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철학

주나라 백규의 경제모략 사상

土談 2013. 3. 24. 14:18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백규

남이 버리면 나는 사들이고, 남이 사들이면 나는 내다 판다

[ 白圭 ]

백규는 전국시대 사람이다. 나고 죽은 해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예로부터 상공업으로 크게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일생은 『사기』와 『한서』의 「화식열전」을 통해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백규는 주(周)나라 출신으로 대략 위나라 문후 때 재상을 지낸 저명한 법가 인물 이괴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백규의 벼슬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대상인으로 추측한다. 『한서』에 따르면 그는 경영과 무역 그리고 생산발전 등 경제에 관한 이론을 최초로 수립한 인물이다. 백규는 장사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오묘한 경제이론을 만든 인물이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너무 보수적이라 경제무역이나 생산발전과 관련된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책으로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도 그가 전국시대 중국에서 아주 뛰어난 사업가이자 경제모략가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시세의 변화를 낙관하다

백규의 경제모략 사상에서 가장 기본을 이루는 방법이 '시세의 변화를 낙관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사회경제 문제를 대하는 당시의 인식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시장경제가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는 오늘날에서도 여전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백규는 전국시대 초기에 생활했는데, 이 시기는 사회체제로 볼 때 노예제에서 봉건제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당시 주요 생산방식은 농업과 목축업이었다. 시장교환이 있기는 했지만 진정한 상업시장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런 사회조건에서 백규는 특유의 지혜와 날카로운 상인의 안목으로 시세의 변화를 관찰하여 매매교역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고 나아가서는 사회생산의 발전을 촉진했다. 이는 누가 뭐라 해도 확실히 진보적인 사상이자 방법이었다.

이에 대해 사마천과 반고는 『사기』와 『한서』를 통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역사서들에서는 백규의 '시세의 변화를 낙관한다'는 사상을 법가 사상가인 이괴가 주장한 '땅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사상과 함께 거론한다.

전국시대 교통망과 주요 상업지의 분포도

경제발전은 유통체제에 의해 좌우된다. 유통은 교통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백규의 경제이론은 전국시대 각국이 앞다투어 닦은 교통망과 그에 따라 성장한 상업도시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지도는 전국시대 교통망과 주요 상업지의 분포도다.

남이 내다 팔면 나는 사들이고, 남이 사들이면 나는 내다 판다

이는 백규의 가장 기본적인 경제모략 사상이자 돈을 버는 수단이었다. 당시 상황에서 백규는 간단한 물물교환법을 통해 상품을 교역했다. 즉 서로에게 있고 없는 물건을 교환하여 사회적 수요를 만족시키고자 했다. 그의 뛰어난 점은 그가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통찰했다는 데 있다.

다른 사람은 물건이 남아돈다고 생각하여 내다 팔 때 그는 대량으로 사들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부족하다고 여겨 사들일 때 그는 급히 필요로 하는 곳에 내다 팔았다. 쉽게 말해 쌀 때 사들이고 비쌀 때 내다 팔아 이익을 얻고 재부 축적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다. 2천여 년 전에 살았던 백규는 이런 점을 깊이 인식하여 '남이 내다 팔면 사들이고, 남이 사들이면 내다 판다'는 이론을 제출했던 것이다. 지금 보아도 감탄할 만하다. 그의 이론은 진·한 이후 각 왕조가 시장을 만들어 교역을 시행하고 국가에서 물건을 공급하는 일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백규는 아주 예민한 상업적 머리를 갖고 있었다. 동시에 돈을 버는 데 있어서 뛰어난 전문가였다. 그는 경제형세와 교역장소에 대한 정보와 시장상황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했다. 따라서 반응이 아주 빨랐다. 일단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사들이거나 내다 팔았다. 그는 분초를 다투어가며 경영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치 "사나운 짐승이나 새처럼 재빨랐다"고 한다. 그는 '시간이 곧 돈'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일찍 깨우쳤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물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의 축적을 매우 중요시했다.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노복들과 고락을 같이했다. 거친 음식이라도 달게 먹었고, 하고 싶은 것을 자제할 줄 알았다. 그는 오늘날 사치와 향락에 빠져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니는 일부 졸부들, 못된 재벌들과 그들의 못된 자식들과는 전혀 달랐다. 진정한 경제개혁가와 경영창업자들이라면 백규의 이런 사상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백규는 전체 국면을 살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거시적 안목으로 경제무역과 부의 축적이란 문제에 접근했다. 그는 경영과 사업에서 작은 이익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고, 삐뚤어진 논리와 얄팍한 꾀로 이익을 얻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의롭지 못한 재물은 더욱이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화물의 교역과 유통을 생산발전과 긴밀하게 연계시켜 경영상 자본이 축적되고 생산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했다.

