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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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6. 11. 23:18

出門如見大賓하고 使民如承大祭하며 己所不欲을 勿施於人이니 在邦無怨하며 在家無怨이니라

仲弓(중궁)이 仁(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논어’ ‘顔淵(안연)’편의 대화다.

出門은 문밖을 나가 조정에서 벼슬을 살거나 남과 교제하는 일을 말한다. 如見大賓은 公侯(공후)의 신분을 지닌 손님을 뵙듯이 恭遜(공손)한 태도를 지니라는 뜻이다. 如는 ‘∼처럼 하라’다. ‘명심보감’에서는 ‘出門如見大賓, 入室如有人(입실여유인)’의 예절을 가르쳤다. 使民은 인민에게 力役(역역)을 부과하는 일을 말한다. 如承大祭는 천신이나 조상신을 제사 지내는 일을 받들어 행하듯이 敬虔(경건)한 태도를 지니라는 뜻이다.

‘己所不欲, 勿施於人’은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뜻으로, 己와 人이 상대된다. ‘논어’ ‘衛靈公(위령공)’편에서 공자는 仁의 심리인 ‘恕(서)’를 설명하면서 이 말을 사용했다. 在邦은 제후의 조정에서 벼슬을 사는 일을 말한다. 在家는 벼슬 살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말한다. 無怨은 남으로부터 원망 받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顔淵에게 克己復禮(극기복례)가 仁이라고 했다. 仲弓에게는 敬을 주로 하고 恕를 행하는 것이 仁이라 했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도 하지만, 정약용은 克己가 곧 恕이므로 공자의 가르침은 一貫(일관)되어 있다고 했다. 자기를 가다듬어 공손한 사람은 남을 공경하는 태도를 지니고 또 남을 배려하는 恕의 마음을 지닐 것이다. 공자는 일상생활에서 이 恭과 敬과 恕의 태도를 유지하라고 했다. 우리는 대개 이 평이한 가르침을 제대로 體得(체독)하지 못한다.

 

공자께서 인해대한 질문에 답하길

묻는 제자 마다 격에 맞게 설명한다. 이것이 다양하다고 해서 이질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로 통하고 있다. 마음을 바르게 쓰면 만사가 형통 하다는 취지다.

즉 인과 예를 행하자면  일상생활에서 "恭과 敬과 恕의 태도를 유지"

격에 맞게 마음을 바르게 쓰는 근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자신으로 부터 발로하여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 인과 예가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즉 자신의 "恭과 敬과 恕를 수행한다고 해서 인과예가 실현되는것이 아니다.

반드시 제가 치국평천하로 서로 화합할때 저가 정의한 인과예에도 부합한다.

이런 용어를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적용하고 이해하는것이

추상적인 용어를 쉽게 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의가 오히려 사고의 폭을 좁히고 노자에 나오는 염려를 할 수있는데.

규정한 정의을 보더라도 구체적이지고 이런 걱정을 불식하지않을까 생각해본다.

 

사기’에 의하면 사마우는 공자를 죽이려 했던 司馬桓(추,퇴)(사마환퇴)의 아우로 말이 많고 경솔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사마우가 仁(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仁者(인자)는 말을 삼가서 입 밖으로 내기 어려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마우는 형 사마환퇴가 宋(송)나라에서 亂(난)을 일으킬 때 가담하지 않았으나 남몰래 근심하고 탄식했다. 공자는 그 마음을 살펴, 스스로 돌이켜 볼 때 허물이 없고 괴로워할 바가 없다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였다.

憲問(헌문)’편에서 공자는 “仁者는 근심하지 않고 知者(지자)는 헷갈리지 않으며 勇者(용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지,용자는 왕을 보필하는 일을 분담하는 역활을 담당하고 있다 이것은 즉 백성을 위한것이 궁극적인 목적인데 이 3가 조화롭지 못 하면 즉 나라와 백성이 바로 서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 신체의 조화에서 이루어 알수 있고,자연의 이치와도 상통하니

단순 인,지,용의 단어을 글자 자체의 의미로 일반적으로 보는 것은 공자의 바램도 아닐것인데,

큰틀에서 이해하는경우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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