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라 季氏의 가신인 公山弗擾(공산불요)가 陽虎와 함께 季桓子(계환자)를 붙잡아 가두고 費邑(비읍)을 근거지로 삼아 반란을 일으키고는 공자를 부르자 공자가 그리고 가려고 했다. 公山은 성이고 이름이 弗擾인데 ‘춘추좌씨전’에는 不(뉴,유)(불뉴)로 표기했다. 그러자 子路가 기뻐하지 않아 하면서 “가실 것 없으십니다. 하필 公山氏에게 가려고 하십니까?”라고 따졌다. 그러자 공자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豈徒哉는 어찌 하릴 없이 그러겠는가라는 뜻의 반어법이다. 徒는 ‘空然히’라는 뜻이다. 爲東周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대개 동방의 魯나라에 西周의 도를 일으켜 노나라를 西周처럼 번성한 나라로 흥기시키겠다는 뜻인 듯하다. 공자는 西周의 문왕, 무왕, 성왕, 강왕의 시대를 이상으로 삼았다.
유하혜처럼 이래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참여하여 자신의 뜻을 소신것 펼쳐 참여 하는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공자,맹자의 생각으로 본다면 객석에 관객없는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꼴이 아닌가?
무슨 세상을 꿈구는지? 주나라?
주나라도 역성혁명도하고 전쟁도하고 합종처럼 잘못하면 응징하고 반란이러나면 무력으로 진압하고
할 것은 다한 나라인데 강할땐 통하고 약할때 망한 나라이다.
역사에서 역활은 주나라 진나라가 비슷한대
지금 쓰이는 활용에서는 진나라가 높이 평가 되고 있다.
반대로 그들의 정신 세계는 전무후무하지 않는가?
그러나 모델은 바꿔야 하지않을까?
공자 맹자 보다 더한 도을 펼치고도 이슬처럼 사라진 범부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이런 것들이 모든이에 양심 속에 알게 모르게 작용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려고 뛰어 들어야지
없는 모델이 있으면 가셔 일하겠다.
사실 이상적인 나라가 있으면 공자가 필요 할까?이럴때는 스스로 물러나야 되지 않을까?
이러면 자신은 슬곳이 없지않는가?
공자의 젊은 제자였던 子張이 공자에게 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다섯 가지를 능히 천하에 행한다면 仁이 된다’고 대답했고 자장이 다시 그 내용을 묻자 공자는 恭(공) 寬(관) 信(신) 敏(민) 惠(혜)의 다섯을 열거한 후, 다시 위와 같이 그 구체적 내용을 설명했다.
恭則不侮는 내가 공손하면 남이 나를 모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위의 다섯 구는 則이라는 접속사를 중간에 사용하여 가정(조건)과 결과의 짧은 문장을 이루었는데 한문의 특성상 앞의 구와 뒤의 구가 주어를 달리할 수 있다. 곧, 恭則不侮와 信則人任焉의 두 문장은 앞의 주어와 뒤의 주어가 다르다.
恭寬信敏惠에 대해서는 마음의 덕목으로 볼 수도 있고 仁政의 조건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은 반대로 쓰이지는 않을까?
공손하면 깔아 뭉게고,너그러우면 양보하여 소외되고,신용만추구하여 오히려 융통성 없다하고,
민접하면 약삭빠르다하고 저평가하고,은혜로우면 다른사람 치닥거리하다 볼일 다보지는않을까?
현재는 이런 사항을 무시하고 논어만을 따를 수없는 입장이다.
晉(진)나라 大夫(대부) 趙簡子(조간자)의 가신인 佛 @(필힐)이 中牟(중모)를 근거지로 삼아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부르자, 공자가 가려고 했다. 이번에도 子路가 반대하여 위와 같이 말했다. 노나라 哀公(애공) 5년, 공자의 나이 63세 때 일이라고 한다.
子路는 스승의 옛 가르침을 立論(입론)의 근거로 삼았다. ‘陽貨’ 제4장에서 子游(자유)가 禮樂(예악)을 통해 武城(무성)을 다스리는 이유를 말하면서 공자의 옛 가르침을 외웠던 화법과 같다. 由는 자로의 이름이다. 聞諸夫子의 諸(저)는 曰 이하를 가리킨다. 君子不入은 不善을 행한 자의 나라, 가문이나 黨(당)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로야 대부분 불선한자들인데
우리가 그들 속에 가서 서서히 변화대도록 노력해 보는것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가까이 가는길이 아닌가?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능력있는자 모두 참여할 수있도록 독려 해라 이런 기회가 어디있겠는가?
위 3문장에서는
할 수있을때 하는 것이 최선이다!
자신이 딱맞는 일 ,파트너,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 주어진 상황을 즐겨라!
말로는 가까운곳에 있다하고 찾기는 아득한 곳에서 헤매는것은 공자의 생각과도 차이가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