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子는 泰而不驕하고 小人은 驕而不泰니라
다섯 가지 美德이란 말로,
혜택을 베풀되 낭비하지 않고,
일하게 하되 원망을 사지 않으며,
바라되 욕심 부리지 않고,
여유 있되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스럽되 사납지 않음을 가리킨다. ‘논어’의 맨 마지막 편인 ‘요왈(堯曰)’에서 공자가 제자 子張(자장)에게 일러준 말로 나온다. ‘여유 있되 교만하지 않다’는 말은 ‘논어’ ‘子路(자로)’의 이 章에 먼저 나왔다. 여기서는 정치를 담당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군자로서의 태도와 덕성을 포괄적으로 말한다.
泰는 편안하면서 느긋한 태도이다. 도리에 따르기 때문에 편안하며, 바깥의 명예나 이익을 좇지 않고 內實(내실)을 다져 느긋한 것을 말한다. 泰然自若(태연자약)은 본래 이런 태도를 가리킨다. 而는 연결사로 여기서는 앞과 뒤를 순순하게 이어준다. 驕는 곧 驕慢(교만)이다. 사사로운 욕심을 지닌 자가 어쩌다 사정이 좋아졌다고 해서 멋대로 굴고 내실이 虛하기에 바깥으로 기세를 부림을 말한다. 한문에서는 때때로 泰와 驕를 동의어로 보아 驕泰(교태)라고 복합해 쓰기도 한다
剛毅木訥이 近仁이니라
공자는 剛毅木訥 자체가 곧바로 仁은 아니지만 仁에 가깝다고 했다. 剛은 의지가 강해 물욕에 휘둘리지 않는 일, 毅는 기가 강하고 과단성이 있는 모습, 木은 나무 그대로처럼 質樸(질박)한 것, 訥(눌)은 말수가 적음을 뜻한다.
중국 서부 실크로드의 투루판에서 화염산으로 향하는 길에 아스타나 고분군이 있다. 이곳에는 高昌國(고창국)의 후예로 당나라 태종 때 중국에 복속하여 張氏(장씨) 성을 가진 이민족 귀족이 묻혀 있다. 무덤의 벽화에는 玉人(옥인) 金人(금인) 石人(석인) 木人(목인)의 네 인물이 부조돼 있는데 현지에서는 인간의 일생을 단계별로 표현한다고 해설한다. 하지만 필자가 수상록에서 이미 밝혔듯이 金人의 입에 세 번 끈이 감겨 있고 그림에 愼言人(신언인·말을 삼간 사람)이라 적혀 있음을 보면 현지의 해설은 따르기 어렵다.
金人, 곧 愼言人은 ‘공자가어’에 나오는 緘口(함구)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공자가 周(주)나라로 관광 가서 태조 后稷(후직)의 사당에 들어갔는데 오른쪽 계단 앞에 서 있는 金人의 입에 끈이 세 번 둘러 있고, 등에는 ‘옛날의 신언인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뒷날 입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을 함구라 했다. 곧, 金人은 말을 삼가는 訥의 덕목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로부터 玉人, 石人, 木人은 각각 剛의 인간, 毅의 인간, 木(質樸)의 인간을 상징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네 인물에 대하여 의미을 부여하는 것은 일생을 단계별,剛의 인간, 毅의 인간, 木(質樸)의 인간을 상징한다고 추론하여 공자의 인에 가까운 형상으로 보는 것일 수있다.
저가 볼때는 옥 금 석은 묶어 하나로 보고 대표해서 금,목 즉 금이 목을 제어하여 원하는 쓰임을 만들어 내는것 해석해서 금이 목을 올바르지 못하게 다스려 바람직하지 못한 쓰임으로 변질 될까 걱정스러워 하는 마음을 (金人의 입에 세 번 끈이 감겨 있고 그림에 愼言人(신언인·말을 삼간 사람)이라 적혀 있음)표현 한것으로 보는것이 좋을 것 같다.
다양한 형상으로 더 표현 가능하나 문제가 제기되면 추론 하는것이 좋겠다.
切切은 切責(절책)이니, 간절하게 責善해서 권장하는 일이다. 시시는 친절하게 알려주어 激勵하는 일이다. 怡怡는 和順(화순)이니, 순순하게 和樂하는 것을 말한다. 兄弟는 같은 부모의 형제만이 아니라 喪服(상복)을 입는 同族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