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言逆於汝心, 必求諸道
汝(여)는 2인칭으로 ‘너’에 해당하며 대등하거나 아래에 있는 이에게 쓴다. 汝等(여등)과 汝輩(여배)는 그 복수형이다.듣기 싫은 말에서 타당한 점을 찾아 따를 수 있다면, 그는 분명 마음에 드는 말 중에서도 도리에 어긋난 점을 찾아 스스로 대처하는 현명함도 지녔을 것이다. ‘尙書(상서)’에 보이는 통치자에게 하는 충고지만, 지위의 고하를 떠나 누구에게나 해당되리라
以膠投漆中, 誰能別離此
膠(교)는 동물가죽이나 뿔을 고아 만든 접착제인 아교이다. 달라 붙다의 뜻도 있다. 漆(칠)은 옻나무 또는 옻칠, 즉 검은색 塗料(도료)로 쓰는 진액이다. 역시 단단히 붙어 굳는 성질을 가졌다. 옻칠하다의 뜻과 검다는 뜻도 있다. 漆匠(칠장)은 칠 기술자이고 漆黑(칠흑)은 아주 검거나 어두움을 뜻한다. 膠漆(교칠)은 단단한 결합 또는 사귐이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음을 비유한다.
단단한 접착력의 아교와 옻칠의 결합을 누가 떼어낼 수 있겠는가. 그처럼 함께하며 떨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이 간절하다.
釣者之恭, 非爲賜也
낚시꾼이 조심스럽게 미끼를 달아 낚시를 드리우고 얌전하게 기다리는 것은 고기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의도는 분명하고 그 결과는 한쪽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그렇듯 표면에 보이는 사실 이면에 무서운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험한 사회에선 公人(공인)에게든 私人(사인)에게든 유혹도 많다.
未(미)는 뒤의 동사를 부정한다. 암(암)은 익숙하게 알다 또는 외우다의 뜻이다. 未암(미암)은 잘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姑(고)는 시어머니를 뜻하며, 姑母(고모)나 小姑(소고) 즉 시누이를 뜻하기도 하고, 부녀자의 통칭으로도 쓰인다. 姑夫(고부)는 고모부와 시누이의 남편을 모두 가리킬 수 있으며, 姑娘(고낭)은 고모 또는 출가하지 않은 여자를 가리킨다. 또 잠시 또는 임시의 뜻도 있으니, 姑息(고식)은 일시적인 변통이나 관용을 취함을 뜻한다.
. 시어머니의 식성에 맞추려고 시누이에게 먼저 맛보게 하는 데에서 그 정성과 조심스러움이 간결하고 소박하게 드러난다.
고대에는 琴棋書畵(금기서화)라고 하여 거문고와 바둑과 글씨 및 그림을 문인의 대표적인 고상한 취미로 여겼다. 또 琴棋詩酒(금기시주)로 문인의 풍류생활을 비유했다. 心琴(심금)은 거문고처럼 외부 자극에 미묘하게 움직이는 마음을 가리킨다. 琴瑟(금슬)은 부부의 화합을 비유하는데, 瑟(슬)은 25현의 큰 거문고이다.
혁(혁)은 바둑으로 奕(혁)으로도 쓰며 圍棋(위기)라고도 한다
拒諫者塞, 專己者孤
군자는 나무꾼의 말을 물리치지 않아 그 명성을 넓힌다”고 하였으며, “많이 듣는 이는 지혜롭다”고 했다. 그런데도 간언을 거절한다면 견식과 지혜의 길은 막히고, 이어서 제멋대로 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고립되어 실패의 결말을 맞게 마련이다.
瞽不知白黑者, 非以其名也
사물의 개념이 문자로 정착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둘 이상의 한자를 합해 그 뜻을 합성해 만든 회의자는 더욱 그렇다. 또 그 안에 간직된 수많은 과거의 정보는 신비감마저 준다.
앞 못 보는 사람이 흑색과 백색을 알 수 없는 것은 그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실제적인 인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듯 실제로 느끼거나 깨달을 수 없는 추상적인 인식은 공허할 뿐이다. 유물론과 유심론의 문제를 떠나, 보통 사람이 우선 원하는 것은 실제로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실체이지, 추상적이고 공허한 명분이나 이름이 아니다. 實先名後(실선명후)를 주장한 ‘墨子(묵자)’에 보인다
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三春(삼춘)은 초봄부터 늦봄까지의 孟春(맹춘)과 仲春(중춘)과 季春(계춘)을 가리킨다. 暉(휘)는 빛을 가리키며 빛나거나 밝거나 선명하다는 뜻이 있다. 春暉(춘휘)는 봄볕으로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 또는 은덕을 비유한다.
“자애로운 어머니 손 안에 들린 실은, 길 떠날 자식의 옷을 위한 것. 떠날 즈음에 촘촘히 꿰매시는 것은, 늦게 돌아올까 걱정하셔서이다. 누가 말하는가, 한 치 작은 풀의 마음이 석 달 봄볕에 보답할 수 있다고.”
길 떠나는 자식이 일찍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행여 늦어져 옷이 먼저 해지기라도 할까봐 꼼꼼히 꿰매는 모정이 가슴을 흔든다. 언제나 변함없고 더없이 큰 그 사랑에 다 보답할 수 있는 이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