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각에서 살펴보면
잘나가는 분들끼리 서로 오가는 짜궁속 밝아지는 소인 생활 어니와
그것으로 범부까지 원하는데로 조정 할 수없는 노릇이니라.
호텔에서
장기투숙하는 분이 있어
저 분 무엇 하는분인가요?
해외 달건이야!
할 일없이 왜 빈등빈둥?
저런 분도 다 필요한거야!
이해가 안가요? 왜죠!
부귀을 가지고 절대적인 힘을 남용하는 분들이 무서울게 무엇있겠어!법 귀신 궁민! 웃기지마!
저런 분들이 알게모르게 견제하게 되는거야!
말 도않되는 소리 같지만 그렇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잘나가는 분들끼리 =절대적인 힘을 남용하는 분들),(달거이=국민)
작은 의미와 큰뜻으로 서로 비교해서 이해 하면 새로운 국면을 접 할 수있다.
歲寒然後에 知松柏之後彫也라
소설,시,예능등등에서
원로들이 이구동성으로 글에서 세상에 험한 풍파를 격어보지않으면 감칠맛이 나오지않아!
知者不惑하고 仁者不憂하며 勇者不懼니라
삼덕으로 최고의 덕목이다.
그러나 역으로 배운지식 꺼구로 써먹지는않는지!
인해서 재물과 친하지않아 티밥신세 아닌지!
眼下無人격으로 부끄러움을 모르지는 않는지!
생각 해볼이다.
출전이 ‘논어’ ‘子罕(자한)’편의 이 章이다. 공자는 배움에서 실천에 이르는 단계를 學, 適道, 立, 權의 넷으로 설정하고 실천의 융통성을 강조한 權을 궁극에 두었다.
與는 ‘∼와 함께’인데 ‘다른 어떤 사람’이라는 목적어가 생략됐다. 전체 글은 可와 未可를 교대로 사용해서 ‘∼은 할 수 있어도 ∼은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차츰 고조시켜 나갔다. 適道의 適은 가다, 나아가다이다. 立은 樹立(수립)으로, 몸을 세워 흔들림이 없고 신념이 굳음을 말한다. 權은 저울의 추인 分銅(분동)이다. 무게에 따라 추를 움직여 적합한 위치를 얻는 데서 사물과 사실을 판정하여 적합한 상태를 얻음을 뜻하게 됐다.
程이(정이)는 輕重(경중)을 재어 義에 부합시키는 일이라 풀이했고 정약용은 平衡(평형)을 이루어 中道(중도)를 얻는 일이라 풀이했다. 한문문헌에서 權은 흔히 常道(상도)를 가리키는 經(경)과 짝을 이룬다. 한나라 학자들은 經과 어긋나더라도 道理에 맞으면 된다는 反經合道(반경합도)를 주장했다. 또 어떤 학자들은 經을 中庸(중용), 權을 중용의 반대로 보았다. 하지만 정약용은 權이 곧 中庸이기에 經에서 벗어난 術數(술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魯(노)나라 宣公(선공)의 딸 伯姬(백희)는 송나라 共公(공공)에게 시집갔다가 10년 만에 홀로 됐다. 궁궐에 불이 났을 때 관리가 피하라고 했으나 부인은 한밤에 보모 없이 집을 나설 수 없다고 고집해서 결국 불속에서 죽었다. 膠固(교고)하여 中道를 잃은 예이다. 每事(매사)에 平衡을 이루어나가는 일, 이 지극히 어려운 일을 우리는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
태양은 두개가 있을 수없다. 란 명제을 연상해보면
즉 사회 구조가 어떤 분야든 피라미드 구조에서 벗어나지않는다. 혹 예외는 있을지언정 모형은 유사하다.
같이 배워서 모두 서울대 못간다. 같이 서울대 졸업해도 모두 좋은 직장 목가진다.
같이 좋은 직장으로 부귀을 보더라도( 權은 저울의 추인 分銅(분동)이다. 무게에 따라 추를 움직여 적합한 위치를 얻는 데서 사물과 사실을 판정하여 적합한 상태를 얻음을 뜻) 수장은 같이 될 수없다.
이렇게 이해 하는것이 더 실감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