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철학

동원

土談 2014. 12. 28. 09:29

2015 을미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을미년은 그동안 진행하던 일들을 추스리는 과정입니다.

농사에 수확을 영업에 이익을 문호들의 글 각분야에 결과을

생산의 여정에 따라 분배의 희비를 알 수있는 전 단계입니다.

갑오년은 강한 추진력에 하자가 있다면 을미년은 작은 문제가 일을 그르치게하는 결과에 방심을

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즉 고가의 장비을 들여 생산을 하는데 단순 기능을 간과한다든지

작은 부분의 하자로 신뢰를 잃어 목표에 지장을 초래하면 속상하잖아요.

달리 표현하자면 긴 여정에는 에너지 보충이 필요한데

간과 한다면 얼마나 불편 하겠습니까?

쉼게 보자면 실수 할 수있으니 헛수은 금물.

이것은 단편적인 예이니까 참고을 하시는것도 좋을 것같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생각해보면

자신의                       존재을             인식하고

             다양한 경험과 논리를             통하여

                         삶의 가치를             아름답게 펼쳐

                         바름의 길을             더불어 하는 여정은 세상에서 예외는 없다.

 

주체가 목적을 출입하여 인식,통,아름답게,더불어 하는 여정은 하나다.

지구가 사계를 인식,통,아름답게,더불어 하는 여정은 생명체를 영속하기위한 중화의 연속이다.

 

내륙의 3황과 주공이 펼치는 대서사시나 지중해을 무대로 신들이 펼치는 노래들도

시공과 관계없이 이 한마디의 범주를 벗어 나지않는다.

이 보다 후에 만들어진 종교들도 주인공과 추종자들도 이 생각의 틀 속에있다.

그럼 동서고금 쓰레기 처럼 살다간 사람들도 문자화하여 표현은 안되지만

이면에는 이 글과 함께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주인공 편모 여동생의 어려운 환경과

전당포 주인과 학대받는 여동생

돈과 전주를 희생하여 새로운 이상을 꿈꾸고 실행하지만 허구임을 알아차리고

헌신적인 여자를 통하여 애벌래을 탈출하는 멋 또한 여기에 있다.

임꺽정도 모양만 다르지 내용은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

돌스토이의 안나..에서

3커풀을 통하여 새로운 변화을 모색하고 나날이 성장하고 일상적인 일의 기쁨 맛에서 부활을 느끼는 것이

동양의 사서삼경의 의미와 공자의 열정적인 학구 모습과 다른 점이 어디 있겠는가?

단테의 신곡에서 불교의 내면 세계을 느낄 수 있다.

 

각 모습에 결과의 득실에

바이오 리듬,주식의 사이클,사람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은 하나 임을 알 수있다.

마천루을 올리고,에레베스트 같은 높은 산이 이 보다 깊은 바다가 있어도

지구는 동그란 모습을 하는 것 처럼.

 

지금 내가 삼층교육대 수준의 노동을 하고 살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것 또한

즐거운 동원과 어울림이다.

이런 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아무 의미없이 보일 지라도

그 작은 행위에서 거창한 이상을 꿈구며 나아가는 것과 분리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이치는 하나지만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개인 역량의 문제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보면 사내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돌을 씹고

정권교체시 나타나는 레임 덕을 느낀다던지

더 설명하면 주방 아지매가 바뀌는 인수인계 과정에서 그동안 없었던 일이 발생하여

두 분중에 책임 소재가 불 분명하고 아니면 전자가 고의로 꾸밀 수도 있고.

하나의 예을 더 들면 기계라 할 것도 없고

건설현장에 단순 기능을 하는 부품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경영과 경기 지표을 읽는 것은 말 할것도 없고

중고를 수리하여 공급하는 것이 돈이 되는데

수리을 하다보면 굽은것 나사가 돌아가지 않는것 망치와 하마로 두를겨 작동하도록 하면 되는데

그동안 경험 상으로 보아 멀쩡한것이 쓰임에 문제가 없어야 되는데

부품으로 역활을 못 할때  수리에 애를 먹고 시간만 보내고 결국은 고철 쳐리 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가 환자를 살피는 것도 이와 다를 것이없고

멀쩡한 인간이 무위도식하며 부모를 애태우게 하는 것도 이와 어찌 다르단 말인가?

이래도 이해가 안되어 근엄한 표정을 한다면

녹슬고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부분은 폐유을 칠하여 부패를 막고 잘 돌아가게 한다.

이 폐유는 말그대로 기계에 일정한 역활을 하다가 폐기 처분하는 물질인데

부품과 폐유에서 폐유의 역활이

사회의 깜빵 같은 역활을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미미한 일 안에 생각없이 흘러가는 것도 역의 속성을 간과 하는 것과 같다.

사회의 위해한 범죄나 윤리는 개인의 선택 이지만 만인의 입장에서는

그 경각 심을 통하여 사회가 바르게 가기위한 여정은 하나이다.

한 나무에 일찍 떨어지는 잎처럼.

 

이 한마디을 통하여

아래 시 처럼 가슴 시리도록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으로 거듭 되는 삶 어떻습니까?

 

 

개을 모독하는 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개만도 못한쎄끼" 이런 좋은 말을 들어야 좋겠습니까?

이제는 폐유만도 못한 인간아!

모든것이 바르게 가기위한 여정 이라지만 이런 소리까지 듯고 살지 말아야지요.

이런 역설적인 표현에서

행동양식은 공자, 내면세계는 심오한 불교,반어적인 노자을 연상하는

괴테을 떠올리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요?

"내가 악마지만 인간들 하는 꼴락서니 보니 해꾸지하기조차 싫다".

 

아래 시 처럼 가슴 시리도록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좋지만

나는 이런 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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