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라 定公(정공) 12년에 大司寇(대사구)로 있던 공자는 孟孫氏(맹손씨) 叔孫氏(숙손씨) 季孫氏(계손씨)의 세 도읍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군사를 해산시키려고 했다. 제자 子路(자로)는 季孫氏의 宰(재)로 있으면서 공자를 도왔다. 맹손씨가 저항했으므로 공자는 군사를 동원해 에워쌌으나 끝내 이기지 못했다. 이때 公伯寮는 子路에게 해를 입혀 공자를 저지하려고 계획해서 子路를 계손씨에게 讒訴(참소·거짓말로 중상함)했다.
그러자 노나라 대부 子服景伯(자복경백)이 공백료를 자기 손으로 처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계손씨가 공백료의 讒訴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만 子路가 의심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미약하기는 하지만 공백료를 誅戮(주륙·벌 있는 자를 죽임)해서 시신을 저자에 널브러지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자는 위와 같이 말했다. ‘
음양의 이치처럼 명이란것은 흥하고 패하는것도 자연의 이치인것이다.
지구의 날씨가 찌지고 뽁고 해도 결론은 변함이 없듯이
3손씨가 지날을떨어도 공자가 능력의 한계을 느껴도 공자의 철리는 자연의 이치을 통하여
자로가 죽든 말든 하늘의 뜻에 다렸다는 것이다.
즉 궁하면 통한다는 주역의 가르침이 아닌가?
첫째,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는 세속을 아예 떠나라. 둘째, 한 나라나 한 지역이 혼란스러우면 그곳을 떠나라. 셋째, 군주의 용모나 태도가 예의를 벗어나면 그 군주의 곁을 떠나라. 넷째, 군주에게 諫言(간언)을 해도 군주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군주의 조정을 떠나라. 伯夷(백이)나 太公(태공)이 은나라의 紂(주)왕을 피해 바닷가로 이주한 것은 세상을 피한 예이다. 나머지도 각각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벽,피)는 避(피)의 古字다. 본래 (벽,피)(벽)은 손잡이가 붙은 가느다란 曲刀(곡도)로 사람의 허리 부분을 자르는 형벌을 가하는 것을 뜻했다. 또 그런 형벌을 받은 사람은 몸을 구부정하게 취하게 되는데 무언가를 피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그래서 (벽,피) 자체에 避한다는 뜻이 있었다. 그런데 (벽,피)가 형벌 이외에 임금이란 뜻으로도 사용되자 사물을 피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避가 새로 만들어졌다. 한문 문헌에서는 옛 글자와 새 글자를 한데 섞어 쓰기도 한다. 여기서는 뒤에 나온 避를 쓰지 않고 옛 글자인 (벽,피)를 사용했다.
공자께서 실학을 즉 배운것을 실용적으로 쓰지않으면 무용지물이된다고 가르치면서
어떨때 쓰라는 쓰라는것은 이것을 통하여 보면
태평성대할때 쓰라는것 같다.
이럴때 쓸 수있는것이 진정한 쓰임이 아닌가?
새벽에 성문 여는 일을 맡아 보던 은자가 등장한다. 성명을 알 수 없어 晨門(신문)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논어’의 편찬자들은 은자의 일이나 물건을 근거로 보통명사를 만들고 고유명사로 대용했다. 은자들은 공자를 비판했지만 여기에는 존경과 애정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그 비판을 통해 거꾸로 공자의 위대한 인격을 더 잘 이해할 수가 있다.
하찮은 문지기 말을 통하여 거꾸로 공자의 위대한 인격을 더 잘 이해하도록 소설을 쓴 허구는 아닌지 궁금하다. 문지기가 이렇게 보신않고 어찌 될지 모르는 말을 할까?
특히 그당시 문화는 아는것도 감추고 모르는 척하는 세상인데.
사실 불가능한것을 한것은 현실 정치에서는 안통하고
후세에 전하는 저서로서 전하는 가르침을 현대에 전해지는 것이 공자의 위대함이다.
위의 3문장에서는
니나노판에서 자라든 좋은 가문에서 자라든
될 사람은 되서 인륜을 위하여 휼륭한 역활을 하고
빛과 소금이 된다는 것이다.
평생을 노름하고 주변인이 밤낯 찾아다니고 말리려고 그려다 교통사고사망하고
이 보상금 까지 노름으로 날려도
자식은 최고 대학 나와 기초과학에 일조하고 있듯이
지진으로 천지가 개벽하듯하든 실락원같은 평온하든
인간은 지상에서 살아가게 되고
종족유지을 위하여 거시기을 원한다.
이런것은 싹수가 노랗것은 사람의 생각일뿐 자연이 알아서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