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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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6. 5. 00:52

 回는 顔回(안회) 곧 顔淵(안연), 賜(사)는 子貢(자공) 곧 端木賜(단목사)다. 其庶乎는 ‘거의 가까우리라’의 뜻이니 안회의 삶이 道에 가깝다고 평한 말이다. 其∼乎는 추측과 감탄의 어조를 포함한다. 屢空(누공)은 쌀독이 자주 빈다는 뜻이다. 不受命(불수명)은 운명을 고분고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貨殖(화식)은 재물을 불린다는 말이다. 焉은 단정의 어조를 지닌 종결사다. 億則屢中은 사고방식은 도리에 적중했다는 말이다. 億은 臆測(억측)이나 忖度(촌탁)의 뜻이다.

子夏(자하)가 말했듯이 당시 사람들은 富貴在天(부귀재천)이라 여겼다. 안회는 운명에 순응해서 安貧樂道(안빈낙도)했지만, 子貢은 운명을 개척해서 재물을 불렸다. 공자는 안빈낙도하는 안연에 대해 칭찬은 하면서도 그 가난을 애석해 했다. 또 자공의 삶에 대해서는 인위적 측면을 비판하면서도 그 사고방식이 자주 사리에 맞는 점은 인정했다.

물론 공자는 천명을 따르는 삶을 높이 쳤다. 하지만 쌀독이 자주 비는 屢空(누공)을 좋게 보지는 않았다.

현대인들이 안회를 닮고 싶을까? 자공을 닮고 싶을까?

이런 질문 조차 어리석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나 무엇이 더 어려운가?

 

子張이 問善人之道한대 子曰, 不踐迹이나 亦不入於室이니라

공자와 제자 子張의 문답을 기록한 ‘논어’ ‘先進(선진)’편의 이 章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진리에 도달한 정도에서 聖人이나 君子보다 낮은 단계에 위치한 善人의 위상을 논했다고 보는 설이다. 주희에 따르면 善人은 좋은 바탕을 지녀 악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아직 옳게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둘째는 善을 修善(수선)이란 동사로 풀이하고 善人之道는 사람을 교육하는 방도를 가리킨다고 보는 설이다. 정약용의 설이다.

첫째 해석이나 둘째 해석 모두 踐迹은 성인의 도를 따르고 前轍(전철)을 지키는 循道守轍(순도수철)을 뜻한다고 본다. 그런데 첫째 해석에 따르면 不踐迹은 善人이 創業(창업)에 약간의 능력이 있다고 해서 聖人이 실천했던 자취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道는 善人이 처한 위상을 가리킨다. 이 해석은 인간의 差別相(차별상)에 주목했다. 둘째 해석에 따르면 不踐迹은 善人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남을 가르치는 방법에서 볼 때 ‘성인의 자취를 따르게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假設(가설)의 언어가 된다. 사실, 공자는 사람을 가르칠 때 (렵,엽)等(엽등·등급을 뛰어넘음)이 없어야 한다고 경계했지, 善人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亦은 ‘아무래도 역시’의 뜻이다. 不入於室은 도의 깊은 곳에 들어가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저는 포장된 말은 잘 못한다.

이 문구는 자장이 평소 스타일이 오버하는 경우가 허다 했던 모양이다.

자장이 선한 도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동문서답 하는격으로

공자는 이때다 하고 자장의 버르짱머리을 고쳐야 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것 같다.

선현의 전철을 밟지않으면 도에 이를 수 없다는 취지인데 즉 단계를 밟으라는 말이다.

이렇게 설명하시는 의도를

주역의 관점에서 보면 화택 서합 으로 설명해 보는것이 아주 현명 한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가 먹는 것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순서를 차례 차례 거쳐야 가능 하다.

서합의 괘을 구체적으로 연구해보면 더욱 재미을 더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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