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엣세이

정유년

土談 2017. 1. 1. 01:28

 

새해에 동네 뒷산에 올라 동쪽에 떠오르는 해는 군무에 가려

카메라를 팔공산 쪽으로 돌려 새벽의 여명을 드려내니

신비로운 태초의 숨결을 보는 듯하다.

우쪄다 내손에 이끌려와 붓글씨 쓸때 종이을 고정하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한때는 우리조상의 석기시대 생활도구로 다양한 기능을 하지않았는가 추정한다.

육면체을 하고 면적이 차이가 많고 전체모양은 도끼형태을 취하고 한손에 잡기편해 끝부분으로 곡식을 훌터서 수확하는 용도가 아니였겠는가?

이것이 인공적으로 만든것 처럼 보이지만

가장 큰면에는 요즘 식물로는 형체가 없지만 화석이 굳기전에 압력으로 변형된 줄기와 잎 모양이 있고

모서리 부분은 많이 일정한 용도로 사용해서 따른 흔적이 있고

가장적은 면은 칼날 면처럼 찍어 내는 용도로 보인다.

한면은 도끼 자루를 연결하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면에서는 볼 수없는 흔적이 있다.

이것은 오직 내 생각일뿐이고 이런 분야에 학자나 박물관 또는 관심있는 분들에게 휼륭한 자료가 아닐까 생각합다.

박물관에 있는 돌들을 많이 보지만 이런 구체적이고 정교한 모양은 보지 못했다.

저는 작은 용도로 쓰지만 혹 큰 용도로 활용할 수있는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은 절조예술편에 가면 다양한 면을 관찰 할 수있다.

 

좌우족필

丁酉年

2017년에 2333년을 더하면 단기4350

천자문에 이 구절이 떠오른다. 지난해 오는해 복잡하고 혼란스런 사회가 이 문장이 보다 절실하지 않았겠는가?

행복론을 주창해서 많은 분야에 따르게 했지만 실체는 보이지않는다.

사람 이름은 빼고

돈독하고 바탕이 깨끗하고 곧음을 지키며 힘써 노력하고 겸손하고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것이 행복이다.

요리하는 측면에서

재료가 신선하고 보기좋은 떡이 맛있듯 깨끗하고 정성을 다하고 자신만의 열정으로 요리한다면 최고가 아니겠는가?

얼굴에서

있는그대로 개성을 살려 열심히 살면 얼굴에 그 향기가 묻어 얼굴에 나타나지 않겠느가?

학문 과학에서

기초학문이 바로 서야 공들인 에너지가 탁월한 결과을 만들지 않겠는가?

다른 분야는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저는 모든 활동을 접고 먹고사는 노동외에 책읽고 모르는것 인터넷으로 보충하고 자주가는카페에서 음악 듣고 내 생각을 적고 글씨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나이 먹어감에 눈도 침침하고 억지로 할려고하면 머리도 띵하고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는 패턴으로 잘 활용하고 요즘 은행을 하루에 두 세알 까먹고 많은 도움이 된것 같다. 체력에 기본이 보강 되기때문이 아니겠는가?

내 잠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은행을 얻는 것도 몰론이고

저는 붓 글씨을 잘  쓸 줄은 모른다. 다만 즐길뿐이다.

족필을 즐기는것도 다리 부상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아서 이고

후에는 노동으로 팔이 아파 혹여나 팔이 불편할때 발로서 즐길 수있을것 같아 습관이 된것같다.

다양한 서체 중에서도 바르게 보이는 궁체와 해서을 선호한다.

특별난 재주는 없지만 사지로 글을 즐길 수있는 행복은 아무나 주어지겠는가?

 

丁酉는 인간이 광에 꼭감을 저장해두고 고깜 빼먹는 형국을 하고 있다.

즉 생산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이루어놓은 일들에 허 실을 가려

많으면 만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가장 효률적인 방안을 강구하여 맛있는 꼿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발효식품 잘 띠워서 저장하는 능력이 필요한 해가 될것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독하고 바탕이 깨끗하고 곧음을 지키며 힘써 노력하고 겸손하고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것이 행복이다.

