可得聞乎의 可와 得은 모두 가능의 뜻을 지닌 보조동사라 할 수 있다. 無道桓文之事者에서 道는 ‘말하다’이고, 無는 ‘∼하는 者’가 없다는 말이다. 無以의 以는 已와 통하니, 無以는 不得已(부득이)와 같다. 王乎는 ‘왕 노릇 하는 도리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로, 乎는 추정과 청원의 어조를 지닌다.
논어 ‘憲問(헌문)’편에서 공자는, 진문공은 교활한 술수를 썼지만 제환공은 정의로운 방법을 썼다고 해서 제환공을 인정했다. 하지만 맹자는 제환공이나 진문공이나 모두 왕도정치를 실행하지 않았기에 오십보백보라고 보았다. 仁義를 우선시하는 王道政治의 실현을 강렬하게 念願(염원)했기 때문이다.
제 선왕도 역시 요순의 도 보다 패권에 관심이 많은지라 맹자에게 자문을 구하나
현실적인 처방보다 자신의 왕국의 왕도을 설하고자 한다.
이것이 맹자의 문제만을 탓 할 수도 없다.
공자와 장자 시대는 직접 대 놓고 서로 헐뜻고 빈난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전국 시대는 반대을 위한 반대처럼 상대을 서로 버러지 처럼 여기는것이 다반사다.
이것은 공자,장자 책을 통해서도 느낄 수있다.
공자 후반부와 장자 내 외편에서 글의 차이와 내용의 일관성 부족으로 인한 모순이 적지않다.
맹자도 이런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가 없는것 같다.
공자가 언급한 내용도 맹자는 전하지 않는다고 오리 발을 내민다.
수 많은 수행을 한 분들도 자신의 한계을 넘어 서는 것은 요원한것이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는
현대 정치을 나무랄 일도 없는 것 같다.
어디서 배웠겠는가?
모두 잠재의식에 남아 있는 패단을 전철하는것이 아닐까?
현대의 원색적인 비난은 이 시대에 비하면 양반이 아닌가?
맹자을 탓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전반적인 관점에서 글을 읽고 생각하다 보니
다양한 면을 유추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글은 자구에 얽매여 우물에서 세상을 보는 격 보다 은하수에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이런 배짱이 필요하지 않는가?