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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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2. 18. 23:17

‘交(교)’는 갑골문(甲骨文)에서 사람이 발을 꼬고 있는 모두 ‘교차’를 나타낸다. ‘

交’에는 ‘‘옷깃’은 저고리 가운데의 교차된 부분을 나타낸다.

‘校’의 최초의 의미는 ‘울타리’이다. 초기의 학교 울타리는 나무를 엮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울타리’로 그 기관의 특성을 삼아 ‘학교’를 나타내게 됐다.

‘校’는 이외에도 ‘고기를 기르는 연못, 책상의 다리’를 나타낸다. 고기를 기르는 연못의 울타리나 책상의 다리는 나무를 교차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校’의 ‘학교’라는 의미로부터 ‘가르치다, 생각하다, 본받다, 교정하다’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이런 행위는 모두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난다.

‘較(교)’는 ‘車(수레 거)’와 ‘交’가 합쳐진 글자이다. ‘較’는 수레가 서로 교차되는 상황을 나타낸다. 두 대 이상의 수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수레 경주와 같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較’에는 ‘겨루다, 경쟁하다’라는 의미가 생겼고, 이로부터 ‘견주다, 비교하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그러나 비교의 결과, 수레의 진행이 동일할 수는 없으므로 ‘같지 않다, 대등하지 아니하다’라는 의미도 생겼다.

‘絞(교)’는 ‘(멱,사)(실 사)’와 ‘交’가 합쳐진 글자이다. ‘絞’는 실을 교차시키는 행위를 나타낸다. 따라서 ‘絞’에는 ‘꼬다, 새끼를 꼬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이로부터 ‘묶다, 목매다’라는 뜻이 파생돼 나왔다.

 

釣而不網, 弋不射宿’은 ‘낚시를 하지만 그물질은 하지 않으며, 주살로 사냥을 하지만 잠자는 새는 쏘지 않는다’라는 말이 된다.

예전에도 자연을 아끼고 사랑함이 이와 같았다. 다른  측면에서 최소한 생활은하되 쓸데없는 욕심으로 축척하지말라는 의미가 아닐까?자연의 동식물중에 유일하게 인간만이 축척하여 분쟁을 만드니까?

 

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갑골문의 ‘周’는 네모난 옥을 쪼아서 만든 무늬를 의미한다. 이 경우 사방의 선은 둘레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周’에는 ‘둘레, 주위’라는 뜻이 있다. ‘圓周(원주)’는 ‘원의 둘레’라는 뜻이다. ‘파이(π)’라고 하는 ‘圓周率(원주율)’은 ‘圓周’를 지름으로 나눈 것이다. ‘둘레’라는 의미로부터 ‘둘레를 돌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一周(일주)’는 ‘한 번 돌다’라는 말이다. 어떤 지역을 ‘一周했다’고 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둘레를 돌다’라는 것은 곧 ‘한 곳도 빼놓지 않고 도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이로부터 ‘두루, 골고루’라는 의미가 나왔다. ‘여러분이 周知(주지)하다시피’라는 말은 ‘여러분이 두루 알다시피’라는 뜻인데, 이 경우의 ‘周’가 바로 ‘두루, 골고루’라는 뜻이다.

‘用意周到. ‘周圍(주위)’는 ‘어떤 것을 둘러싼 바깥 둘레’, 즉 ‘주변’이라는 뜻이다. 이 경우 ‘周’는 ‘에워싸다’라는 뜻이며, ‘圍’는 ‘둘레’라는 뜻이다. ‘둘레를 돌다’라는 의미로부터 ‘돌다, 일정한 사이를 한 바퀴 돌다’라는 의미

‘周波(주파)’는 ‘파동이 한번 순환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수가 ‘周波數(주파수)’, 즉 사이클(cycle)이다. 옛날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의 둘레에 연못을 파놓았는데, 이러한 연못을 ‘周池(주지)’라고 한다. ‘周波’와 ‘周池’의 ‘周’는 ‘한 바퀴 돌다’라는 뜻이다. ‘둘레를 돌다, 두루, 골고루’라는 의미가 마음에 투영되면서 ‘마음씨가 두루 미치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周旋(주선)’은 ‘마음씨가 두루 미쳐 일이 잘 돌아가게 하다’라는 뜻인데, 이 경우의 ‘周’는 ‘마음씨가 두루 미치다’라는 뜻이다.

 

書經(서경)에는 ‘天視自我民視,天聽自我民聽
‘하늘이 보는 것은 내 백성이 보는 것을 따르고, 하늘이 듣는 것은 내 백성이 듣는 것을 따른다’라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하면 나의 정치를 하늘이 어떻게 보는가 궁금하면, 나의 정치를 내 백성이 어떻게 보는가에 주목하라는 것이고, 나의 정치에 대해 하늘이 어떠한 소문을 듣고 있는지 궁금하면 나의 정치에 대하여 내 백성이 어떠한 소문을 내고 있는지를 들으라는 것이다.