이것이 기본 척도가 될것이데  기본정신을 잘 계승해서 사회운동을 펼쳐

이미 이루어놓은 장점을 살려 새로운 미래을 열 수있는 숙성이 필요한것이다.

알곡으로 밥을지어 뜸을 잘드려야하듯  이미지어놓은 쌀이 좋든 나쁘든 탓한들 무엇하겠는가? 뜸 잘들이고 다음 알곡을 기대해야 하지않겠는가? 때론 정유재란처럼 죽되는 경우가 있지 않겠는가?

역사적으로 많은 아포리즘(어려움 극복)의 예가 있겠지만

특히 미국의 정신적인 지주로 평가받는 에머슨의 셀프리라이언스 엣세이에서 영감을 찾을 수있고

산업화로 썩어가는 정신과 노예화로 물질에 길들어짐에 경종을 울려 자신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랑하여 미래을 개척하는 주체의 역활을 역설한다. 이것이 미국의 독립과 서부개척 남북차이극복으로 지금까지 로또을 연속으로 맞는 결과로 하는 일 마다 승승장구하고 퇴보 할 줄 모른다.

인도가 독립하고 1970년경에 비동맹국으로 영국 소련과 미국의 딱가리 노릇 안하기로 하지만 현실은 이들 도움없이는 국가운영이 어려움있어 이들 사이을 오가며 자신이 필요한데로  재정을 유입하면서  잔뼈을 키워

셀프리라이언스 정신을 살려 지금은 부의 척도는 낮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상대 할 수없는 국가로 변화한것이 아니겠는가?

 

진짜 중요한것은 잊어 버린체 남의 다리만 끌는 경우가 우리가 아닌지 돌이켜 볼때다.

오직 했으면 자신을 뚜드려 패는 놈을 후계자로 선택 했을까?

이것이 다 셀프리라이언스와 무관하지않고 음양의 이치에 한획을 긋는 역활을 한다.

고전에 성현들은 자신이 국가을 운영할때 자신이 부족한 정보을 체워줄 재상을 적절히 활용해서 융성한 나라로 발전 했습니다.

사회 구조든 정보든 인력이든 자원이든 적재적소에 쓰는것이 우선인데

아무래도 동양에서 변화을 강조하지만 이런측면에서는 서양이 오히려 동양을 앞서는것도 역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인공지능도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동양의 바둑 게임을 이기므로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4차산업의 다양한 쓰임을 예고하고 있다.

동양의 자원과 인력 과 시장을 희생으로 만든 그들의 문화가 한계에 이르면 브랙시티 자국우선정책(알고보면 동양의 국수정신)을 활용하고

비축되면 인간지능 시장을 위해서 옹졸함이 없었던것처럼 세계의 리더 처럼 공존과 평화을 외칠것이 아닌가?

인공지능이 끝내 인종 병기로 까지 등장한다면 희생을 바탕으로한 동양에서 무엇을 원하겠는가?

 

인공지능이 역에 도입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공자 시대에도 사람을 혹세무민하는 혼란을 격으면서 인간의 삶의 범위내에서 문헌을 근거로 가르쳤고

동서 냉전 시대에 상대의 정보을 알기위해 인력과자원을 투입하여 데이터을 만들었지만 쓰임은 보잘것없는데 이르고

요즘같은 어려울때 더욱 사람들을 궁금증을 유발하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은 관심을만든다.

바둑 최 고수도 이기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궁금증을 어떻게 해결 할 수있을까?

법에서는 판사의 역활을 적용하는 일순위에 있던데.

역도 여기서 생존 할려면 지금 같은 공부 방식으로는 인공지능을 능가하기 어려울텐데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좋은 방법은 없는지요?

정유년은 이런 것을 궁리해 보라는 의미는 아닐까?

 

 

 

저도 이 세가지 그림에서 변화의 단초를 열어 훗날 누군가가 호기심을 갖고 곁에두고 성심 성의껏 노력하면서 사는 모습을 그려 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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