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어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들은 것이 ‘不學詩면 無以言이라’와 ‘不學禮면 無以立이라’는 두 가르침뿐이라고 했다. 공자가 홀로 서 있을 때 자식에게 가르쳐 준 것이 이러했으니, 자식에게만 후하게 가르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시경’의 시와 생활규범의 예를 학도에게 가르치는 것은 공자의 일반 교육 방침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내 자식 내마음대로 안되더라! 는 것이다.
어떤 집은 공부 때문에, 배우자 선택,진로,종교,후계자 ,자신이또는 자식이 너무 잘나도 문제,등등으로 분란을 만들어 서로 고통을 받는 경우를 본다.공자도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카이스트을 나오고 장래 총망 받는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날라리 같은 아가씨(학식,교양꽝,)대리고
와서 죽어도 결혼 하겠다고 한다면 공자는 어떤 말을 했을까?
이 표현이 아리송하다.
시,예을 들은것을 세상을 얻은듯 기뻐하고
백어 에게 시예을 물은 것을 더 특별난것이 없는것처럼 받아들이고 아들을 멀리 했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쫍은 사고에서 나오는 부족함이다.
陽貨는 노나라 季氏의 家臣이면선 권력을 마음대로 했던 陽虎와 동일 인물인 듯하다. 혹은 양화는 본래 孟氏로서 계씨의 가신으로 있었지만, 얼마 후 대부의 자리에 올라 노나라 정치를 멋대로 하였다고 한다.
양화는 공자로 하여금 자기 쪽으로 오게 해서 만나보려 했으나, 공자는 가지 않았다. 그러자 양화는 공자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삶은 돼지를 보냈다. 欲見의 見을 교정청본은 ‘현’으로 읽었다. 공자가 양화보다 덕이 높았으므로 양화가 공자를 알현하려 했다는 뜻으로 본 것이다. 歸는 보낼 饋(궤)와 같다. 豚은 어린 돼지이지만 ‘맹자’의 기록에 따라 蒸豚(증돈)으로 본다.
‘예기’에 따르면, 大夫가 士에게 선물한 것을 士가 자기 집에서 직접 받지 못했다면 大夫의 집으로 찾아가 사례해야 한다고 한다.
위의 3문장에서는
자신의 생각보다 법과 관습의 객관적인 절차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