晉(진)나라 大夫 趙簡子의 가신인 佛@(필힐)이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부르자 공자가 가려고 했다. 이때 子路가 반대하면서 공자가 ‘不善을 행하는 자의 黨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가르쳤던 말을 외웠다. 공자는 자신이 이전에 그러한 말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有是言也는 그런 말이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말은 수행하는 사람을 위한 가르침이었다. 덕을 온전히 갖춘 군자는 不善人 속에 던져지더라도 그들에게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善導할 수 있다.
공자는 속담을 인용하여 새로운 가르침을 전했다. 진정으로 단단한 것을 말할 때 아무리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다고 하고, 진정으로 흰 것을 말할 때 검은 물을 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는 속담이다. 不曰堅乎와 不曰白乎는 반어법이다. (린,인)(린)은 조금씩 닳아 얇아짐이다. 涅(날)은 물속에 있는 검은 흙인데 검게 물들임이다. 緇(치)는 검은색인데 검게 물든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실행하지 못한것은 어쩌서인가?
吾豈∼와 焉能∼은 모두 반어법의 표현이다. 匏瓜는 별자리라는 설도 있지만 뒤의 어구로 보아 뒤웅박 설이 옳다. 뒤웅박이 매달린 채로 있다는 표현은 ‘주역’의
井卦(정괘)에서 ‘우물이 깨끗한데도 먹어주지 않는다’고 한 것이나
鼎卦(정괘)에서 ‘꿩의 맛있는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재능이 있어도 등용되지 못함을 비유한다.
그래서 匏繫(포계)라고 하면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하고, 匏繫之歎(포계지탄)이라 하면 재능이 있어도 등용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는 말이 된다.
하지만 공자는 필힐이 끝내 변화될 인물이 아니고 옳은 일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았으므로 결국 가지 않았다.
평소 자로가 급하고 정의롭고 과단성있어 실행력이 강한데,
유독 이 대목에서 배타적인것은 의문이다.
매번 공자에게 꾸중만 들었는데,자로의 제지에
충분히 설득을 하는 명분임에도 불구하고 자로의 뜻을 받아들인것은
공자와 자로 사이에 서로의 표리관계을 찾는것인가? 아니면 모순인가?
통합되면 가장 손해을 보는 세력이 반발해서 인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이익과 손해을 보는 사람을 관찰하면 답이 들어있다.
공자가 여러측면으로 뜻을 실행하려고 했는데 보류한것은
이런 파워 게임에 말려 든것은 아닌가?
아님 실행력에 문제인가?
蔽는 遮掩(차엄), 즉 막아서 가림이니 곧 弊害를 말한다. 仁은 훌륭한 덕목이지만 好仁이 지나쳐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구제하려고 하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愚의 폐해에 빠질 수 있다. 知는 智와 같다. 蕩은 흐트러진다는 뜻이다. 주자는 높이를 궁극에까지 추구하고 넓이를 궁극에까지 추구하여 그칠 곳을 모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賊은 해친다는 뜻인데, 殘忍(잔인)함을 말한다. 絞는 끈을 지나치게 꽉 묶은 것처럼 갑갑하다는 뜻이다. 好信의 폐단은 고지식한 믿음인 諒(량)에서 잘 알 수 있다. 亂은 條理를 어지럽힘이다. 狂은 輕擧妄動(경거망동)함이다.
仁 知 信 直 勇 剛의 六言은 확실히 美德이지만 그것들을 좋아하기만 하고 그 이치나 시행의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본성의 기호를 가리게 된다.
과연 배움이 세상을 이끄는 만능 열쇄인가?
위의 3문장에서는
장고 속에 악 수뜬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 것과 배움과의 상관관계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