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貴而利濟於世者爲榮
同舟共濟(동주공제)는 같은 배로 함께 강을 건너다, 즉 함께 협력해 어려움을 극복함을 뜻한다. 共濟會(공제회)의 목적이기도 하다. 救濟(구제)하다의 뜻도 있으니, 여기서의 利濟(이제)는 이로움을 주며 구제한다는 뜻이다. 者(자)는 여기서처럼 조건을 나타내기도 한다. 榮(영)은 꽃이 피고 이삭이 패는 것으로, 무성하다 또는 榮光(영광)이나 榮譽(영예)의 뜻이다.
“가난하고 비천함은 모욕이 아니다. 가난하고 비천해도 남에게 아첨할 때만 모욕이 된다. 부유하고 귀함은 영예가 아니다. 부유하고 귀해도 세상에 이로움이 되고 구제하는 바가 있을 때만 영예가 된다.”
年光似鳥翩翩過, 世事如棋局局新
年光(연광)은 세월을 뜻한다. 光(광)은 사람 위에 불이 있는 모습으로 본의는 밝음이다. 밝음과 어두움이 교체되며 시간이 지나가니 光陰(광음)은 시간이나 세월을 뜻하는데, 光(광)만으로도 그런 뜻이 된다.
似(사)는 유사하거나 닮았다는 뜻이다. 鳥(조)는 새이다. 翩(편)은 빠르고 가볍게 나는 모습이며,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도 된다. 여기의 翩翩(편편)은 새가 재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이다.
局(국)은 본래 口(구)와 尺(척)이 합해진 글자로, 실수 많은 입이 법도의 의미인 자에 의해 제약된 모습이다. 즉 구속되거나 국한되다의 뜻이다. 그로부터 부분의 뜻이 나오고, 바둑판 또는 그 형세의 뜻도 나왔다. 여기서는 바둑의 형세, 즉 국면을 의미한다.
명사가 중복되면 每(매)의 의미가 더해진다. 局局(국국)은 每局(매국)의 뜻, 時時刻刻(시시각각)은 每時刻(매시각)의 뜻이다.
富在知足, 貴在求退
足(족)은 원래 무릎과 정강이와 발꿈치와 발바닥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다리를 뜻하는 글자이다. 그런데 이 글자의 원래 뜻과는 관계없는 만족하다 또는 충족하다는 의미도 이 글자로 나타낸다. 이런 경우는 만족하다는 의미의 글자가 없어서 다리라는 의미의 足(족)자를 빌려, 즉 假借(가차)하여 사용한 것이다. 이런 것을 假借字(가차자)라고 한다.
만족할 때에 비로소 부유하고, 존귀함은 적당한 때를 알아 물러나야 그 존귀함이 빛나고 오래간다. ‘老子(노자)’에는 “知足不辱, 知止不殆(지족불욕, 지지불태)”라고 하였다. “만족할 줄 알면 모욕당하지 않으며,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만족하고 그칠 줄 알면 작게는 모욕과 위태로움을 피하고, 크게는 부유함과 존귀함도 누릴 수 있다. 西漢(서한) 劉向(유향)의 ‘說苑(설원)’에 보인다.
色不迷人人自迷, 情人眼裏出西施
西施(서시)는 중국의 대표적 미인이다. 춘추시대 越(월)나라 여인으로 원수 사이인 吳(오)나라에 보내져 그 왕인 夫差(부차)를 미혹시켜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하여 복수하게 하였다.
미색은 무심한데도 사람들은 제 스스로 그에 미혹되고 빠져든다. 또 사랑하는 이의 눈에는 상대가 유난히도 아름답게 보인다.
君子不鏡於水, 而鏡於人
유래한 破鏡(파경)은 부부가 헤어짐을 의미한다. 合鏡(합경)이나 完鏡(완경)은 자연히 헤어졌던 부부의 재결합을 의미한다. 또 鏡鸞(경란)은 거울 속의 난새로 이별의 슬픔을 지닌 부부를 의미한다
누구나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하며 거울을 본다. 거울이 없으면 물에라도 비춰본다. 그렇게 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만 그런 거울은 겉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군자는 남이라는 또 다른 거울을 잘 본다. 남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참된 수양의 모습을 잘 비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