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세상 이야기

일식

土談 2017. 8. 22. 20:28
 
【 앵커멘트 】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 미국에서 펼쳐졌습니다. 개기일식이 이번처럼 미 전역을 관통한 건 99년 만에 처음인데요. 영상 통해서 신비로운 우주쇼를 감상해보시죠. 박유영 기자입니다....

개기일식 때 맨눈으로 태양을 잠깐 바라봤던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아들 배런도 트럼프와 함께 백악관 발코니에서 개기일식 모습을 맨눈으로 잠깐 지켜봤다.

 

미국을 가로지르며 개기일식이 펼쳐졌습니다 세기의 우주쇼에 미국인들이 열광했습니다

 

동아닷컴] 개기일식1918년 6월 8일 이후 99년만에 미국 대륙을 관통한 개기일식 현상에 많은 미국민들이 열광했다. 개기일식은 지구와 달, 해가 일직선으로 놓이면서 달이 해를 가리는 현상을 말한다.

 

 

2017년 99년 전

 1918년  1차세계대전마감과 2차세계대전 원인이 되는 혼란기

 

2017년 8월 22일

미국 자국의 이익과내실에서 아프카니스탄 북한 한미군사훈련(유래없는 군사수뇌부참가)적극 개입으로선회

 

모양은 다르지만 유형은 닮은 꼴

 

춘주의 기록에보면 초하루 즉 음력 1일에 일식

2017년 8월 22일(음력 7월1일)

이미 기원전 부터 지구가 둥글다는것을 알수 있는것을 시사한다.

책력이 기원전 2~3천년부터 사용한것이 현대에도 정확히 맞는 정교함이 경이롭다.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와 일식  


이 설화의 주인공 연오와 세오의 이름엔 공통적으로 까마귀 오(烏)자가 들어 있는데, 이름에 같은 글자가 공통으로 들어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이 부부이기 이전에 남매였음을 시사한다. 당시 신라 사회에서는 남매간에 결혼하는 일은 허다했고, 특히 <특정한 직업>이나 <계층>에선 거의 일상적인 현상이었다. <삼국사기>나 <화랑세기>가 보여주듯 신라왕족들은 이복 남매 또는 삼촌, 사촌 간에 자유롭게 결혼하였다. 신라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일본도 남매간에 결혼하거나 사랑한 예들을 <일본서기>를 통해 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결혼 형태는 고려 시대까지 이어져 고려 태조 왕건은 자기 손으로 자식끼리 결혼시키기도 했다. 혈족끼리의 결혼은 대개 <혈통의 순수성>을 보전하거나 자기 가문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고유의 기술이나 능력>을 보전하기 위함이었다. 연오와 세오의 결혼은 아마도 두 번째 경우, 즉 자기 가문에만 전해져 오는 고유한 능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연오와 세오는 어떤 능력을 가진 집안 출신일까? 연오와 세오가 신라 땅을 떠난 뒤, 갑자기 태양과 달이 빛을 잃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일월의 빛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 뜻이다. 태양과 달은 당시 사람들에겐 양과 음의 대표 명사였다. 하지만 달은 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다지 중시되지 않았다. 태양은 양의 정기로서 이것의 변화는 국운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여겼던 반면, 달은 음의 정기에 불과하기에 양에게 자극을 받아 변화가 결정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삼국사기>에 일식에 관한 기록은 67건이나 있지만 월식에 관한 기록은 단 한 건도 없다. 태양이 달에 가려 일시적으로 지구에 빛을 전달하지 못하는 이 일식 현상에 대해 적어도 조선 시대까지는 불길한 일을 예고하는 흉조로 인식됐다. 그래서 일식이 있을 때는 근신하고 반성하여 이 흉조가 실제적인 재앙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기원하였다.

연오와 세오가 신라 땅을 떠난 뒤 태양과 달이 빛을 잃었다는 것은 일식과 월식이 차례로 이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연오와 세오는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났을 때 행하는 행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까지 사람들은 자연의 이상현상을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는데 특히 일식은 가장 심각한 일이었다. 태양은 제왕을 상징하는데, 태양이 그 빛을 잃었다는 것은 제왕이 그 본래의 빛을 상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식이 일어나면 제왕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일식 현을 빨리 타개하기 위해 왕은 백관을 이끌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스스로의 부덕을 고하였다.

