可以興 이하 네 구는 동일한 어법이다. 興은 興起(흥기)시킴이다. 觀은 풍속의 성쇠를 보아 사태의 得失을 考見(고견)함을 뜻한다. 群은 많은 사람과 調和하되 방탕한 데로 흐르지 않음이다. 정약용은 빈객과 붕우를 善으로 인도한다는 뜻으로 보았다. 怨은 정치를 諷刺(풍자)하여, 원망하되 성내지 않음이다. 정약용은 원망의 의미를 알고 원망하는 법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邇는 近과 같다. 여기서는 부사다. 邇之事父, 遠之事君은 인간의 도리를 통틀어 거론한 互文(호문)이다. 事父는 가까운 일, 事君은 먼 일로 구별할 필요가 없다. 鳥獸草木之名은 萬象(만상)의 이름이다. ‘시경’에는 풀이 50종류, 나무가 52종류, 새가 36종류, 짐승이 24종류, 물고기가 14종류, 벌레가 18종 나온다고 한다. ‘季氏’에서 공자는 아들 伯魚가 시를 배우지 않은 것을 알고 ‘시경’의 시를 배우지 않으면 남을 應待(응대)할 때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꾸짖었다.
왜 계씨,양화편에 시를 언급했을까?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으면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담장을 마주하고 서 있다는 것은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도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거기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女는 ‘너’라는 이인칭이다. 爲는 學(학)과 같다. 周南과 召南은 ‘시경’의 맨 앞에 놓인 두 篇(편)인데, 모두 25수다. 이 시들에 대해서는 대개 도덕주의적으로 해석을 하여, 자기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는 일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고 본다. 이 시들은 대개 남녀와 부부의 일을 소재로 삼아 남녀의 정을 솔직하게 노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마도 공자는 세상에 올바른 도리를 행하여 남녀가 스스로의 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음을 높이 평가한 듯하다.
시경에 시를 읽다가 보면
표리관계,거 미시적관계,군신관계,남여관계,을
자연 발생적인것을 체로하고 이것을 인간의 사실관계을 용으로
체용을 표리관계로 살펴보는 것이 묘미다.
이 두관계을 분리해서 보면 체는 너무 난삽하여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하여 순수함과 천박함을 묘사하고,
용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빗대어 시의 본래의 맛을 떨어지게 하기때문이다.
요즘 시는 체의 관계에서 순수한 표현에서 느끼는 정화 작용으로 본다면
공자 관점에서는 용의 관계로 바름을 표방하는 교훈적인 교화을 원한것이 아닌가 한다.
禮와 樂은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조건이지만 형식만 중시한다면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는다. 그때의 禮는 虛文(허문)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陽貨’ 제11장에서 공자는 누구나 禮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禮는 禮物인 옥과 폐백에 있지 않으며 누구나 樂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樂은 樂器인 종과 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禮는 恭敬의 마음이 본질이고 樂은 和平의 정신이 본질임을 지적하려 한 듯하다.禮云, 禮云이라고 반복한 것은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을 옮긴 것이다. 樂云, 樂云도 같다. 玉은 公侯伯子男(공후백자남)의 다섯 등급이 예식 때 사용하는 桓圭(환규) 信圭(신규) 躬圭(궁규) 穀璧(곡벽) 蒲璧(포벽) 등 五玉을 말한다. 帛은 제후의 세자, 고아, 부용의 군주가 선물로 사용하는 비단으로 분홍빛의 훈(훈), 검은빛의 玄(현), 노란빛의 黃(황) 등이 있다. 云乎哉의 乎哉는 강한 반어이다. 鐘은 銅과 주석의 합금으로 만들고 鼓는 양, 소, 말의 가죽을 대어 만들었다.
사람이 돈돈돈 하는데,정말 돈이 다인가?
인성인성인성 하는데,정말 인성이 다인가?
위의 3문장에서는
사물을 관찰하는데
고정관념을 가지고 문자로 굳어진 명사개념에 한정된 생각은 세상을 무미 건조하게 만든다.
나이들어 젊을때 추억을 먹고 사는것처럼 어리석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