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以物傷性, 將何適而非快
將(장)은 손으로 잡는 것을 나타낸 글자이다. 그로부터 바치거나 전하다의 뜻이 나왔다. 권주가로 유명한 李白(이백)의 ‘將進酒(장진주)’는 술을 바친다는 뜻이다. 또 잡는다는 뜻에서 확대되어 以(이)처럼 ‘∼로써’로 옮겨지기도 한다.
將勤補拙(장근보졸)은 근면함으로써 서투름을 보충한다는 뜻이다. 將帥(장수)나 將軍(장군)의 뜻, 동사로서 거느리거나 통솔하다의 뜻도 있다. 여기서는 將來(장래)나 將次(장차)처럼 가까운 미래를 나타낸다.
何(하)는 ‘어느 곳’에 해당하며 의문사로 適(적)의 앞으로 도치되었다. 適(적)은 가다의 뜻이다. 또 適宜(적의)나 適法(적법)에서처럼 알맞다 또는 합당하다의 뜻, 自適(자적)처럼 편안해하며 즐기다의 뜻도 있다.
非(비)는 새가 날아 내려올 때 두 날개를 등진 모습의 글자로 違背(위배)하다가 본의이다. 그로부터 아니다 또는 없다, 거짓이나 잘못, 비난하거나 꾸짖다의 뜻이 나왔다. 快(쾌)는 유쾌하거나 시원하다의 뜻과 빠르다는 뜻이 있다.
타고난 순수한 성정은 名利(명리) 같은 외물에 의해 해를 입어 근심과 구속이 생겨난다. 그래서 宋(송) 蘇轍(소철)은 너그럽고 편안한 마음으로 순수한 성정을 유지하면 언제 어디서나 즐거울 수 있다고 이른다.
仁陷於愚, 固君子之所不與也
愚(우)는 愚鈍(우둔)이나 愚昧(우매)처럼 어리석다는 뜻으로 賢(현)과 상대적이다. 자기의 견해를 愚見(우견)이나 愚案(우안)이라고 하듯이 자기를 낮추는 말로도 쓴다. 愚弄(우롱)처럼 어리석게 여기거나 속이다의 뜻도 있다.所(소)는 특수한 지시대명사로 동사 앞에 쓰여 사람이나 사물 및 장소 등을 가리키는 명사형을 만든다. 所不與(소불여)는 허락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馬越險則駑駿別, 刃試堅則鋼鉛見
則(즉)은 조건에 따른 결과를 표시한다. 駑(노)는 둔한 말이다. 굼뜨다 또는 무능하다는 뜻이 있다. 駑馬鉛刀(노마연도)를 줄인 駑鉛(노연)은 둔한 말과 납으로 만든 칼로 변변치 못한 재능을 뜻한다. 駿(준)은 준마로 駑(노)와 상대적이다
어려운 일을 거쳐보면 능력이 드러나고 시련에 접해보면 의지의 굳기를 알 수 있다. 진정 유능하고 의지가 굳은 이는 어떠한 난제나 곤경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맞이하며 의욕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
不知推己之本, 而乘物以逞
逞(령)은 만족시키다의 뜻으로 逞欲(영욕)은 욕심을 채우다의 뜻이다. 그로부터 방종하다 또는 멋대로 굴다의 뜻이 나왔다.
乘(승)은 사람이 나무 위를 오르는 모습의 글자다. 乘船(승선)에서처럼 타다 또는 오르다의 뜻이다. 여기서처럼 기회나 상황 등을 이용하거나 틈타다의 뜻도 있다. 또 수레나 말을 가리키는데 원래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뜻한다. 萬乘(만승)은 수레 만 대, 또는 그것을 동원할 능력을 지닌 나라 혹은 천자를 뜻한다
고라니를 잡아와 집 안에 기르는 이가 있었다. 그는 날마다 고라니를 안아 개에게 보여주며 익숙하게 하였다. 개들은 주인이 무서워 고라니를 건드리지 못했으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시간이 지나자 고라니는 본분을 잊고 개들을 친구로 여기며 장난을 쳤다. 급기야 집 밖에 나가 길가의 개들에게 접근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영문도 모른 채 처참하게 잡아먹혔다.
안타깝게도 권력의 그늘에서 제 본분을 모르고 날뛰는 어리석은 자는 끊임없이 존재한다. 唐(당)의 대표적 寓言(우언) 작가 柳宗元(유종원)은 ‘三戒(삼계)’에서 동물을 등장시켜 그들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酒到醒時愁復來, 書堪咀處味逾久
堪(감)은 견뎌내다 또는 할 수 있거나 할 만하다는 뜻이다. 堪耐(감내)는 참고 견딤을, 堪當(감당)은 맡아서 잘 해냄을 뜻한다. 咀(저)는 씹다 즉 저작(咀嚼)하다의 뜻이다. 맛을 보거나 뜻을 음미하다의 의미도 있다. 堪咀處(감저처)는 씹을 만한 곳, 즉 음미할 만한 부분을 가리킨다. 味(미)는 맛 또는 의미나 재미를 뜻한다.
逾(유)는 넘다 또는 건너가다의 뜻이다. 逾禮(유례)는 예법을 어김을 뜻하고 逾月(유월)은 달을 넘김을 뜻한다. 여기서처럼 한층 또는 더욱의 뜻으로 확대되었다
敗軍之將不可以言勇
패한 군대의 장수가 자기는 용감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능력이 증명된 패배의 결과 앞에서 무책임하고 허망한 변명이 될 따름이다. 또 “망한 나라의 대신은 나라의 존립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미 엄혹한 결과가 나왔는데도 다시 나서서 무엇을 해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자기 위주의 발상이며 망상에 불과하다.
本待將心託明月, 誰知明月照溝渠
將(장)은 손으로 잡다의 본뜻에서 여기처럼 바치다 또는 드리다의 뜻이 나왔다.
託(탁)은 依託(의탁)처럼 의지하다의 뜻, 委託(위탁)처럼 맡기다의 뜻, 請託(청탁)처럼 부탁하다의 뜻이 있다. 託孤(탁고)는 고아를 맡기다의 뜻인데, 군주가 유언으로 대신에게 어린 아들의 왕위를 부탁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溝(구)는 작은 시내나 전답 사이의 도랑 또는 하수로나 성 둘레에 파 놓은 도랑인 垓子(해자) 등을 두루 가리킨다. 渠(거)는 인공의 수로나 해자를 가리킨다. 여기의 溝渠(구거)는 수챗물이 흐르는 도랑, 즉 개골창을 가리킨다. 본심으로 밝은 달에 의지하려해도 누가 명월이 개골창을 비춘다는것을 알겠는가?
한쪽은 마음을 바쳐 의지하려 해도 상대는 무정하게도 마음이 딴 곳에 있다. 세상일에는 이렇듯 사랑이나 호의가 일방적인 경우도 많다. 그러면 본의가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무시되거나 오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섭섭함이나 안타까움을 넘어 깊은 슬픔과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