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曰 이하만 공자가 마지못해 대답한 것이고 위의 문답은 陽貨의 自問自答(자문자답)일 수 있다. 중국의 李卓吾(이탁오)와 毛奇齡(모기령), 조선의 정약용이 이 설을 주장했다. 여기서는 잠시 주자의 설을 따랐다.
양화는 보배를 품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이 仁이냐고 물었는데, 이것은 공자가 도덕을 품고 나라의 迷亂(미란)을 구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이다. 不可는 각각 不可謂仁과 不可謂知의 준말이다. 從事는 政事(정사)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극,기)는 ‘자주’, 失時는 ‘기회에 미치지 못함’이다. 知는 智와 같다. 歲不我與는 세월이 나와 함께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는 양화의 비판과 재촉에 대해 이치에 근거해서 대답하였지, 그와 굳이 변론하려 하지 않았다.
글이란 것이 묘하다.
이 글 자체로 보면 양화가 어떤 인물이 던지 간에
양화가 교언영색으로 꼬시던 진심이던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래서 약속한 것이다.
형식적이든 마지못하든 어떤형태로든 계약은 계약이다.
여기에 대한 귀책 사유는 공자의 책임것이 분명하다.
현실 정치을 무시하기 보다 공자가 하고 싶었어도 태도로 보아 내키지 않는 눈치여서
즉 너 나 잘해!
이로 보아 인과 지을 스스로 버린것과도 같은 것으로도 볼 수있다.
왜 약속은 약속이니까?
다 맞는 말인데, 너 하는 꼬락서니을 보니 못하겠다! 가 진심이였을텐데.
왜 속내는 말하지 못한것인가?
이렇게 말 못한것이나 약속하고 등용되지 못한것이나
결과적으로 공자의 불찰이다.
공자의 속뜻을 모르는것도 아니다.
현대에서도 이런 일이 많다.
자신의 스타일이 그래서,마음이 허락안해서 기타 등등
자존심을 지키고 마음 좋고,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한것이
현실적으로 법과 철차상 문제에서는 바보 짓이 되는경우도 많다.
이런 것을 공자에게서 배워 그렇다보기 보다
인성이 그런 부류에 속하는 분들이 시대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을 알고도 선택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교묘하게 이용하는것도 문제지만 굴러온 떡도 마다 하는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어러나 저러나 문제는 문제다!
그러나 유가는 이글의 표리관계에서 나타난것은 덮어두고 보이지않는 것으로 미화 일색이다.
즉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안(못) 먹었다.란 명제에서
1)병이 있어서
2)음식이 쉬어서
3)더 고픈 사람을 위해 양보해
4) 양보한것이 더 부른 사람이 먹어
5)폭군,사나운 짐승이 방해을 해서
위의 경우 3,4번 빼고는 모두들 이해을 한다.
1,2,5) = 너 하는 꼬락서니을 보니 못하겠다!
3,4번을 두고 미사구려해서 칭찬만 하는것이 좋은 것인가?
이런것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은 등신이라고 한다.
이 것이 진정한 공자을 위한것인가? 자신을 위한것인가?
표리관계에서도 균형 감각을 잊지 말아야 하지않을까 ?
그래도 성현의 도을 알아야지!
그러나 현실을 도외시한 즉 쓰임이 미약한것은 빚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너무 커서 모르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