躬自厚는 스스로 자기 잘못을 질책하기를 두텁게 한다는 뜻이다. 薄責於人은 남을 질책하기를 적게 한다는 말로, 남에게 완전하기를 요구하지 않아서 남을 심하게 질책하는 일이 적다는 뜻이다. 遠怨은 원망을 멀리하게 된다는 말로, 遠은 동사다. 자신이 남을 원망하는 일이나 남이 자신을 원망하는 일이나 모두 멀어지게 하여 결국 원망이 없게 만든다는 뜻이다. 옛사람은, 자신을 많이 질책하면 나의 덕이 닦여서 원망이 없게 되고 남을 덜 질책하면 남이 나를 쉽게 따라서 원망을 듣지 않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문구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있다.
먼저 전제 조건이 필요한것같다.
자기 반성 할줄 모르는 포악 무도하고 뻔뻔한 놈을 위한 한 마디일것이다.
보통 사람,나약한 사람,학문에 열중한 사람,새로운 것을 열망하고 개척하는 사람 등등등
에게 이런것을 적용하면 오히려 도태되어 추진력을 상실하여 제자리 걸음만 할것이다.
거꾸로 보고 일반적으로 적용하면 남인데 원망을 듣기 싫어 남의 오류을 방조하고 이것을 거울 삼아 자신은 철저히 정도을 관리한다. 이렇게 보면 상대적인 관계을 설명하려다 개인적인 주관의 오류을 범할 수 있으니 특정인을 두고 한 말일것이다.
如之何, 如之何는 ‘어찌할까, 어찌할까’인데, 나의 덕을 어떻게 해야 향상시키며 나의 공부를 어떻게 해야 닦을 수 있을까 하고 深思熟考(심사숙고)하느라 마음 아파하고 조바심 태우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한다면 공자는 자신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다고 했다. 곧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장)은 정약용이 풀이했듯이 進德修業(진덕수업)에 대해 말한 것이다. 末(말)은 未(미)와 같다. 也已矣는 강한 단정의 어조를 나타낸다.
생각에 머물러 근심 걱정만하고 실천이 부족한 사람에게 행동력을 먼저 앞세우는것이 좋다.라고 이해 하는것이 좋을 것같다.
원대하고 큰 일 일수록 방법이 다양하고 선택하기 어렵다.실행해도 결과는 오리무중이다.
공자가 도을 펼쳐보지만 나이는들고 이상은 이루어지지않고 어찌할거나!어찌할거나!
한계을 느낄때 자신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전환 했듯이
공자는 스스로 행동으로는 보여 주고 말로는 남에게 자신과 똑 같은 사항을 자신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다고 했다.는 것은
공자의 행동력을 보여 주는것이 아닌가 한다.
群居는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있음이다. 言不及義는 말이 의리에 미치지 않아 대화의 내용이 도덕이나 의리와 관계가 없음을 뜻한다. 小慧는 小惠로 되어 있는 판본이 있어 혹자는 小慧와 小惠를 구분해서 小惠가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주자는 小慧를 小智(소지)로 보았다. 작고 하찮은 才智(재지)라는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정약용도 그 설을 따랐다. 難矣哉는 德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장차 患害(환해)가 있으리라는 뜻이다. 단, ‘곤란하구나’라는 정도의 뜻을 지닌 탄식의 말로 보아도 좋다.
끄러모여 끝가지 법망을 피해 돈 벌 궁리한다면 실행되더라도 문제가 생긴다.
이 3문장은 생각은 굵고 짧게 행동은 바로 실행!
자책만하고
근심 걱정만하고
엉성한 궁리만 한다고 한다면
절대 생각은 굵고 짧게 행동은 바로 실행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