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목전의 안일에 익숙해서 장래의 일을 숙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논어’ ‘衛靈公(위령공)’에서 공자는 장래를 숙고하지 않으면 발밑에서 憂患(우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장래의 일만 생각하고 발밑의 작은 일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또한 禍亂(화란)을 초래할 것이다. 공자도 遠慮(원려)를 중시하라고 했지 가까운 근심거리인 近憂(근우)를 소홀히 하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章에 대해 王肅(왕숙)은, 군자는 환란을 미리 생각하여 豫防(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蘇軾(소식)은 사람이 발로 밟아나갈 때 발 디디는 곳 이외의 땅은 모두 쓸모없는 땅이지만 그러한 땅도 결코 버릴 수가 없듯이 천리 밖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禍亂이 지금 앉은 자리 밑에서 일어난다고 풀이했다.
그런데 정약용은 遠慮만 숭상해서는 안 되며 군자가 힘써야 할 바는 가까운 데 있다고 했다. ‘주역’에 보면 “군자는 거실에서 말하되 말이 선하면 천리 밖에서 부응하고 말이 선하지 못하면 천리 밖으로 떠난다”고 했다. ‘서경’에서는 “가까움으로 먼 곳에 미친다”고 했다.
이문구는 학자는 꿈과 희망으로 목포을 가져야 현재 활동에너지의 추진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즉 이것이 없으면 현재 가 창광하여 해매일 것이다.
시업가는 3년,5년,10년 단위 개발을 확보해야 기업의 안정이 보장된다.
이런것이 없으면 망하는 길이 된다.
가까운것을 소홀히 할까 걱정하는것은 이문장과 어울리지 않는다.
공자세가’와 ‘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57세 때 衛(위)나라로 갔다가 靈公(영공)이 絶色(절색)의 부인 南子(남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시가를 돌아다닐 때 그 뒷자리에 타야만 했다. 공자는 마지못해 수레를 함께 탔지만 靈公과 南子의 행태를 추하게 여겼으므로 뒤에 이 말을 하면서 한탄한 듯하다. ‘衛靈公’의 이 章(장)에는 已矣乎의 세 글자가 더 있다. 공자는 도덕을 열렬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이 말을 다시 한 듯하다.
已矣乎는 절망의 詠歎(영탄)이되,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약간의 기대감을 남겨둔 표현이다. 已矣夫는 완전히 절망했을 때의 영탄이다. 好德의 德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도덕을 말한다. 덕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好色의 色은 美色의 여인이다. 德과 色은 韻(운)이 같아, 서로 짝을 이루었다.
유학 가운데 성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道心(도심)과 人心(인심)으로 나누어 道心을 기르고 人心을 억제하라고 가르친다. 정약용도 인간의 마음을 도심과 인심으로 나누어 보는 관점을 계승하여 德은 도심이 좋아하고 色은 인심이 좋아한다고 했다.
이것은 공자가 색을 원하는것이 인간의 순리임을 알고,
이것을 자제하려고 애쓰니 덕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길 원하는 소망이 아닌가?
여기에 구지 인심 도심을 구분하여 난삽하게 할 필요성이 있을까?
무엇이든 잘나도 못나도 인간의 쓰임이 결정하는 것인데,
아무리 고매한 도(4차원)라도 인간과 유리된 쓰임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즉 색을 밝히듯이 덕도 좋아해봐라!
未는 아니다 보다 현재는 아니더라도 미래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것이 이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장문중은 魯(노)나라 대부로 성은 臧孫(장손), 이름은 辰(진)이다. 仲은 字(자), 文은 시호다. 三桓(삼환)의 세력이 강하지 않을 때 활동했는데, 지혜롭다는 평판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제후가 지닐 卜龜(복구)인 蔡(채)를 지녔고, 사당의 기둥머리에 山(산) 모양을 조각하고 동자기둥에 마름 문양을 넣었다. 그래서 ‘公冶長(공야장)’에서 공자는 그를 비판했다.
여기서 공자는 장문중을 ‘竊位한 자’라고 심하게 꾸짖었다. 柳下惠의 어짊을 알면서도 그를 朝廷(조정)에 서도록 추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유하혜는 이름이 展獲(전획)인데, 字가 禽(금)이어서 展禽이라 부른다. 柳下는 封地(봉지)나 號(호)다. 齊(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략했을 때, 유하혜는 장문중에게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 섬기는 방도를 일러주었다. 또 노나라 동문 밖에 爰居(원거)라는 바닷새가 날아와서 장문중이 새에게 제사지내려 하자, 국가전례를 명분 없이 더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夏父弗忌(하보불기)가 僖公(희공) 신위의 반열을 올리려 했을 때는 귀신의 도리와 인간의 도리를 모두 범하게 된다고 만류했다.
‘맹자’에서는 유하혜를 和(화)를 이룬 성인이라고 칭송했다.
백이,이윤,유하혜을 추켜 세웠으면 그것으로 끝나야지 뒤에서 호박씨 까는 것은 냄새가 난다.
유하혜,어사,포숙아의 재평가가 기대된다.
위3문장에서 공자께서 제발 있는 그대로 이해해라!
의역을 하더라도 본의를 벗어나지않게
객관적으로
사심을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