誦詩三百은 시 삼백 편을 왼다는 말이되, 여기서의 시는 ‘시경’의 시를 말한다. ‘시경’의 시는 오래전부터 305편이었지만 대개 詩三百(시삼백)이라고 일컬었다. 授之以政은 시 삼백을 외는 그 사람에게 정무를 맡긴다는 말이다. 達은 정치의 도리에 환한 것을 뜻한다. 使於四方은 사방 다른 나라로 사신 가는 것을 말한다. 專對는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 독단으로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奚以爲는 ‘어디에 쓰겠느냐’이다.
학문의 실용성을 강조한 말이다.
실학이 조선 후기에 생긴것이 아니고 공자가 강조한 것이 아닌가?
그 당시에 이미 현실적인 쓰임을 강조 하시니
현대에도 이러지 못한 분들이 허다한데
이런것은 무슨 차이겠는가?
몸가짐이 바르면 시키지 않더라도 행해지고,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시키더라도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논어’ ‘子路(자로)’의 이 장(章)에서 공자는 법령이 실행되려면 법령의 제정자이자 집행자인 君主(군주)가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에 나타나 있듯이 유학은 爲政者(위정자)가 齊家(제가)와 治國(치국)과 平天下(평천하)를 이루려면 무엇보다 修身(수신)을 우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장은 그 이념과 관계가 깊다.
요즘은 돈 잘 주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하고
돈 잘 안주면 시켜도 하지 않는다.
공자는 衛나라 공자 荊(형)이 담박한 생활을 하여 外物(외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고 높이 평가했다.
謂는 ‘∼에 대해 말하다’이다. 荊은 衛나라 대부의 이름이다. 善居室은 가정 살림을 잘 꾸린다는 뜻이다. 有는 所有(소유)이다. 苟는 ‘그런대로’, 合은 ‘잘 갖추어 절도에 맞다’이다. 完은 完備(완비), 美는 훌륭함이다. 정약용은, 공자는 궁궐을 나오면서부터 밭과 재산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이 始有이고, 그가 몸소 검약해서 점차 살림이 부유해진 것이 少有이며, 저축을 통해서 노년에 풍요로워진 것이 富有라고 풀이했다.
공자가 칭찬하고,맹자가 적은 나라라도 바른 정치을 하면 백성이 모여들어 대국이 된다고 했는데
이런 인물이 있는 위나라는 점점 약해지고 형이란 인물이 후세에 구체적인 사건이나 일화가 전해지지 안는 이유가 궁금하다.
適은 ‘가다’이다. 僕은 여기서는 마차 모는 사람을 뜻한다. 庶는 衆多(중다)로, 백성이 많다는 말이다. 矣哉에서 矣는 단정, 哉는 감탄의 어조를 나타낸다. 旣∼又∼는 이미 ∼한데 또 ∼한다는 식의 구문이다. 何加焉은 무엇을 거기에 더하겠는가라고 묻는 말이다. 富之는 ‘백성을 부유하게 만든다’로, 之는 글 이면의 백성을 가리킨다. 敎之의 之도 같다.
‘管子(관자)’에서 ‘衣食足而知禮節(의식족이지예절)’이라고 했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족해야 예절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
맹자도 토지분배제도인 井田法(정전법)을 실시해서 백성에게 恒産(항산)이 있게 만든 후에 학교에서 孝悌(효제)를 가르쳐야 한다고 봤다.
백성이 많으면 부유하게 만드고 부유하면 가르친다.취진데.
공자의 이말씀과 번지의 잘 살고자 하는 방법을 농사에서 구하려는 것,맹자의 분배(농사 방법)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용어가 거창하면 대인이고,현실 속에 쓰이는 말을 쓰면 소인인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