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行은 中道에 맞게 행동함인데 여기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與之는 中行의 사람과 함께함이다. 必也는 ‘반드시 꼭’이다. 狂者는 뜻이 높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다. 進取는 적극적으로 善(선)을 구함이다. 견者는 지식은 못 미쳐도 節操를 고수하는 사람이다. 有所不爲는 ‘하지 않음이 있다’인데, 惡行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狂者는 진시왕, 狷자는 도가류가 적절할까?
南人은 남국 사람이다. 言은 俗談을 가리킨다. 無恒은 항상 붙잡아 지키는 바가 없음이다. 不可以는 ‘∼할 수가 없다’이다. 巫는 神託(신탁)을 전하는 巫堂(무당), 醫는 醫術(의술)로 질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巫가 醫도 맡았으므로 巫醫를 숙어로 보아도 좋다. 不可以作巫醫에 대해 주자는 ‘항상의 마음이 없는 사람은 무당이나 의원 같은 천한 직역도 할 수 없다’고 풀이했다.
恒心을 지녀 스스로 노력하는 것만이 성공의 비결이다. 이 쉬운 이치를 무시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리라.
공자는 ‘易(역)’ 즉 ‘周易(주역)’의 64괘 가운데 恒卦(항괘)에 나오는 ‘不恒其德이면 或承之羞라’는 말을 제시한 후 ‘恒(항)’을 다시 강조했다. 承은 受(수), 羞는 恥(치)다. 子曰 이하는 공자의 논평이다. 不占而已矣는 점을 치지 않더라도 덕을 변함없이 지키지 못하면 모욕당하리란 사실을 잘 알 수 있다는 뜻이다.
恒德은 삶의 기본 원리을 거역하고 무엇을 바라고 열망하는 것은 물거품일뿐이다.
이 당시 얼마나 많이 점치는 일이 성행 했다는것을 짐작 할 수있다.
현재도 이런 것에 의존하여 삶의 기본 원리를 버리지는 않는지 경계해야 한다.
君子는 和而不同하고 小人은 同而不和이니라
안자에 따르면 和는 맛있는 국물과도 같다. 생선이나 고기를 삶을 때 물과 불을 잘 맞추고 초 젓갈 소금 매실 같은 양념을 갖추어 조리사는 부족한 것이 있으면 더하고 지나치면 줄여서 요리하므로 군자는 이런 음식을 먹고 마음이 화평할 수 있다.
하지만 양구거는 군주가 옳다고 하면 자기도 옳다고 하고 군주가 그르다고 하면 자기도 그르다고 하였으므로 마치 물에 물을 보태는 것과 같고 마치 조화 없이 일률적으로 거문고를 켜는 소리와 같았을 따름이었다. 同이란 참 조화가 아니다. 우리는 和와 同을 분명히 변별해야만 한다.
송대 구양수가 당파의 필요성을 역설 할때 이 두가지을 군자와 상인을 비교 설명하여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