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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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11. 5. 23:23

何必曰利章의 마지막이다. 魏(위)나라 제후 앵(앵)은 맹자를 大梁(대량)으로 초청하고는 맹자도 富國强兵策을 제안하리라 기대했지만 맹자의 대답은 달랐다. 왕은 하필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만 중시하여 利의 문제를 거론하십니까? 정치는 仁義를 정착하고 실현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맹자는 군주가 利만 앞세우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利를 취하려 하는 上下交征利(상하교정리)의 상황이 벌어지고, 그 상황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弑害(시해)하는 國危(국위)의 상태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그러고는 군주가 몸소 仁義를 행하면 아랫사람들이 교화되어 군주를 친애하고 받들 것이라며 처음 주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沼上은 연못가로, 上은 언저리라는 뜻이다. 顧는 돌아봄이다. 鴻雁은 기러기인데 鴻은 큰기러기다. 雁은 안으로도 적는다. 미鹿은 사슴인데 미는 큰사슴이다. 賢者는 현자 일반을 가리키는 듯하되 실은 맹자를 가만히 가리킨다. 此는 鴻雁미鹿을 가리킨다. 乎는 의문종결의 어사다.
맹자는 이 장에서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즐거움이 진정한 즐거움임을 설파한다.

與民偕樂(여민해락)章의 大旨(대지)이다. 맹자가 면회하러 갔을 때 양혜왕은 궁궐 안 동산에 있었다. 맹자를 본 양혜왕은 기러기와 사슴을 돌아보면서 “현자도 또한 이런 것을 즐거워합니까?”라고 물었다. 현자란 맹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맹자는 그 물음에서 발단하여 현자여야만 이런 것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노라고 대답했다. 이때 맹자가 말한 현자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지 않는다. 옛날 仁義의 정치를 실행했던 어진 군주를 가리킨다. 맹자는 양혜왕의 의중을 간파하고 양혜왕 자신의 말을 이용해서 정치 이념을 설파하고자 했다.

樂此의 此, 雖有此의 此는 모두 앞서 나온 기러기와 사슴을 말한다. 雖는 ‘비록 ∼라 하더라도’라는 뜻의 양보절을 이끈다. 有는 所有의 有다. 맹자는 賢者而後樂此라고 主旨를 긍정표현으로 말한 후 不賢者∼不樂也라는 이중부정의 어법으로 主旨를 다시 강조했다. 당시 제후는 동산과 정원을 만들고 琪花瑤草(기화요초)를 심고 珍禽奇獸(진금기수)를 기르면서 즐겼다. 맹자는 그 사실을 정당하다고 보지 않고, 어진 제후가 아니면 그런 것을 즐길 수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양혜왕의 주의를 끌었다.

맹자가 만나러 갔을 때 양혜왕은 동산의 기러기와 사슴들을 돌아보면서, ‘현자도 이런 것들을 즐거워합니까?’라고 물었다. 맹자는 ‘현자여야만 이런 것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위와 같이 ‘시경’의 시를 인용해서 대답의 뜻을 밝혔다. 위는 맹자가 인용한 ‘시경’ 大雅(대아) ‘靈臺’편의 일부다. 靈臺는 周나라 文王의 臺 이름이다.

전국시대에는 외교의 장에서나 유세의 때에 ‘시경’의 詩篇을 인용해서 주장을 하거나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 많았다. ‘시경’은 노래이므로 어법과 표현이 산문과는 차이가 있다. 대개 네 글자가 한 구를 이루고, 짝수 번째 일정한 위치에 끝 발음이 같은 韻字(운자)를 둔다.

經之營之의 之는 지시사로 보아도 좋고 음조를 고르는 글자로 보아도 좋다. 經은 처음 계획함, 營은 재정과 물자를 마련함이다. 經營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攻은 다스림이다. 不日은 ‘하루가 끝나기도 전에’ 혹은 ‘며칠도 안 되어’다. 經始勿(극,기)은 문왕이 빨리 하지 않도록 경계한 말이니, (극,기)은 빨리 ‘극’이다. 子來는 자식이 아버지 일에 달려오듯이 함이다.

 

이 두 분의 대화 문장에서

1맹자는 양해왕의 부덕함을 수정하려하나 왕은 덤덤하고

2양해왕은 다양한 질문을 하나 맹자는 자신만의 정도로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면접관과 신입사원의 차이

면접관이 사원의 민첩한 대응 능력을 테스트하려 욕찌거리로 나무라니

욱하여 본래 취지을 잊어버리고 그행동에 집착 대응하고 행동.

면접관이 회사 규약을 간략히 설명하고 하고 싶은 말하라니

내용과 동떨어진 타회사와조건이 부족한 점을 쭉 설명하고

면접관 난 그런 정보는 더 많이 알고있지만 할 말이없어

여기하고는 맞지않는것 같네!

 

3아니면 허구로 맹자을 부각하기위해 꾸민 이야기는 아닌지?

 누구든 자신을 본능적으로 드러나기위하여 방법은 다르지만 다양한 표현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있다.

 

결론은 모두가 더불어 살라는 것 같다.

더불다 보면 오줌 똥이 거름이 되기도 하고 맛있는 무 배추가 사람 벌레가 먹고 똥이 되는것처럼.

무엇이 고귀하고 못난것이 있겠는가? 단지 때에 따라 쓰임이 있을 뿐이다.

이런 것을 약육강식으로만 볼 필요가 있겠는가?

마음의 번뇌만 더 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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