길로 인해 대낮처럼 환해졌다. 강북에 있는 조조의 영채에 불이 일자 유비와 주유는 즉시 수륙 양군을 휘몰아 총공격을 했다. 조조의 군대는 손도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대부분 몰살당했다. 혼이 나간 조조는 패잔병들을 이끌고 작은 길을 따라 허도로 도주했다. 적벽대전은 손권과 유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적벽대전은 적은 수로 많은 수를 이긴 유명한 전투 중 하나로서, 삼국의 정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적벽대전에 관한 기록인 『포기현지(蒲圻縣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