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今多少事, 都付笑談中
多少(다소)는 많음을 뜻할 수도 있고 또 적음이나 약간을 뜻할 수도 있다.
都(도)는 여기서는 모두 또는 전부의 뜻이다. 또 首都(수도)를 뜻하며 일반 도시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우두머리나 수령의 뜻도 있다. 건축책임자는 都料匠(도료장), 목수의 우두머리는 都木手(도목수)라 한다. 都督(도독)에서처럼 통솔하다의 뜻도 있다.
付(부)는 손으로 잡아 남에게 주는 것으로, 交付(교부)나 送付(송부)에서처럼 주다 또는 넘기다의 뜻과 付託(부탁)에서처럼 맡기다의 뜻이 있다. 여기의 付笑談中(부소담중)은 담소 중에 넘기다, 즉 웃으며 하는 이야기의 소재로 삼는다는 말이다.
城門失火, 殃及池魚
失(실)은 失望(실망)처럼 잃다의 뜻, 失機(실기)처럼 놓치다의 뜻, 失禮(실례)처럼 어기거나 벗어나다의 뜻이 있다. 失手(실수)처럼 잘못하거나 그르치다의 뜻도 있다. 失火(실화)는 잘못하여 불을 냄을 뜻하고, 失政(실정)은 정치를 그르침을 뜻한다
이 구절은 까닭 없이 연루되어 화를 당하는 것을 비유한 말로 줄여서 殃及池魚(앙급지어)라고도 한다. 물고기와 달리 예측하고 대비하여 엉뚱한 불운을 피하라는 가르침이리라.
客到家常飯, 僧來穀雨茶
家常飯(가상반)은 집안에서 늘 먹는 보통 음식이다.
茶의 독음은 ‘차’와 ‘다’가 의미의 차이 없이 혼용되며 그 구분이 간단치 않다. 대체로 단독으로 쓰거나 紅茶(홍차)나 冷茶(냉차)처럼 각종의 차를 가리킬 때는 ‘차’로 읽고, 뒤에 한자가 이어지는 어휘에서는 흔히 ‘다’로 읽는다. 茶飯事(다반사)는 차 마시고 밥 먹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예사로운 일을 가리킨다.
손님이 찾아오면 늘 먹는 음식을 내놓고 스님이 들르면 차를 내놓는 생활이 편안하고 여유롭다. 세속의 욕심이 없기에 가능한 소탈함과 自適(자적)이 그 투박한 표현과 어우러져 담담한 맛을 더한다.
難將一人手, 掩得天下目
掩耳盜鐘(엄이도종)은 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치는 어리석음을 풍자한다.
掩得(엄득)은 가리는 일을 해내다의 의미이다. 天下目(천하목)은 천하 사람들의 눈이나 시선을 가리킨다
春蠶到死絲方盡
雙關語(쌍관어)란 어떤 글자에 음이 같은 다른 글자의 뜻이 더해져 이중의 뜻을 가지는 글자를 가리킨다. 이런 쌍관어를 쓰면 함축미가 강화된다. 絲(사)는 실을 가리키지만 음이 같은 思(사)의 뜻이 더해져 그리움이나 사모함의 의미가 내포된다. 蓮(련)을 따는 것이 憐(련) 즉 사랑을 구한다는 뜻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또 끝을 뜻하는 終(종)과 음이 같은 鐘(종)을 남에게 선물하지 않는 것도 그 이치가 같다
盡(진)은 손에 솔을 들고 그릇을 씻는 것을 나타낸 갑골문에서 변모했다. 그릇이 비었다는 본뜻에서 消盡(소진)이나 賣盡(매진)처럼 없어지다 또는 끝나다의 뜻이 나왔다. 盡忠(진충)이나 盡力(진력)처럼 다하다의 뜻이 있고, 盡善盡美(진선진미)처럼 정점에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변치 않는 굳은 애정을 표현했다.
短綆不可以汲深井之泉
井(정)은 우물의 모양을 나타낸 상형자이다. 정성을 바칠 때 쓰는 井華水(정화수)는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이다. 井花水(정화수)라고 쓰기도 한다.
