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之言은 세상에 전하는 말이다. 爲君은 임금 됨, 임금 노릇함, 爲臣은 신하 됨, 신하 노릇함이다. 難(난)과 不易(불이)는 의미가 같다. 如는 ‘만일’이고, 知의 목적어는 爲君之難이다. 不幾∼乎는 ‘거의 ∼에 가깝지 않겠는가’의 뜻이다. 興邦은 나라를 興隆(흥륭)시킴이다
말하길, 임금 노릇하기 어렵고 신하 노릇하기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만일 임금 노릇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이 한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키는 데 가까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좋으련만 도리어 엇나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이 이래도 저래도 욕 먹는것이 정해진다면 어려울것이다.
이런 것을 뉘우치기 보다 이럴바에야 남(백성)이야 우째되든 자신이 필요한쪽으로 행동하는것이 당연 하다고 위안하는데, 어찌 해야 좋은가?
그러나 힘없고 빽없는 사마천은 사기를 저술하여 공자의 가르침과 통한것이 아닌가?
人之言은 세상에 전하는 말, 予는 일인칭 주어, 乎는 ‘∼에서’, 爲君은 임금 됨 혹은 임금 노릇함이다. 莫予違也는 ‘나의 말을 어기는 사람이 없다’인데, 나의 말을 어기는 사람이 없다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는 뜻이다. 짧은 부정문이고 목적어가 대명사 予라서 동사 違보다 앞으로 나왔다. 如는 ‘만일’이다. 莫之違也는 ‘그것을 거역하지 않는다’이다. 不亦善乎는 ‘또한 좋지 않겠는가’, 不幾∼乎는 ‘거의 ∼에 가깝지 않겠는가’이다. 喪邦은 나라를 잃음이다
리더들은 과정은 묻지마라는 입장이더라도 몸소 바름을 실행하여야 솔선 수범이 되어 누구나 원하는 세상이 되지,대부분이 편협에 벗어나지못하여 묻지마을 솔 선 수범하여 쪼차 오라고 독려하니
세상이 어지러운 쪽으로 흘러가지않는가?
어제 예기한 현대 리더들의 솔선수범과 통하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나라가 망하거나 개인이 어려워 져야 되는데
그렇지않는 경우가 어찌된 일인가?
상위 1%는 빨리 하지않아도 소리을 탐하지않아도 성공하고
그외는 빨리빨리 서둘러 죽도록 힘써도
한푼 두푼 꾸역꾸역 모아도 이룰 수가 없는 것 처럼
모든 경우에 적용 하는것이 좋은가?
젊은 이여! 먹고 사는 문제에 빠지는것 보다 큰 꿈을 그리는것이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빨리,한 두푼 모아 먹고 사는 것은 누구나 하지만 큰 꿈은 이것으로 이눌 수 없느니라.
객관적이기 보다 상대적인 관계의 차이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