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在어시니 回何敢死리잇고
공자가 匡(광)이란 곳에서 陽虎(양호)란 사람으로 오인되어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을 때 일이다. 제자 顔淵(안연)이 일행보다 뒤처져 아무도 그의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 마침내 안연이 합류하게 되자, 공자는 “네가 죽은 줄만 알았다(吾以汝爲死)”고 했다. 그러자 안연은 위와 같이 대답했다. 안연은 공자가 해를 모면하고 피신해 계시리라 확신했고, 어떻게든 선생님을 모시려고 했던 것이다. ‘논어’ ‘先進(선진)’편에 나오는 이 일화를 통해 안연이 공자를 얼마나 신뢰하고 경애했는지 잘 알 수가 있다.
大臣과 具臣의 차이를 아는가? 대신은 道로써 임금을 섬기는 신하, 구신은 인원수만 채울 뿐인 신하다. ‘논어’ ‘先進(선진)’편의 이 장에서 공자는 둘의 차이를 대조함으로써 불의의 권력자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기원전 498년 무렵, 魯(노)나라 대부로서 실권을 쥐고 있던 季氏(계씨) 일문의 季子然(계자연)은 공자의 제자인 子路(자로)와 염有(염유)를 가신으로 삼고 의기양양해했다. 그는 공자에게 “仲由(중유·자로)와 염求(염구·염유)는 大臣이라고 할 만합니까?”라고 물어 긍정의 대답을 듣고자 했다. 대부가 자기 신하를 대신이라 일컫는 것은 참람한 일이다. 공자는 그 권력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그래서 “당신이 다른 인물들에 대해 물을 줄 알았는데, 고작 중유와 염구에 대해 묻는단 말이오?”라고 되묻고는, 그 두 사람은 결코 대신일 수 없다고 논평했다.
여기는 많은 심리전이 있는것같다.
계씨입장에서는 자신의 부당한 정치을 자로,염유를 등용하고 공자을 통하여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공자 입장에서는 계씨가 진지한 물음으로 대단한 조언을 구하는 줄 알고,아니면 자신를 등용하는 기대감에 있었는지 자로와 염유에 대하여 묻자, 질문의 의도을 폄하 시키고,제자들을 낮추지만
너들은 그 보다도 못한 다는 의도로 비꼰다.
평소 공자 지론이 혼란한 국면은 피하는것이 상책인데
제자을 그곳에 등용된것을 묵인하고 자신도 알아주길 바라는 뉘앙스을 풍기는 제스쳐을 취하는것은
어떻게 이해하는것이 좋겠는가?
季氏(계씨)의 가신이었던 子路가 동문의 子羔(자고)를 계씨의 영지인 費邑(비읍)의 邑宰(읍재)로 천거했다. 자고는 이름이 高柴(고시)인데 당시 학문이 완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자는 이 젊은이를 해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자로는 실제 정치를 해보는 일이 중요하지, 독서만 학문이라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공자는 그 말이 자기의 경솔함을 숨기려는 구실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꾸짖었다.
有民人焉과 有社稷焉은 같은 짜임을 가진 구절이다. 단, 民人은 人民과 같지만 社稷은 토지신 社와 곡물신 稷을 합한 말이다. 국가처럼 지방에도 社稷의 壇(단)을 두었다. 何必∼ 爲∼는 ‘어찌 반드시 ∼라 하겠는가’ 반문하는 어투다. 여기서 爲學은 학문한다는 말이 아니라 학문으로 간주하다는 말이다. 惡夫(오부)는 ‘저 ∼을 嫌惡(혐오)한다’이다. (녕,영)者(영자)는 强辯(강변)의 인물을 말한다.
자로는 왜 찍히는 짓만 골라서 했는가?
등신이 아닌 이상 충분히 들서 분별 하고도 남음이 있을텐데.
혹 공자의 뜻에 불합리한 점을 오히려 수정 하려는 의도는 없었겠는가?
자신들의 동문을 하나 라도 더 현실 청치에 참여 시키려는데 공자는 왜 험을 잡는가?
그들보다 못한 삼환들은 접시물에 코을 박아야 되는 생각을 가지면서 제자들이 그들 보다는 휼륭하다고
생각하면서 테클을 거는것은 공자의 분별력에도 문제는 없는가?
더 많이 등용하여 변화을 기대하는 뜻은 어떻겠는가?
그 말이 자기의 경솔함을 숨기려는 구실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꾸짖었다.측면으로 보면
걱정하고 잘 하라는 의도는 충분히 알만하나 그 이면에 스토리가 더 흥미 롭지않는가?
까놓고 서로 알것 다 아는 사이인데.
매번 반복 지적 보다 장점을 살려 흥기 시키는 방법을 택해 볼만도 한데.
이런 자로을 말 많은 것으로 싫어 했다.
이면 스토리을 끄집어 내는 나는 공자입장에서는 얼마나 못 마띵할까?
열 받는 분들 입장에서는" 너나 잘하세요? 할 수있지만
이런 단절된 용어 보다는 새로운 국면을 연출 을 만들어 내는 지혜를 발휘해 보여주는것이
조건없이 주는것 보다 좋은 대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너무 걱정 하지 말게
제자들이 한 토막씩 글을 짓다보니 그리 된것이야!
그 이면에는 그런것 보다 더하고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왜 안했겠는가?
후세들이 무조건 우상화 하는것이 안타까울 뿐이지!
이것은 멍청한짓이야!
논어 대로 할 려면 반성하다 죽어야데!
본성을 반성 한다고 고쳐 지던가?
벌때 처럼 말도 안되는 소리 라고 하겠지만
쭉 관찰해봐! 도움 은 되겠지만 결정적일때는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