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전국시대 鄒(추)나라 사람 孟軻(맹가)가 지었으며 모두 7편(각각 상하)이다. 맹자는 공자의 仁 개념에 義 개념을 덧붙여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켰으므로 후세 사람은 유교를 孔孟之道라 불렀다.
魏(위)나라 제후 앵(앵)이 초청하자 맹자는 위나라 수도 大梁(대량)으로 갔다. 양혜왕의 양은 대량을 뜻하되, 나라 이름을 代喩(대유)했다. 혜왕은 왕을 僭稱(참칭)한 사람에게 죽은 뒤 붙이는 시호라고 한다. 양혜왕은 자신이 초청했던 사람이 모두 富國强兵(부국강병)의 방책을 말했으므로 맹자에게도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들으리라 기대했다. 수는 나이 많은 분을 부르는 2인칭이다. 不遠千里而來는 먼 길 온 분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以는 방도라는 뜻이다.
魏나라 제후 앵(앵)과 맹자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맹자가 위나라 수도 大梁(대량)으로 오자 혜왕은 맹자도 다른 사람처럼 富國强兵策을 건의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맹자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왕은 하필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만 중시하여 利의 문제를 거론하십니까? 정치는 오로지 仁義를 정착시키고 실현시키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대답했다.
對는 윗사람의 질문에 응하여 자기 의견을 말할 때 쓴다. 答보다 강하다. 주자(주희)는 仁義에 대해 仁은 마음의 덕이요 사랑의 원리, 義는 마음의 제재요 일의 마땅함이라고 풀이했다. 而已矣는 강한 단정의 어감을 지닌다.
‘史記’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의 첫머리에서 司馬遷(사마천)은 “맹자의 저서를 읽다가 양혜왕이 ‘장차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가 있겠습니까’라고 맹자에게 묻는 대목에 이르자 나는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익이야말로 혼란을 낳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이익에 대해 결코 말하지 않고, 이익으로 행동하면 원한을 초래하는 일이 많다고 경계한 것은 정말로 옳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마천은 ‘貨殖列傳(화식열전)’을 엮어 경제사상을 논하고 고금의 경제인의 초상을 묘사하고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게 생활해서 늙은 부모와 허약한 처자를 돌보지 못하고 철마다 조상을 제사지낼 수 없으며 음식과 의복도 기부에 의지할 뿐 스스로 조달할 수 없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더는 사람으로 취급할 수가 없다.” 맹자도 인간의 욕망을 무시하지 않았다. 다만 정치는 仁義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위의 문장은
맹자의 첫문장으로 맹자의 중심사상을 볼 수있다고 한다.
후대 많은 스타들도 줄이여 맹자의 인의 정치에 찬사을 보내고 양해왕만 똥된다.
저는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본다.
1,인의의 주장이 실행가능성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쉽게 표현하면
인이란 씨뿌리고 가꾸고하는것
의란 인한 행위의 결과물로 보는것이 좋다.
예와지는
인의는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반비례 할 수있다.
그러나 예지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할 수없는 것이다.
인의를 위한 주변 환경의 도움이 필요하다.
즉 인의 예지는 마음 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현실 환경속에 살아가는 치열한 생존 과정을 함축한 말에 지나지않는다.
이 말이 무엇이 있는 대단한 사상처럼 보는것은 차마 쓸데없는 에너지을 소모하는 책임을 면 할 수없다.
즉 사람이 열이 많이 난다면
가장 먼저 할일이 조건없이 우선적으로 열을 내려야한다.
그다음 원인을 찾고 그것에 맞는 처방을 다시하고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 좋다.
다음에는 예방차원에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바른 생활 습관을 갖는것이다.
만약에 이과정이 양해왕이 격고 있는 고충이 있어
맹자란 의원을 초빙하니
대뜸한다는 소리가.
나쁜 습관 때문입니다.
왜 이지경이 되도록 있었 습니까?
어떤 의원이 다녀갖죠 무슨 처방을 했죠?
엉터리 같은 놈,내가 볼때는 수십가지 나열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처방하고 열떨어트리고
일의 선후을 그릇친 경우와 같다.
대부분 휼륭한 제상으로 평가하는 정자산 일을 일의 철차을 잘 못하는(단편적인 예로 부정)전체 정사로 평가하는 것과 다를바가없는 자신의 딜레마에 빠진것과 같다.
우선 칼들고 따라오는 놈이 있으면 죽을 힘을 다해 싸워 이기거나 36계 놓는것이 최상이다.
왜?내 인의에 문제가 있는가?오만 분석으로 민첩하지 못해 죽으면 무슨 쓰임이 있겠는가?
여기서 利나 義나 큰 차이가 없는 말이 아닌가?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공자의 눈 높이 맞춤식 처방의 필요성의 전철이 있었으면 한다.
단편적인 예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소설을 써가며 이해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