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가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공자는 “나는 노련한 농부보다 못하다”라고 했다. 다시 번지가 채소밭 가꾸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공자는 “나는 노련한 채소재배자보다 못하다”라고 했다.
논어 ‘子路(자로)’편에서 樊遲라는 제자가 농사짓는 법이나 채소 가꾸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공자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논어 전체에서 이처럼 기이한 대화가 있을까. 공자는 공자 스스로 “나는 젊은 시절 미천했으므로 비루한 일에 많이 능하다”라고 했으므로 농사에도 밝았을 것이다. 또 공자의 학당에서는 정치에서 농사를 本務(본무)로 삼았다. 그렇거늘 공자가 번지를 나무란 이유는 무엇인가.
學稼의 稼는 벼 메기장 기장 보리 콩 등 五穀(오곡)을 심는 일을 말한다. 不如는 ‘∼이 ∼보다 못하다’는 열등비교를 나타낸다. 爲圃는 밭을 가꿔 야채 기르는 일을 말한다.
흥미로운 대화다.
우선 공자의 진솔한 마음으로 그것은 전문가에게 물어 보는것이 좋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세상사는 순리을 터득하여 현실정치에 참여하기(관료에 등용)위한것이지
농사을 짓기위한 질문은 삼가하는 것이 좋겠다.
공자는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허례허식,권위,체면,위선적인 면이 없다.
모르는것을 모른다고 하는것이 아는것이다. 처럼.
번지 입장에서는 왜 이것을 알지 못하겠는가?
그래도 목구영이 마른데 오직 답답 했으면 이런 먹고 사는 문제을 해결하려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요즘은 직업이 다양하겠지만 그당시에는 가장 많은 분들이 종사하는 일이니 가장 일반적인 생각일텐데.
수 천년후에 글꾀나 읽고 벼슬을 한입장에서는 번지을 비하해서 어리석은 부류로 보는 경우가 있다.
공자가 도를 펼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현실과 이상의 번뇌를 극복하지 못하는 점이 옆에서 보기가 답답 했을 수도있고,자신의 집안에 개인 사정이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광땅에서 어려움을 격고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의문을 가진것과 도 맥략을 같이 볼 수도 있다.
추종자들은 온갖 미화을 시키지만 논어 문장 전체을 보아서는 이런 점이 더 가깝다.
번지가 공자가 그대로 표현하고 허례허식,권위,체면,위선적인 면이 없다는것을 간파하고
이런 면을 터놓고 의논하고 싶었지만
이미 답도 없다는것을 알고 모든 것은 자신이 선택 할 일이라 것을 깨우쳤을것이다.
요즘 가장 큰 문제가 이와 같은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문제로 젊은이가 쓸데없는 에너지을 소모하고 얄팍한 허례허식,권위,체면,위선적인 면으로 비생산적인 낭비를하지 않는 세상오면 상상의 날개을 달고 마음의 동력을 끝없이 펼칠텐데.
이런 말하면 꼭 이런 사람들이 있더라
누가 못하게 말리더냐?
나는 옛날에 궁시렁 정시렁....... .
이런 분이 최고가 되어도 쫌팽이 못면 하더라!
이런 분이 어찌 번지을 욕할것인가?
번지 보다 잘 살았다고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