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頑石點頭.
군대에서 사용하는 ‘點呼(점호)’는 ‘하나하나 세어 가며 부르는 행위’이다. ‘呼’는 ‘부르다’라는 뜻이다. ‘點檢(점검)’은 ‘하나하나 세어 가며 검사하는 행위’이다. 다음과 같은 불교의 전설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의 진(晋) 나라에 축도생(竺道生)이라는 훌륭한 법사가 있었다. 그가 호구산(虎丘山)에 들어가 돌을 모아 놓고 열반경(涅槃經)을 강설하였는데, 그 무딘 돌들도 이 말을 알아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더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이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이를 쉽게 풀어 주면 무딘 돌조차도 그 어려운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肖’는 ‘小(작을 소)’와 ‘肉(고기 육)’을 합친 글자이다. 이는 고깃덩어리를 작게 나누어 가는 것을 나타낸다. 어깨 부위의 고기나 다리 부분의 고기도 아주 잘게 나누어 가면 결국 모양은 같아진다. 원의 넓이는 어떻게 계산하는가? 원을 아주 작은 정사각형으로 한없이 나누어간다. 그리고 그 정사각형의 넓이를 더하면 원의 넓이이다. 이를 보면 원을 수없이 나누어 가면 결국 정사각형이 된다. ‘微分’은 ‘미세하게 나눈다’는 뜻이다.
‘一傅衆休 ‘한 명의 스승이 제나라 말을 가르치는데, 주변의 수많은 사람이 초나라 말로 떠드니 제나라 말을 배울 수 없다’라는 의미가 된다. 외국어는 정말 배우기 힘드는데, 그 이유는 주변적 요소 때문이라는 것이다. 왕의 주변 사람들이 선하지 않으면 왕은 선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千萬買隣’은 ‘천만 냥으로 이웃을 사다’라는 말이 된다.
. 이웃이 나의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요즈음 우리는 분명히 귀하고 좋은 이웃을 버리며 살아가고 있다.
艮(간)’은 ‘어긋나다, 거스르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艮’과 합쳐진 한자는 대개 ‘어긋나다, 거스르다’라는 의미, 즉 ‘역방향’과 관련이 있다.
중국 당(唐)나라 때의 법원주림(法苑珠林)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칼을 가는 숫돌은 다락방에 있었으므로 그는 칼이 무디어질 때마다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칼을 갈아 오곤 했다.
그는 다락방을 오르내리는 것이 참으로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은 낙타를 다락방으로 가져가 가죽을 벗기려 하였다. 그렇게 하면 바로 옆에서 칼을 갈아 곧바로 가죽을 벗겨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낙타는 크고 다락방은 작아서 옮길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낙타를 다락방의 창밖에 걸어놓고 다시 가죽을 벗겨갔다. 그는 끝까지 숫돌을 밖으로 가져올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懸駝就石(현타취석)’이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없는가? 잠깐만 생각을 달리하면 손쉬운 방법이 나오는데, 그리하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중국 한(漢)대의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 양은 풀을 보면 뜯어먹었고, 승냥이를 보면 무서워 벌벌 떨었다.
羊質虎皮 양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 채 호랑이의 가죽을 뒤집어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는 없다는 말이다.
‘祭(제)’의 甲骨文(갑골문)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손으로 받들어 올려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祭’자의 왼쪽 상부에 있는 것은 ‘肉(고기 육)’을 나타내며, 오른쪽 상부에 있는 ‘又(우)’는 손의 모양을 나타내고, 아래쪽의 ‘示(시)’는 피가 떨어지는 모양을 나타낸다.
‘一葉蔽目, 不見泰山’은 ‘잎사귀 하나가 눈을 가려도, 커다란 태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이와 같이 사소한 욕망 하나에 눈이 가리면 우리에게는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