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 大雅(대아) ‘靈臺’편의 일부다. 맹자는 어진 군주여야만 자신의 동산에 노니는 기러기들과 사슴들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다고 말한 후, 그 말의 뜻을 밝히기 위해 ‘시경’의 시편을 인용했다. 靈(유,육)(영유)와 靈沼(영소)는 주나라 文王의 靈臺 아래에 있던 동산과 연못인 듯하다. 王은 文王이다.
(유,육)는 園과 같다. 우鹿은 암사슴이니, 牝鹿(빈록)과 같다. 단수인지 복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攸伏의 攸는 장소, 伏은 엎드린다는 뜻으로, 암사슴이 안심하고 엎드린 곳이란 말이다. 濯濯은 살이 찌고 윤택한 모습을 나타낸다. 濯도 크고 빛난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실은 두 글자가 합하여 형용어로서 기능한다.
같은 글자를 둘 합하여 사물의 모습과 상태를 형용하는 말을 疊字(첩자)라 한다. 鶴鶴도 疊字로, 깨끗하고 희다는 뜻의 鶴이란 글자를 둘 겹쳐 사용했다. ‘시경’에서는 (학,혹)(학,혹)(학학)이라는 글자로 되어 있다. 於(오)는 감탄사로, 개사의 於(어)와 다르다. 인은 넘쳐난다는 뜻이다. 물고기가 넘쳐난다고 풀이하는 것이 보통이되, 물이 넘실거린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시경’ 大雅 ‘靈臺’편을 인용하고 다시 해석하여 본래의 주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영대’에 따르면 문왕은 대와 못을 만들 때 백성의 힘을 이용했으나 백성은 도리어 즐거워하며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주고 또 문왕이 진기한 동물을 소유함을 즐거워했다. 맹자는 문왕이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백성이 그의 즐거워함을 좋아하고 문왕 스스로도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民力은 백성의 재력과 노동력이다. 爲는 만든다는 뜻이다. 而는 역접의 접속사다. 謂a曰A는 ‘a를 A라고 일컫다’이다. 樂其有미鹿魚鼈의 其는 문왕을 가리키고 有는 所有의 뜻이다. 古之人은 옛 어진 군주이니 문왕은 그 한 사람이다. 與는 ‘∼와 더불어’이다.
‘湯誓’는 ‘서경’ 가운데서도 殷(은)나라 문서들을 모아 둔 商書(상서)에 들어 있다. 商은 殷의 다른 이름이다. 은나라 湯(탕)임금은 夏나라 왕 桀(걸)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켰을 때 맹세를 했는데, 그때 정벌의 정당성을 강조하려고 하나라 백성이 걸왕의 虐政(학정)을 견디지 못해 이렇게 저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時日은 是日과 같다. 한문에서는 종종 時를 지시사 是처럼 사용한다. 日은 달력의 날짜가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해이다. 害喪(갈상)은 ‘언제 없어지는가’다. 害은 ‘해칠 해’가 아니라 ‘어찌 갈’이니, 曷(갈)과 같다. 喪은 亡과 같아, 喪亡이란 복합어도 있다. 予는 백성이 자기 자신을 가리킨 말이다. 及은 ‘∼와 함께’로, ‘與’와 같다. 女는 ‘너 汝(여)’와 같다.
시경’ 大雅 ‘靈臺’편을 인용하고 풀이하여 입증하고, 뒤의 주장에 대해서는 ‘상서’ 즉 ‘서경’의 ‘湯誓’편을 인용해서 입증했다. 그리고 위와 같이 ‘湯誓’의 뜻을 보완해서 설명했는데, 실은 章 전체를 매듭짓는 기능을 한다.
之는 군주 가운데서도 虐政(학정)을 행하는 군주를 가리킨다. 豈能獨樂哉는 어찌 獨樂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말로, 군주가 홀로 즐기고 백성을 救恤(구휼)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므로 그 즐거움을 보전할 수가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하나라 걸왕은 일찍이 ‘내가 천하를 차지함은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도 같으니, 해가 없어져야 그제야 내가 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이 해는 언제나 없어지려나. 만일 없어질 수만 있다면 내 차라리 그와 함께 없어져도 좋다’고 탄식했다. 걸왕이 하루라도 빨리 없어지면 좋겠다고 여긴 것이다. ‘時日은 害喪고’는 백성들이 군주를 저주하는 무서운 말이었다.
이 문장에서
더욱 소설을 쓰는 느낌이든다.
어느 왕이 듣기만하고,멍청한 질문만 하겠는가?
각본에 짜진 스토리가 아니고서는 무난한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 아닌가?
하은주 3대 이상 정치을 설하지만
지금까지 정치는 이런 정치는 없었지만 국민의 생활의 다양한 척도에서 점점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상 정치을 못한 세상의 협박에 의하면 지상에 인간은 없어져야 마땅하지않는가?
배우는 입장에서는 이런 심풀한 디자인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 하면 좋을 것 같다.
친구,동종업계 모임에 서로 속속들이 알고 이해하고 대장도 누가해도 머라는 분 없지만(삼대)
이면의 실상은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차라리 따질건 하고 선이 분명한것이 사악해 보일지라도(찬탈,법,가타등등) 오히려 더 정도 일 수 도 있다.
역사에서 왕의 행위 자체는 바르지 못했어도 그것을 보상이라도 해준 것 처럼 국민들의 의식이 좋아지지않았는가?
이상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이상이다.
힘든 역활을 하는 분들은 부정 할지라도
그 자체가 행복이니 씨발 제기날 쪼도(힘 겨워 하느 말)더러 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니면 모두 병으로 작용할 것이다.
허물만 탓한다고 고쳐지지 않는 것이 세상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