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나 뭇사람의 부당한 논단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상대방의 인격을 정밀하게 살펴보라고 권고한다. 차근차근 살펴보는 일. 이것이야말로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법일 것이다. 衆은 다수의 사람이다. 惡(오)는 嫌惡(혐오)로 좋아할 好와 상대된다. 察은 眞相(진상)을 상세하게 관찰하는 일이다. 남에게 아첨하고 무리 짓기 좋아하는 阿黨比周(아당비주)의 소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正大함을 믿고 홀로 우뚝한 特立獨行(특립독행)의 군자도 있다. 그렇기에 世論만 따르다가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그르치기 쉽다. 심지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호인이라고 일컬어지지만 내면의 덕을 갖추지 못한 鄕原(향원)을 군자로 오인하기 쉽다.
어찌보면 가장 많이 생각해 보아 할 문장 중에 하나가 아닌가 ?
과거의 역사,여론,향원(각 지방에 매전매석,부동산 투기로 돈 엄청벌어,농사짓으며 교육사업 중고,대학설립으로 어느 누가 피땀흘러 벌어 내놓겠는가?양면의 탈을 가진자-과거 대농사,목재,연탄,철근,까스,판넬,컴퓨터-순으로 먼저 손된 분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이 힘의 논리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공자 뿐만아니라 동서고금에서 정의가 무엇인가?고민 한 분들이면 표현은 달라도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것이다
공자의 관점에 따르면 사람 바깥에 도가 없고 도 바깥에 사람이 있지 않기에 도가 없으면 사람이라 할 수가 없다. 이것은 ‘중용’에서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말과 통한다.
그런데 주자는 心(심)을 사람에게 영속시키고 性(성)을 道에 영속시켜 人心(인심)에는 知覺(지각)이 있으나 道體(도체)에는 作爲(작위)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道를 크게 할 수는 있어도 道가 사람을 크게 할 수는 없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정약용은 만일 性을 道에 영속시킨다면 道體란 지극히 크고 끝이 없거늘 어떻게 사람이 그것을 축소하거나 확대할 수 있다고 하겠으며, 사람이 도를 배우면 덕의 마음이 드넓어지고 나날이 빛나 커지거늘 어떻게 도가 사람을 크게 할 수 없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귀류법을 통해서 정약용은 心을 사람에 영속시키고 性을 道에 영속시키는 관점이 옳지 않다고 배격하고, 弘道란 성인이 태어나서 천하에 道를 넓히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道가 무엇인가?
딱짤라 말하기 쉬운 일이아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표현을 하려고 노력해 보는것도 좋은 방법이다.
은하수 속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절대치에 가까운 균형을 잡고 일정하게 계속 운동하듯
인간도 지구 속에서 생존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이 다양하게 많고 없어지고 창조되면서 살아간다.
이 길을 통하지않고는 생존 할 수없다.
차마고도 처럼 남중국에서 차가 생산되고,티벳에서 말과 유구가 생산되어
서로가 생존을 위해서 필수 불가결해 교역이 시작 되어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험난한 길을 통하여
교역하는 길이 도 중에 하나다.
이 도도 때에 따라 변하여 고속도로가 나고,비행기가 다니게 되고,인터넷에 따라 道또한 변하는것이다.
도가 사람 마음 속에 먼저 있었는것이 아니라 수많은 세월 속에 생존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길에서 배우는 것 외에는 어디서 찾을 수없는것이다.
사람의 혈관 처럼,
이 것이 正道인 것이다.
공자의 사람 중심의 도와 통하는것이다.
정도을 강조하는 것은
인체에 각종 질병으로 인하여 혈관이 막히고 상하듯
길 또한 사리사욕으로 인하여 촌노가 항우길을 사지로 가르키고
측근들이 왕의 눈을 가리고 바른 길을 못가게 한다.
엉뚱한 길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는 마음에 있는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경험의 산물이며
필요에 따라 쓰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에게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잘못을 고치는 改過(개과)를 중시했다. ‘雍也(옹야)’에서 공자는 죽은 顔淵(안연)을 칭찬하면서 안연의 ‘不遷怒(불천노) 不貳過(불이과)’를 언급했다. 안연이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거듭하지 않았다고 논평한 것이다. 또 ‘學而(학이)’에서 공자는 ‘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하라’고 했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라는 뜻이니, 잘못을 저지른 사실을 깨닫는다면 지체 없이 고치라고 권한 것이다.
.위의 3문장은
역사 속에서 잘못이 정당화 되어 묻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못나고 쓸데없는 도가 있었을지라도 반드시 정도는 상존했다는것을 유추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