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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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5. 8. 21:23

君子는 喩於義하고 小人은 喩於利니라

 利는 禾(화)와 刀(도)로 짜여 곡식 따위를 칼로 베는 형태로, 곡식을 베어 거두어 이익으로 삼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후한 때 ‘說文解字(설문해자)’는 곡식 베는 칼날의 날카로움에서 ‘날카롭다, 재빠르다’의 뜻이 나왔다고 풀이했다. 모두 통하되 여기서는 이익의 뜻이다.

 

 天理와 人欲의 사이는 당초 머리카락 하나 끼울 수도 없을 만큼 좁지만 양극의 결과는 대단히 멀어진다. 그렇기에 유학은 인욕을 뿌리째 뽑고 근원을 막는 拔本塞源(발본색원)의 공부를 강조한다.

 

父母之年은 不可不知也니, 一則以喜요 一則以懼니라

不可不(불가불)은 ‘아닌 게 아니라’라는 이중부정을 통해 강한 긍정과 주장의 뜻을 드러낸다. 이 글의 知(지)는 確認(확인)하고 記憶(기억)한다는 뜻이다. 글 끝의 也(야)는 단정의 어조를 표시한다. ‘一則(일즉)∼’의 구를 겹치면 한편으로는 이러면서 한편으로는 저런다는 뜻을 드러낸다. 以(이)는 이유나 근거의 말을 끌어온다. 여기서는 ‘부모님 연세를 앎으로써’나 ‘부모님이 高齡(고령)이기에’라는 뜻을 함축한다.

 

喜(희)는 본래 神을 즐겁게 하려고 큰북 치는 일을 뜻했는데 사람이 마음으로 기뻐함을 뜻하게 되었다. 懼(구)의 오른쪽은 발음을 표기하면서, 새가 두 눈 굴리는 모습을 나타냈다.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부모님 연세를 생각하고 기뻐하게 되는 것은 부모님의 長壽(장수)를 새삼 확인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연세를 생각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高齡이시라서 혹 餘生(여생)이 얼마 되지 않으실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부모님 연세를 생각하며 기뻐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것을 愛日(애일)의 정성이라고 한다. 愛日이란 날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다. 날이 감을 愛惜(애석)해한다는 말이다.

 

君子는 欲訥於言, 而敏於行이니라

이 장은 學而(학이)편에 나오는 ‘敏於事而愼於言(민어사이신어언)’장과 통한다. “일의 실천에서는 민첩하고 말에서는 신중하다”라는 말이다. 또 같은 里仁편에, “古者(고자), 言之不出(언지불출)은 恥躬之不逮也(치궁지불체야)”라는 장이 있다. “옛 사람이 함부로 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실행이 미치지 못할까 부끄러워서였다”라는 말이다. 言行一致(언행일치)를 중시하라는 이 가르침이 오늘날 큰 울림을 지닌다.

 

德不孤라 必有隣이니라

學而(학이)편에서 공자는 “벗이 먼 곳으로부터 오니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했다. 또 옛 성인 舜(순)은 한곳에 정착하길 세 해 만에 도읍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周易(주역)’ 乾卦(건괘) 文言傳(문언전)에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기질이 같은 사람은 서로 찾는다”는 뜻의 ‘同聲相應(동성상응), 同氣相求(동기상구)’라는 구절이 있다. 같은 덕의 사람은 서로 응한다는 同德相應(동덕상응)의 사실을 말한다. ‘史記(사기)’ 伯夷列傳(백이열전)에서 司馬遷(사마천)은 이념 때문에 외롭게 죽어간 백이와 숙제를 조문하면서 그 점을 강조했다.

 

한편 ‘주역’ 坤卦(곤괘) ‘문언전’에 “군자는 敬(경)으로써 안(마음)을 곧게 하고 義(의)로써 바깥(일)을 바르게 하므로 敬과 義가 확립되어 德이 외롭지 않다”라고 해서 역시 ‘德不孤(덕불고)’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敬과 義의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음을 뜻하므로 里仁편과 다르다고 했다. 정약용은 敬과 義를 확립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풀이해서 둘이 통한다고 보았다.

군자의 도리로 恭, 敬, 惠, 義의 넷을 들었다. 선인들은 자기를 완성하면서 또한 백성들도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했다. 자기의 완성을 成己(성기)라 하고 백성의 완성을 成物(성물)이라고 한다. 恭과 敬은 成己의 덕목이고 惠와 義는 成物의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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