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려,여)는 顔色(안색)이나 態度(태도)가 위엄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을 말한다. 주자는 (려,여)를 威嚴이라고 풀이했다. 內荏은 心弱(심약)해서 안정감이 없는 것을 말한다. 주자는 荏을 柔弱(유약)이라고 풀이했다. 小人에 대해 주자는 細民(세민)이라고 주석을 했다. 여기서는 영세민이나 농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훔쳐서 백성에게 重稅(중세)를 부과하고 탄압하는 인물을 말한다. 穿(두,유)의 穿은 벽에 구멍을 뚫는 것, (두,유)는 담을 넘는 것이다.
도둑을 가리켜 梁上君子(양상군자)라고 한다. 梁은 들보 樑이다. 後漢의 陳寔(진식)은 도둑이 들보 위에 숨어있는 모습을 보고 “착하지 못한 사람도 본시 악한 것이 아니라 버릇이 습성화되어 그렇게 된 것이니 저 양상군자도 그러하다”며 자손을 훈계했다.
얼굴빛은 위엄스러우면서 마음이 유약한 것을 소인에게 비유한다면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둑과 같다고 하리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해석한다.
그런데 얼굴빛은 위엄스러우면서 마음이 유약한 것을 소인이란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없다.
그냥 나름의 아는체하면 모를까?
色厲內荏겉으로는 엄격(嚴格)하나 내심으로는 부드러움, 사전에도 이렇게 쓰여져있다.
厲의 쓰임이 양면성이 있지만 위엄이 있다는 표현은 긍정적인 표현이다. 즉 일에 대하여 잘하려고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荏자을 유약하것으로 보기보다 일을 지체하고 덮어두어 태만하고 제대로 처리하지않는것으로 보는것이 좋다. 그러면 겉으로는 안그런체하고 속으로는 호박씨까는것을 소인으로 비유한다면 딲 맞다.
향원이란 시골 사람 중에 근후한 자란 뜻인데 세속과 동화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유독 지방 사람 사이에서 근후하다고 일컬어지는 존재를 말한다. 鄕은 鄙俗(비속)의 뜻이고 原은 삼갈 愿(원)과 같다.
논어’ ‘子路’에서 공자는 中道에 맞게 행동하는 선비가 없다고 해서 향원을 선택해서는 안 되며, 차라리 뜻이 큰 狂者(광자)나 節操(절조) 있는 견者(견자)와 함께 일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향원은 광자나 견자를 비난한다.
‘맹자’ ‘盡心(진심)·下’에 보면 향원은 광자와 견자를 두고 “행하는 것이 어이 그리 쓸쓸하고 고독하단 말인가. 이 세상에 태어난 바에는 이 세상 사람들과 살면서 사람 좋다고 인정받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고 했다. 하지만 공자는 ‘내 문전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르지 않아도 내가 유감으로 여기지 않는 자는 오직 향원이로다. 향원은 덕의 적이다’라 말했다고 맹자는 덧붙였다. 향원은 私만 알고 公을 모르며 통념에 순응할 뿐 진취를 모른다.
길에서 건성으로 떠들어 버려 상식을 자랑할 뿐 그 지식을 나의 것으로 삼지 않는 일을 道聽塗說(도청도설)이라 한다. 塗는 途와 같다. 道聽塗說은 ‘述而’편에서 공자가 말한 ‘默而識之(묵이지지)’와 반대된다.
‘默而識之’를 줄여서 默識(묵지)라 한다. 공부한 내용을 묵묵하게 마음에 새겨두는 일을 말한다.
默識는 덕을 쌓는 일에서만이 아니라 일반상식과 학식을 쌓는 일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조선후기의 최한기는 평생 쉬지 않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고작 풍속이나 물산에 관한 지식이나 道聽塗說을 얻는 데 불과하므로 遠近의 書籍을 모아 전 세계의 典禮(전례)와 沿革(연혁)을 閱覽(열람)하고 전 세계의 賢人 및 達士와 酬酌(수작)한 사람만 못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는 “멀리까지 이르는 것은 발로 걷는 데 달려 있지 않다”고 했다.
사마천은 젊은 시절에 부친의 권유로 많은 여행을 했는데 이미 필요한 지식을 쌓아 두었으므로 각지의 전설과 문헌을 충분히 수집해서 훗날 ‘사기’를 저술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박지원은 랴오둥과 베이징을 여행하기 전에 중국의 풍물과 학술에 대해 상당히 공부를 많이 해 두었으므로 여행 때 얻은 감상과 사색의 결과를 ‘열하일기’로 남길 수 있었다.
길에서 건성으로 떠들어 버려 상식을 자랑할 뿐 그 지식을 나의 것으로 삼지 않는 일을 道聽塗說이다.
는 표현도 어색하다.배움에는 다양한 배움이 있는데,길에서 주어듣든 장소에 구애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니 도을 듣고도 개차반같이 쓰면 도를 버리는것이다.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사전과 기존 어색함을 답습하기 보다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 좋겠다.
위3문장에서는
알면 무엇하나!
배워서 개차반으로 쓰지말고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