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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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7. 19. 23:14

不逆詐하며 不億不信이나 抑亦先覺者가 是賢乎인저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심리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讀心術(독심술)을 (취,타)摩(췌마)라 한다. 전국시대 때 遊說(유세)를 하던 사람들은 군주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했다. 蘇秦(소진)은 그 기술에 특히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상대의 마음을 推察(추찰)하고 臆測(억측)하는 데는 한도가 있다. 더구나 늘 疑心(의심)에 사로잡힌다면 내 마음이 평안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사람 마음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明晳(명석)하다고 할 수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논어’의 ‘憲問(헌문)’에서 공자는 나의 마음을 투명하게 지니라고 가르쳤다.

逆은 아직 이르러오지 않았을 때 미리 맞이함이다. 詐는 欺瞞(기만)이다. 逆詐는 곧, 남이 나를 속이지도 않거늘 저자가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닐까 지레짐작함을 말한다. 億은 臆과 같다. 不信은 남이 나를 믿지 않고 의심함이다. 億不信은 즉, 남이 나를 의심하여 믿지 않는다고 지레짐작함을 말한다. 抑은 위의 문장을 한번 눌러 의미를 一轉(일전)시키는 접속사다. 先覺은 상대의 진위를 직각적으로 헤아려 기만당하지 않음을 말한다. 미리 깨친 사람을 先覺이라 부르는 것과 다르다.

일의 幾微(기미)를 類推(유추)하고 料量(요량)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남이 나를 해치고 나를 의심하지 않나 지레짐작하는 逆臆(역억)은 스스로를 병들게 할 뿐이다. ‘주역’에 보면, 의심이 있으면 귀신이 수레에 가득 보인다고 했다. ‘열자’도 疑心이 많으면 여러 망상이 보인다는 뜻에서 疑心暗鬼(의심암귀)라는 말을 했다

 

공자는 미생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본심을 말했다. 정말, 덕을 쌓는 사람은 벼슬함 직하면 벼슬하고 그침 직하면 그치는 時中(시중)의 도리를 따르지, 隱居(은거)하여 獨善(독선)의 태도만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丘는 공자의 이름이다. 栖는 새가 나무에 머무른다는 뜻으로, 棲와 같다. 하지만 栖栖는 악착스럽게 군다는 뜻의 숙어다. 棲棲로도 적는다. 無乃∼乎는 ‘아무래도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는 표현이다. (녕,영)은 말재간, 즉 口才다. 疾固의 疾은 미워함, 固는 固陋함이다.

‘예기’에 보면, 사람으로서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공자는 한시도 쉬지 않고 옛 도를 널리 물어 배우려 하여, 마치 구하다 얻지 못하는 사람처럼 허둥댔다.

 

이런 형식의 말처럼

많은 사람이 볼때 유가를 거칠게 다루는가?

그것이 아니다.많은 다수가 고정관념에 변화가 없어 보여

인간이면 충분히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있기때문이지,

어떤 목적(자신을 과시)을 두고 하는것은 아니다.

 

驥는 不稱其力이라 稱其德也니라

驥는 千里馬와 같은 駿馬(준마)를 말한다. 冀州(기주)라는 곳에서 良馬(양마)가 많이 나왔으므로 준마를 驥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稱은 稱頌(칭송)이다. 力은 하루에 千里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德은 여기서는 말이 훈련을 받아 지니게 된 順良(순량)한 바탕을 가리킨다.

준마는 오래 잘 달리는 힘이 중요하다. 하지만 힘만 있고 調練(조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결코 훌륭한 말일 수가 없다. 말이 조련되어 지니는 순량한 바탕은 사람이 수양을 통해서 지니게 되는 德을 비유한다. 말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해서도 외적인 才能만 높이 치지 말고 人格 전체를 살펴야 한다. 공자의 당시 사람들은 才能과 力量만 尊重(존중)하고 德을 輕視(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위의3문장은 사물을 통찰하는 관점에서 선후를 잘 파악하라는 가르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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