 

至誠無息’은 ‘쉼이 없는 성실, 쉼이 없는 정성만이 사람과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大學

 

‘辰’은 갑골문에서는 조개껍데기와 같은 도구로 풀을 뽑는 행위를 나타낸다. 

 ‘振’은 손으로 풀을  뽑거나 빼내게 되면 그 대상을 들어 올리게 되므로 ‘들다,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가 나왔고 ‘들다,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로부터 ‘건지다, 구휼하다’라는 의미가 나타났다.

‘들다, 들어 올리다’라는 행위는 어떤 대상이 위로 향하게 되는 것이므로 여기서 ‘떨쳐 일어나다, 떨치다’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振武(진무)’는 ‘武威(무위)를 떨치다’라는 말이며, ‘振作(진작)’은 ‘떨쳐 일어나게 하다’라는 말이다. ‘作’은 ‘어떤 행위를 하다’라는 뜻이다. ‘振興(진흥)’도 ‘떨쳐 일어나게 하다’라는 말인데, ‘振作’은 군대의 사기를 일으키는 경우, ‘振興’은 예술이나 학술을 일으키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

손으로 풀을 뽑을 때는 풀을 좌우로 흔들며 뽑는다.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 떠는 상태로 보이기도 한다. 이로 말미암아 ‘振’에는 ‘떨다’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振動(진동)’은 ‘떨며 움직이다’라는 뜻이며, ‘振子(진자)’는 ‘좌우로 움직이는 작은 기계 장치’이다. ‘子’는 ‘작은 것’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풀을 뽑은 후에는 그 풀을 버리게 된다. 이에 따라 ‘振’에는 ‘버리다, 내버리다’라는 뜻이 생겨났으며, 여기서 다시 ‘멎다, 그만두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버리다, 내버리다’는 어떤 상황의 종료를 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멎다, 그만두다’라는 의미에서 ‘정리하다, 정돈하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정리나 정돈은 곧 모든 행위가 끝나고 멎은 이후에 하는 행위이다.

 

‘優游厭飫’‘

優游 편안하게 노닐다’라는 말이 된다. 무슨 일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厭飫’는 ‘싫증이 날 만큼 물리다’라는 말

무엇을 습득하려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되 하나하나 익혀가면서 수없이 반복해야만 완벽하게 익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程子는 싫증이 나서 물릴 만큼 반복하여 익혀야만 학문의 진수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영어도 그렇고 수학도 그렇다. 우리가 익혀야 할 일은 거의 모두 그렇다.

 

두 짝은 서로 분리돼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에 따라 ‘配’에는 ‘나누다’라는 뜻이 생겨났다. ‘配付(배부)’와 ‘配給(배급)’은 모두 ‘나누어주다’라는 뜻이다. ‘付, 給’은 ‘주다’라는 뜻이다.

 ‘나누다’라는 의미가 극대화되어 ‘귀양 보내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配所’는 ‘죄인을 귀양 보내던 곳’을 말한다.

 

’는 원래 ‘트다’라는 뜻을 갖는다. ‘ ‘意思疏通

머리를 빗질하는 동작을 생각해보자. 빗질을 하는 동작은 곧 빗이 머리털을 통하는 행위이고, 헝클어진 머리털을 소통시키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疏’에는 ‘빗질하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上疏(상소)’는 원래 ‘윗사람에게 쓴 글’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의견을 왕에게 진술한 글’이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疏’에는 ‘註(주), 註釋(주석)’이라는 뜻도 있다. ‘註, 註釋’은 뜻이 어려운 부분을 설명해주는 글이므로 근본적으로는 ‘막힌 곳을 터주는 글’인 셈이다.

‘막힌 곳을 트다’라는 의미로부터 ‘멀다’라는 뜻이 생겨났다. 막힌 곳을 트게 되면 당연히 거리는 멀어진다. ‘멀다’라는 의미로부터 ‘친하지 않다, 서투르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면 ‘친하지 않은 것’이고, 기술로부터 멀어지면 ‘서투른 것’이다. ‘관계가 멀어졌다’는 뜻을 나타내는 ‘疏遠(소원)’의 ‘疏’는 ‘멀다’라는 뜻이다. ‘서툴다’는 의미로부터 ‘거칠다’라는 의미가 나왔고, ‘거칠다’로부터 ‘菜蔬(채소)’라는 의미가 생겼다. 예전에는 고기 음식을 부드러운 음식, 채소를 거친 음식이라고 불렀다. 채소를 나타내는 ‘蔬’는 원래 ‘疏’였는데, 여기에 풀을 나타내는 ‘>’를 덧붙여서 오직 ‘채소’만을 나타내도록 만들어진 한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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