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이 자신을 극복하는것이 어렵고 남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탓이다.
禮인즉 仁으로 보아 광범위한 禮인 전반적인 절차에 따른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것
이또한 두가지 측면으로 접근하면
사회성과 개인성
상호 유기적으로 개인과 집단의 활동에 따라 변한다.
자신의 중요성이 전자와 후자사이에 쓰임이 달라 절대성은 없다.
즉 모든것이 상대적으로 변화하고 작용한다.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는것 또한 바람직한 일인가?
仁하다는 말이 참으로 어렵다.어찌 사람으로서 다문화 속에서 행한단 말인가?
저는 仁이란 누구나 쉽게 이해 하는 관점에서
이해관계 없이 즉 사리사욕없이 사랑으로 사람을 기르고 가르치는 분들을 仁하다.하고 싶다
이런 측면에서 공자께서 드물게 백이숙제을 인하다고 하신 관점과도 부합 하지 않을까?
왜야하면 지금까지도 청렴 결백함을 기르고 가르침의 표본이 되니까?
같은 글자 수, 같은 구조, 같은 범주의 문장을 셋 이상 늘어놓는 것을 類句法(유구법)이나 累層法(누층법)이라 한다. 視는 見과 다르고, 聽은 聞과 다르다. 보려고 해서 보는 것이 視, 들으려고 해서 듣는 것이 聽이다. 공자는 私欲을 이기려면 視聽言動을 主宰(주재)하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보아, 禮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말고 말하려고도 행하려고도 하지 말라고 했다.
앞에서 四毋와 함께 알아봤다.
너무 광범위한 禮의 기준이 애매하다.
저는 禮을 모든것이 결정되고 실행하는것으로 단정하고 싶다.
즉 입법,사법,행정등등 결정되고 실행하는것에 왈가불가 하지 말라!
저가 정의한 仁과 禮가 공자의 논리에도 부합하고 현대인들의 관점에서도 개념이 명확하고 음양 오행의 자연 원리에도 일치하니 적극 활용하는것이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을 막는일 일 것같다.
공자께서 仁즉 禮로 보아
이해관계 없이 즉 사리사욕없이 사랑으로 사람을 기르고 가르치는 것=모든것이 결정되고 실행하는것
같은 일관성 속에 차이을 느끼지 않는가?
선악,흑백,참거짓,착하다,예의 바르다.인자하다.법없이도 산다.이런 논리의 허상이 머리에 가득 차 있으면
어찌 진정한 인과 예를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