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王旣沒하시니 文不在玆乎아 天之將喪斯文也인댄
後死者가 不得與於斯文也어니와
天之未喪斯文也이니 匡人이 其如予何리오
위(衛)나라의 광(匡) 땅 사람이 그를 양호(陽虎)란 인물로 오인해서 핍박했을 때 한 말이다. ‘논어’ ‘자한(子罕)’에 나온다.
文王은 은나라 말의 서백(西伯)으로, 주나라를 일으켰다. 旣沒(기몰)은 이미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文은 문왕이 만든 예악과 법도다. 斯文(사문)은 본래 ‘이 문화’란 말인데, 훗날 유학, 유교문화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不在玆乎는 나에게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말이다. 언해본은 不在를 ‘불재’로 읽었다. 將은 ‘장차’, 喪은 ‘없애다’이다. 後死者란 문왕보다 뒤에 태어나 나중에 죽을 공자 자신을 가리킨다. 不得은 ‘∼할 수 없다’로, 언해본은 ‘불득’이라고 읽었다. 與는 간여한다는 뜻이다. 其如予何는 予를 如何히 하랴는 말로, ‘나를 어찌 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곤궁에 처해서도 공자는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논어’를 읽는 일은 그 강인한 인격을 배우는 일이어야 한다.
賤(천)은 가난하다, 鄙事(비사)는 자질구레한 일이란 뜻이다. 多乎哉는 많아야만 하겠는가라고 반문하는 말이다. 不多也는 재능이 많지 않다는 말이되 군자는 재능이 많은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주(周)나라 영왕(靈王) 20년(기원전 552년)에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추邑)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산둥(山東) 성 취푸(曲阜)다. 아버지는 노나라 대부 숙량흘(叔梁紇)인데, 매우 고령이어서 공자가 세 살 때 세상을 떴다. 공자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잡다한 일에 능통해야 했다. 그 사실을 공자는 겸손하게 말하면서, 多藝多能하다고 해서 성인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잡다한 일들을 해야 했지만 열다섯 살에 공자는 학문에 뜻을 두었다. 자강불식(自彊不息)의 그 태도를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
공자는 스스로 지혜 있는 사람으로 자처하지 않고 오히려 무지하다고 겸손해 했다. 하지만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을 결코 물리치지 않았다. 그 가르침의 방법을 공자는 ‘논어’ ‘자한(子罕)’편의 이 章에서 들려준다.
鄙夫(비부)는 견식이 없어 固陋(고루)한 사람이다. 問於我는 나에게 묻는다는 뜻이다. 空空은 물으러 온 사람이 지식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단, 옛 텍스트에 (강,공)(강,공)(공공)으로 되어 있어서, 가르치는 사람이 성실하고 우직한 태도를 짓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兩端(양단)은 終始(종시), 本末(본말), 上下(상하), 精粗(정조)를 말한다. 竭(갈)은 다한다는 뜻이다. 叩其兩端而竭이란 질문의 구석구석까지 따져 전부 드러낸다는 말이다.
子見齊衰者와 冕衣裳者와 與瞽者하시고
見之에 雖少나 必作하시며 過之必趨러시다.見은 우연히 보는 일, 아래의 見之는 만나보는 일이다. 齊衰(자최·재최)는 본래 어머니 상에 입는 喪服(상복)이지만 여기서는 상복 전체를 대표한다. 상복에는 참최(斬衰) 자최(齊衰)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시麻) 등 五服(오복)이 있다. 冕(면)은 冠(관)의 하나로, 베로 싼 장방형 판을 위에 붙이고 판에서 장식물을 드리운 형태다. 衣裳(의상)은 조회복 따위의 公服(공복)을 말한다. 공자는 군주가 명한 관작(官爵)을 중시했기에 公服 입은 사람을 공경했다. 與는 ‘∼와’이다. 瞽者(고자)는 앞 못 보는 사람이다. 樂師(악사)라는 설이 있지만, 따르지 않았다. 雖少必作(수소필작)은 긴축 복합문이다. 少는 상대가 젊다는 말이고, 作은 공자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過之(과지)는 그들 앞을 지나간다는 말이다. 趨(추)는 종종걸음 걷는다는 뜻이다.
顔淵(안연)이 스승 공자의 도덕과 학문을 흠모해서 한 말이다. ‘논어’ ‘子罕(자한)’편에 나온다. 안연은 존경의 마음이 너무 커서 한숨부터 쉬고는 이 말을 꺼냈다.
仰(앙)은 우러러봄이다. 彌(미)는 차츰 더 ∼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鑽(찬)은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다는 뜻이다. 仰之彌高(앙지미고)는 우러러볼수록 더 높게 여겨질 만큼 인격이 高邁(고매)함을 가리킨다. ‘시경’도 높은 인격을 칭송해서 “높은 산봉우리를 우러러본다(高山仰止)”고 했다. 鑽之彌堅(찬지미견)은 뚫으려 해도 너무 단단해서 도저히 뚫리지 않듯이 인격이 剛毅(강의)함을 가리킨다. 忽焉(홀언)은 忽然(홀연)과 같다. 瞻(첨)은 바라본다는 말이다. 在前과 在後는 활동역량이 自由自在해서 모습을 그려내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함을 뜻한다. 이후에 안연은 스승이 우뚝 서 계신 듯 뚜렷하게 보이자 다시 흠송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