일식 때 행하는 제사를 구식의(救食儀)라고 하는데 이는 일식을 구제해 달라는 의식이다. <고려사> '예지'에는 구식의를 행할 때 왕과 백관이 모두 소복을 입고 하늘에 잘못을 고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때엔 이미 천문 계산에 의하여 일식이 일어나는 원인과 그 날짜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구식의를 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일식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는 뜻이다. 일식(日蝕)의 蝕은 <벌레가 먹어 치운다>는 뜻인데 이때 蝕 대신 食을 쓰기도 한다. 즉 고대인들에게 일식이라는 것은 벌레가 해를 잡아먹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태양을 갉아먹는 이 벌레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있었다. 그 동물이 바로 까마귀였다. 고대인들에게 까마귀는 길조였으며 신령스런 동물이었다. 또 그 새까만 깃털 탓에 불에도 타지 않는 동물로 여겨졌다. 새까맣게 타 버린 숯은 더 이상 불에 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까마귀를 태양 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타 죽지 않는 유일한 동물로 여겼던 셈이다. 따라서 태양을 갉아먹는 벌레들을 잡기 위해서는 태양 속으로 까마귀를 들여보내 벌레들을 모두 잡아먹게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태양신화에서 태양의 정기를 세 발 달린 까마귀로 형상화해 놓은 것이나, 고구려 고분 벽화의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가 그려져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고대인들에게 까마귀는 바로 태양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그런 까닭에 일식이 일어나면 하늘로 까마귀를 날려 태양을 갉아먹는 벌레들을 잡아먹도록 했을 것이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바로 일식 때에 까마귀를 하늘로 날리는 소임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오랑이라는 이름을 풀이하면 <까마귀를 끌어들이는 남자>라는 뜻이다. 즉, 연오랑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그의 소임을 나타내는 직업적인 명칭으로서 일식이 일어나면 까마귀를 불러들여 잡은 뒤, 다시 태양을 향해 날아가도록 풀어 주는 소임을 맡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까마귀를 불러들이고 기르고 날리는 기술은 연오랑의 가문이 대대로 계승한 독특한 능력이었을 것이다. 그 기술이 다른 가문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매끼리 결혼시켰을 것이다.

세오녀는 필시 생초비단과 관련이 있을 법하다. 신라에서 온 사신에게 세오녀가 짠 생초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라고 한 것으로 봐도 이는 명백하다. 당시 까마귀를 날려 일식을 물리치는 제례 과정을 추측해 보면 세오녀의 역할은 더욱 명백해진다. 일단 일식이 일어나면 왕과 백관들은 모두 상복을 입고 나와 하늘을 향해 엎드릴 것이다. 그러면 연오랑은 까마귀를 미리 잡아 세오녀가 짠 생초비단으로 감싸 뒀다가 풀어 날리게 된다. 까마귀를 날린 다음에는 그 생초비단을 제단에 올려놓고 왕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낸다. 그렇다면 세오녀는 바로 해를 갉아먹는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하늘로 날려보내는 까마귀를 감싸는 생초비단 보자기를 짜는 일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삼국사>의 기록에 따르면 아달라왕 13년(166년) 정월 초하룻날 일식이 있었다. 다른 날도 아닌 정월 초하루에 일식이 일어났으니 신라 전국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그로 인해 왕은 두려움에 떨고, 백성들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것이다. 만약 이때 일어난 일식이 부분일식이 아닌 개기일식이었다면 그 공포와 두려움의 강도는 한층 더했을 것이다.


출처: 한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

 

 

桓公三年:
三年,春,正月,公會齊侯于嬴。
夏,齊侯,衛侯,胥命于蒲。
六月,公會杞侯于郕。
秋,七月,壬辰朔,日有食之,既。
公子翬如齊逆女,九月,齊侯送姜氏于讙,公會齊侯于讙,夫人姜氏至自齊。
冬,齊侯使其弟年來聘。
有年。


 

六月公會杞侯於成阝七月壬辰朔日有食之。(無傳盡也曆家之說謂日光以望時遙奪月光故月食日月同會月奄日故日食食有上下者行有高下日光輪存而中食者相奄密故日光溢出皆既者正相當而相奄間疏也然聖人不言月食日而以自食為文闕於所不見。)

 