泉(천)은 산 절벽의 샘구멍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양의 상형자이다. 본뜻은 水源(수원)이며, 땅속에서 솟아나는 물, 즉 샘을 가리킨다. 지하수나 지하를 뜻하기도 한다. 黃泉(황천)은 저승 또는 무덤을 가리킨다.
줄이 짧은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는 없다. 그렇듯 부족한 학문으로는 심오한 이치를 깨달을 수 없고, 모자라는 능력으로는 중책을 감당할 수 없다. 억지를 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잘못하면 불운을 당할 수도 있다. 줄이 짧으면 물러서서 줄을 늘이거나 다른 샘을 찾아야 마땅하지만, 그러기 쉽지 않은 것은 욕심 때문이다.
人貧智短, 馬瘦毛長
短(단)은 짧다 또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글자의 부수인 矢(시)는 화살인데, 고대에는 긴 것을 잴 때는 활을 기준으로 삼고 짧은 것을 잴 때는 화살을 기준으로 삼았다. 결점이나 허물의 뜻도 있다. 截長補短(절장보단)은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보충하다, 즉 장점이나 넉넉함으로 단점이나 부족함을 보완한다는 뜻이다.
瘦瘠(수척)은 여위고 약함을 뜻한다. 서예에서 필체가 가늘면서 힘이 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글자의 부수인 (녁,역)(녁)은 앓는 몸을 사물에 기댄 모습의 글자로 질병을 뜻한다.
長(장)은 갑골문에 따르면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사람의 모습으로 길이가 긴 것이 본뜻이다.
여윈 말은 유난히 털만 길어 보이고 그래서 더욱 값이 떨어진다.
사람 역시 궁핍하면 생활상의 문제에 급급하여 자신의 다양한 생각이나 지혜를 제대로 발휘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일정한 경제력은 능력 발휘에 불가결한 기초이기도 하다. 다만 이 말이 자신의 억울하고 분함을 토로하는 심각한 말로 쓰이지 않고, 남을 도우며 격려하는 말로 쓰일 때 비로소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다
爲求一字穩, 耐得半宵寒
중국 최초의 사전 ‘說文解字(설문해자)’를 저술한 漢(한) 許愼(허신)의 설명에 의하면, 물건들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기본 글자가 文(문)이고, 거기에 다시 모양이나 소리의 성분을 더해 이차적으로 만든 글자가 字(자)이다. 즉 文(문)에서 새끼 쳐 나온 것이 字(자)인 셈이다. 字(자)가 지닌 아이를 낳다 또는 양육하다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다.
穩(온)은 안정되고 平穩(평온)하다 또는 온당(穩當)하다는 뜻이다. 穩當(온당)은 사리에 맞고 타당하다는 뜻이다.
穩健(온건)은 온당하고 건전하다는 뜻으로 過激(과격)과 상대적이다. 耐(내)는 견디다의 뜻으로 忍耐(인내)는 참고 견딤을 뜻한다. 耐久(내구)는 오래감을, 耐熱(내열)은 열에 강함을 뜻한다. 여기의 得(득)은 동사 뒤에서 그 행위의 완성을 표시한다.
宵(소)는 밤을 가리킨다. 半宵(반소)는 夜半(야반) 즉 한밤중이다. 宵衣旰食(소의간식)날이 밝기 전(前)에 옷을 입고, 해가 진 후(後)에 식사(食事)를 한다는 뜻으로, 천자(天子)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사(政事)에 골몰함을 이르는 말
詩想(시상)은 분명한 형체도 없고 또 가만히 정지해 있지도 않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문자라는 제한된 수단으로 재현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더욱이 꾸민 흔적이 없이 자연스러워야 하지 않던가
緣木求魚, 升山採珠
珠(주)는 진주조개가 만들어내는 진주이다. 玉(옥)은 편방으로 쓰이면 중간의 점이 생략된다. 그렇다고 혹 이를 임금 王(왕) 변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임금 王(왕)은 편방으로 쓰이지 않는 글자이다. 나무에 기어 올라가 물고기를 찾고, 산에 올라가 진주를 캐려는 이는 없을 것이다. 목적에 위배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