그는 많은 것으로 모자란 것을 보충하거나 구제할 것을 주장했다. 즉 각종 상품이 서로 교환되고 유통되면서 서로 생산발전을 촉진하도록 돕게 하고, 경영무역과 화물교환이 경제와 생산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백규의 경제모략 사상은 소박하면서도 심오하다. 그는 "풍년이 들면 곡식은 사들이고 실과 옻은 내다 팔았으며, (흉년이 들어) 누에고치가 나돌면 비단과 솜을 사들이고 곡식을 내다 팔았다."

이러한 그의 경영 방법은 단순히 이익을 남겨 돈을 버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풍년이 들어 곡식 값이 싸면 그것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대신, 농가에서 필요한 실이나 옻을 내다 팔아 그들의 수요에 부응했고, 흉년이 들어 곡식이 모자라면 곡식을 내다 팔아 식량을 공급했던 것이다. 이는 경제무역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다리와 같은 작용을 했다.

그는 기상 변화, 즉 날씨를 잘 살펴서 화물을 비축할 때와 유통시켜야 할 때를 정확히 파악했다. 풍년 때 양식을 많이 사들여 흉년이나 재난이 닥칠 때 대량으로 내다 팔았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었는데, 해마다 사들이는 물건이 배로 늘어났다. 또 흉년 때 일반인들이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서 이듬해 재기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경영인이 가야 할 진정한 길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돈을 불리려면 값싼 곡식을 사들이고, 수확을 늘리려면 좋은 종자를 썼다." 그는 스스로 근검절약 하는 생활로 모범을 보였고, 돈을 벌기 위해 속이거나 잔꾀를 부리지 않았다. 소박하면서도 성실한 경영인으로서 고상한 '상업 도덕', 즉 '상도'를 갖추고 있었다. 그의 '상도'는 오늘날 경제인들이 가야 할 길을 인도하고 있다. 그를 본받고 배워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무나 배울 수 없는 경제사상

백규는 상인이긴 했지만 그의 경제모략 사상은 넓고 깊었다. 학문의 경지에까지 이른 그의 사상은 일반인이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많은 고관들이나 권력자들은 백규의 이런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의 경제사상을 실행할 수 없었다. 오늘날 경영자들이라도 그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자신의 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나의 경영 방법은 마치 이윤과 여상(강태공)이 계책을 꾀하고, 손자와 오자가 군대를 부리고, 상앙이 변법개혁을 시행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임기응변하는 지혜가 없거나 일을 결단할 수 있는 용기가 없거나 주고받는 미덕이 없거나 지켜야 할 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할 사람은 내 방법을 배우고 싶어도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경제는 기초다. 경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오늘날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백규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백규는 경제를 나라를 세우고 군대를 부리고 법을 시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것들과 나란히 경제를 거론했던 것이다. 이는 그의 인식 수준이 보통을 뛰어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의 경제모략 사상 역시 상대적으로 정치와 군사에 치우쳐 있던 당시 통치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백규는 경제가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를 인식했을 뿐 아니라 그것의 복잡성과 경영관리의 어려움까지 간파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경제와 경영에 관계된 사람은 나라를 관리하고 군대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지혜와 결단 그리고 임기응변할 줄 아는 능력과 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 그는 자기통제 내지 자기극복까지 몸소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면 경제라는 학문을 제대로 배울 수 없으며, 경제에 종사할 수도 없다.

백규는 노력과 실천으로 자신의 경제모략 사상을 구체화했으며, 후대까지 큰 영향을 주는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마천은 "백규는 직접 시험을 해보았고,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아무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가 "끝내 자신의 사상을 알려주지 않은" 것은 지나쳤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상인 국적 경영분야

백규·사사

상업

현고

상업

자공

위(衛)

상업

범려

상업

곽종·탁씨

야철업

의돈·조병씨

야철업·소금업

정정·도산

야철업

공씨

위(魏)

야철업

오씨과

진(秦)

목축업

과부 청

주사업(朱砂業)·소금업

경제발전은 부유한 상인과 경제 전문가들을 배출했다. 이 표는 춘추전국시대 이름난 경제인들과 그들의 주요 경영분야를 나타낸 것이다<네이버 지식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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