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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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10. 25. 23:56

欲而不貪은 욕심을 지니지만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욕심을 지닌다는 것은 仁을 얻고자 바란다는 뜻이라고 재차 풀이했다.

欲仁而得仁은 ‘述而’편에서 공자가 伯夷(백이)와 叔齊(숙제)에 대해 ‘仁을 추구하여 仁을 얻었거늘 다시 무엇을 원망하랴’라고 대답한 求仁得仁(仁을 추구하여 仁을 얻음)의 경지와 통한다. 이를 근거로 위의 구절을 생각하면, 위정자가 仁道를 추구하여 仁道를 완성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므로 백성의 재물을 탐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고, 위정자가 仁道를 완성하면 백성들도 仁道를 이루려고 興起하므로 달리 바랄 것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無衆寡와 無小大는 서로 반대되는 뜻을 지닌 두 형용사의 복합어 위에 無를 더한 형태로, 그 형용사들이 지시하는 양 극단의 어느 경우라도 관계없다는 뜻을 나타낸다. . 無敢은 ‘감히 ∼함이 없다’ ‘감히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서경’ ‘康誥(강고)’편에는 ‘聖人(성인·文王)은 鰥寡孤獨(환과고독) 등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감히 업신여기지 않았다’는 말이 있는데 不敢侮(불감모)는 여기의 無敢慢과 통한다.

 瞻視는 사물을 바라봄이다. 儼然은 장엄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威而不猛은 ‘述而’편에서 공자의 威儀(위의)를 서술하여 ‘溫而(려,여)(온이려)하시며 威而不猛하시며 恭而安(공이안)이러시다’라고 했던 말에도 나왔다. 공자는 온화하면서도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며 공손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는 뜻이었다.

‘子張’의 제9장에서 子夏는 君子에게는 三變이 있다고 하여, ‘望之儼然(망지엄연)하고 卽之也溫(즉지야온)하고 聽其言也(려,여)(청기언야려)니라’라고 했다. 멀리서 바라보면 외모가 莊重(장중)하고 앞에 다가가면 안색이 溫和(온화)하며 말을 들어보면 언사가 明確(명확)하다는 것이다. 또 ‘季氏’편 제10장에서 공자는 視, 聽, 色, 貌, 言, 事, 疑, 忿(분·화를 냄), 見得(이익을 눈앞에 봄)의 아홉 가지에서 마음을 專一하게 지니라 했으니 그 九思에서 視의 專一을 강조한 것은 여기의 尊其瞻視와 통한다.

위의 문장에서는

공자의 진정한 의미가 왜곡되어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서 첨삭한것이 아닌가?

인에 관하여 언급하길 어려워 했고,군자의 도리을 분명히 했거늘

막연하게 인과 군자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하고,우선 똥폼 부터 잡고 시작하라는 취지가 그러하다.

"            부처는                      "                          삭발하고 풍체만 가추면 스님이된다는 것과

단풍 구경(본질보다 외형만)하는것 같지 아니한가?

세상사 모두가 자신의 뜻대로 원하는 대로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치가 못하다.

우선 우리 몸의 상태을 보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다면 건강도 사람에따라 많은 차이가 나야 하는데

그러하지않다. 정신과 육체을 사용하면 자신의 체질에따라 유해 물질에 대한 방어체제을 만들어

항체 반응을 하여 면연력을 기르는 것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반응한다.

마음 먹은대로 된다면 몸은 만신창이을 못면 할것이다.

그러니 세상은 빈부귀천과 관계없이 공평한것이고

그럼 누구나 누어서 감먹지 쌩고생하겠는가 하지만

동물도 생존을 위해 변화 무쌍한 본능을 작동하는데

하물며 인간이 땡자땡자 하겠는가?

아무리 좋은 인간상과 시대가 있다지만

과거보다는 현재가 좋고(대부분 비관적이지만)미래가 더 이상적인 모델이 나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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