疏注既盡不見」。○正義曰食既者謂日光盡也故雲:「盡也」。月體無光待日照而光生半照即為弦全照乃成望望為日光所照反得奪月光者曆家之說當日之衝有大如日者謂之闇虛闇虛當月則月必滅光故為月食張衡靈憲當日之衝光常不合是謂闇虛在星則星微遇月則月食是言日奪月光故月食也若是日奪月光則應每望常食而望亦有不食者由其道度異也日月異道有時而交交則相犯故日月遞食交在望前朔則日食望則月食交在望後望則月食後月朔則日食交正在朔則日食既前後望不食交正在望則月食既前後朔不食大率一百七十三日有餘而道始一交非交則不相侵犯故朔望不常有食也道不正交則日斜照月故月光更盛道若正交則日衝當月故月光即滅譬如火斜照水日斜照鏡則水鏡之光旁照他物若使鏡正當日水正當火則水鏡之光不能有照日之奪月亦猶是也日月同會道度相交月揜日光故日食日奪月光故月食言月食是日光所衝日食是月體所映故日食常在朔月食常在望也。「食有上下者行有高下」,謂月在日南從南入食南下北高則食起於下月在日北從北入食則食發於高是其行有高下故食不同也異義雲月高則其食虧於上月下則其食虧於下也日月之體大小正同相揜密者二體相近正映其形故光得溢出而中食也相揜疏者二體相遠月近而日遠自人望之則月之所映者廣故日光不複能見而日食既也日食者實是月映之也但日之所在則月體不見聖人不言月來食日而雲有物食之以自食為文闕於所不見也

 

1 

莊公二十

二十有五年,春,陳侯使女叔來聘。

 

夏,五月,癸丑,衛侯朔卒。
六月,辛未,朔,日有食之,鼓用牲于社。
伯姬歸于杞。
秋,大水,鼓用牲于社,于門。
冬,公子友如陳。

2  莊公二十... :
二十五年,春,陳女叔來聘,始結陳好也,嘉之,故不名。
夏,六月,辛未朔,日有食之,鼓用牲于社,非常也,唯正月之朔,慝未作,日有食之,於是乎用幣于社,伐鼓于朝。
秋,大水,鼓用牲于社,于門,亦非常也,凡天災,有幣無牲,非日月之眚,不鼓。
晉士蒍使群公子,盡殺游氏之族,乃城聚而處之,冬,晉侯圍聚,盡殺群公子。

日有食之於是乎用幣於社伐鼓於朝。(日食曆之常也然食於正陽之月則諸侯用幣於社請救於上公伐鼓於朝退而自責以明陰不宜侵陽臣不宜掩君以示大義。)

 

疏注日食大義」。○正義曰古之曆書亡矣漢興以來草創其術,《三統以為五月二十三分月之二十而日月交會近世為曆者皆以為一百七十三日有餘而日一食是日食者曆之常也古之聖王因事設戒夫以昭昭大明照臨下土忽爾殲亡俾晝作夜其為怪異莫斯之甚故立求神請救之禮責躬罪已之法正陽之月陽氣尢盛於此尢盛之月而為弱陰所侵故尢忌之社是上公之神尊於諸侯故用幣於社請救於上公伐鼓於朝退而自攻責也日食者月揜之也日者陽之精月者陰之精君道也臣道也以明陰不宜侵陽臣不宜揜君以示大義也昭二十九年傳曰:「故有五行之官是謂五官實列受氏姓封為上公祀為貴神社稷五祀是尊是奉。」故杜以社為上公之神

 

大水用牲於社於門」,亦非常也。(失常禮。)○凡天災有幣無牲天災日月食大水也祈請而已不用牲也

 

疏注天災牲也」。○正義曰傳言亦非常」,亦上日食也但日食之鼓非常月伐鼓於社非常禮大水用牲亦非常禮俱是非常故亦前也傳既亦前即發凡例知天災之言兼日食大水也天之見異所以譴告人君欲令改過脩善非為求人飲食既遇天災隨時即告唯當告請而已是故有幣無牲若乃亢旱曆時霖雨不止然後禱祀群神求弭災沴者設禮以祭祭必有牲。《·雲漢之篇美宣王為旱禱請自郊徂宮無所不祭:「靡神不舉靡愛斯牲。」是其為旱禱祭皆用牲也。《祭法:「埋少牢於泰昭祭時也相近於坎壇祭寒暑也王宮祭日也夜明祭月也幽禜祭星也雩禜祭水旱也。」鄭玄雲:「凡此以下皆祭用少牢寒暑不時則或禳之或祈之。」是說祈禱之祭皆用牲

 

非日月之眚不鼓。(猶災也月侵日為眚陰陽逆順之事賢聖所重故特鼓之。○所景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