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

이부자리

土談 2021. 8. 11. 08:29

                이부자리

                                   서건석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따뜻한 품속의 향기 속으로

빨여 들어 안락한 궁전의 자궁

 

펴고 덮어 주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넓은 세상의 꿈을 열고 닫는 무대

 

스스로 깔고 접고 독자적으로

가치를 배우고 행동하는 정글 모험

 

서로 푸근히 감싸 보듬어 덮어주고

발 네개가 수시로 변하다가 나란히 걸어둔 양말

 

홀로 가벼워도 무겁고 두꺼워도 서늘한

마음의 부재를 지혜의 향연으로 보관한 냉장고

 

누구보다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왔고

희생하며 수난을 사랑받고 싶은 이브자리

 

 

 

함께하는 옷은 가보라도 잡지만 이부자리는 깔리고

밟히고 얻어 맞고 던 저지고 찢기고 수난 그 자체다

예전에는 네 종류로 계절을 느껴오다가

요즘은 봄가을이 줄어들어서인지

한두 개의 이부자리가 쓰이는 것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고 사람의 일생을 조명해본다.

단순하고 순박한 소재로

한 편의 뮤지컬 마당놀이를 보는 듯한 재미가 매력이다

희생한 자들의 노고를 위트 있는 시로 표현한 것이

꾸김없는 개성으로 돗보인다.

 

펴고 접으면서(구령)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덮는 사람이(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여름 겨울에(종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이쁜 문양이(규칙)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이부자리와 사람의 삶이(생체 리듬)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잘 쓰다가 함부로 버려지는 이부자리가 곧 자신 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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