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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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6. 5. 22:22

. 論篤은 말하는 것이 도리에 부합하여 그럴싸함을, 是는 앞에 나온 論篤의 사람을 가리킨다. 與는 許與(허여)로, 옳다고 찬성함이다. 한문에서는 동사인 술어가 앞에 오고 목적어인 빈어가 뒤에 오지만 빈어가 지시대명사면 앞에 두어 강조할 수 있다. 君子者乎는 그 論篤의 사람이 군자다운 사람인가 半信半疑(반신반의)하는 말이다. 色莊者乎의 주어도 그 論篤의 사람이다. 色莊은 외부에 나타나는 언어나 용모가 莊嚴(장엄)함을 말한다. ‘∼乎, ∼乎’는 ‘∼일까, 아니면 ∼일까’라고 묻는 어구이다.

군자는 언어나 용모가 그 내면과 일치하여 表裏(표리)가 한결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色莊者는 겉으로는 장엄하지만 안으로는 약하고 몹쓸 자이다. ‘憲問(헌문)’편에서 공자는 “有德者(유덕자)는 必有言(필유언)이어니와 有言者(유언자)는 不必有德(불필유덕)이니라”고 했다. 내면에 덕을 지닌 사람은 善言(선언)을 하게 되지만,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내면에 덕을 갖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색장자의 언론이 독실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얼른 인정하고 편들면 안 된다고 공자는 가르쳤다.

이 말인즉 말만 뺀지르하게 하는 사람을 경계 해야 한다는 취지다.

보통 사람들은 진부를 가르기 어렵고,

이또한 지나치면 매사에 의구심을 품어 선택의 분별력을 흐리게하여 추진력에 문제을 만든다.

그러나 상식을 벗어난 포장은 귀가 즐거울지라도 한번더 숙고하고 결정하는것이 좋은 방법이다.

 

求也의 求는 염유의 이름이다. 退는 물러난다는 뜻이니, 주저주저하는 면을 두고 한 말이다

由也의 由는 仲由(중유) 곧 자로이. 兼人(겸인)은 남의 몫까지 아울러 실행한다는 말로, 지나치게 적극적인 면을 두고 한 말이다

공자는 제자의 성격이나 처지를 일일이 고려해서 가장 적절한 가르침을 주었다.

현재는 이 보다 더한 정보와 충고,조언을 하지만 정성을 드린 만큼 결과가 미미하고 오히려 반감을 사는 경우가 많다. 상호간에 자신의 말과행동에 문제는 없는지 서로 생각해 볼이다.

같은 말을 해도 때와 장소에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니 쉬운 일이 아니다.

원론 적인 측면은 누구나 인정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차이가 나니 또한 어렵다.

선택의 폭이 좁았던 공자 시대와 복잡하고 다양성의 변화에

사람이 살아가는 무게감은 많은 차이가 있을것이다.

현대에도 분명히 공자 보다 더한 스승들이 즐비 할 수도 있는데,

이런 미담은 잘 들리지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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