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不敎民戰이면 是謂棄之니라
以는 개사로, 用과 같다. 敎는 道義, 農耕(농경), 전술의 교육은 물론,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공감 형성도 아우른다. 是는 앞의 말을 가리키고, 之는 不敎民을 가리킨다.
‘춘추좌씨전’에 보면 기원전 633년에
晉(진)나라 文公(문공)이 교화에 힘쓴 지 두 해 만에 백성을 동원하려고 하자 대부 子犯(자범)은 백성들이 義를 알지 못한다며 말렸다. 백성의 생활이 안정되고서 문공이 그들을 동원하려 하자 자범은 백성들이 信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문공은 原(원)을 치고 30리를 물러나 신의를 보이고 나서 백성을 동원하려고 했다. 자범은 백성이 禮를 모른다며 반대했다. 문공이 예의의 기준을 밝히고 관직의 위계를 바로잡자 비로소 백성이 명령에 의혹을 품지 않게 됐다. 문공은 백성을 동원해서 제나라와 초나라를 이기고 覇者(패자)가 되었다.
문공이 패자가 단지 자범의 충고에 의해서 이루어 진것인가?
이것은 단지 용어에 불과할뿐
큰 저수지를 만들어 모든 사람이 사용 할 수 있는 것을 기획하고
그 기간 동안 재정과 인력, 날씨등이 도와서 완성 되는것이다.
이것을 패자을 만드는 과정과 같은 형상을 한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저수지는 결과론,패자는 점진론에서 차이는 있으나
우연인지 모르나 그 기간 동안 재정과 인력, 날씨등이 도와준 공통점이 있다.
이 공통점을 빼고는 절대 성공 할 수없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영웅 이더라도 공통점에 비하면 새발에 피다.
그러나 인간들은 공통점은 묻어두고 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진것처럼 맞아 맞아 그래 그래 그럿치그럿치하면서 나방이 불빛을 향하여 돌진하여 죽듯이 공통점은 사장되고,돌진하는 나방처럼 용맹한 인간만을 신격화하는 어리석음을 만드는 오류을 벗어나지 못 하는 모순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모든 사물에는 음양이 존재 하듯이
성공,영웅 이면에는 반드시 이런 예와 같은 쓰라린 거름이 자양해서 만들어 진다는 것을 깨우쳐야 할 것 같다. 용어에 편견을 가진 분들은 음양이란 단어을 쓰면 코딱지 떨어지는 소리로 귀청이나 후비며 딴청을 부리는 경향이 있는데,고정관념으로 꾿어진 생각을 버리는 만큼 기본을 넓힐 수 있다고 본다.
以不敎民戰이면 是謂棄之니라
이 공자의 말씀을 위의 사고와 연결해 보면
백성이 피와 땀,죽음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만리장성이 쓰이지 못하면 백성의 희생은 물 거품이다.
이런 것이 피부에 와닫지 않으면
육이오때 학도병을 생각하면 맞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 이라면 공자의 말 처럼 하겠는가?
즉 학도병을 쓰지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